[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검으로 승리하자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검으로 승리하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해서 마귀와 싸워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속량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어진 믿음의 확신 가운데에서 평화의 복음의 신발을 신고 언약의 하나님을 굳건히 붙잡고 나아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방패지기가 되셔서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해 주실 때에 성도들은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다섯 번째 특징인 ‘구원의 투구’와 여섯 번째 특징인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의 지속적인 공격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엡 6:17) 그리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Translated by YG Kim)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다섯 번째 특징으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구원의 투구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먼저 우리들은 전쟁에서 군인들이 사용하는 투구의 특징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투구로 번역할 수 있는 ‘페리케파라이아’(perikephalaia: helmet)라는 헬라어 명사는 ‘둘레’를 의미하는 전치사 ‘페리’(peri: around)와 ‘머리’를 의미하는 명사 ‘케파레’(kephale: head)의 합성어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가 군사적 용어로 사용이 되면서 전쟁에서 적군의 기습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는 중요한 군사용 장비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LXX) 성경을 보면 ‘투구’로 번역하는 히브리어 명사 ‘코바’(koba: helmet)를 헬라어 명사 ‘페리케파라이아’ (perikephalaia)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 투구는 황동(brass)으로 만들어졌는데, 블레셋의 전사(warrior) 골리앗도 황동으로 만든 투구를 썼고(삼상 17:5),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도 황동으로 만들어진 투구를 사용했습니다(삼상 17:38).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황동을 대신해서 청동(bronze)으로 만들어진 투구를 사용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도시의 군인들이 사용한 투구는 머리와 이마, 코와 얼굴의 볼(cheek) 그리고 목을 보호하는 장비였습니다(Albrecht Oepke, ‘perikephalaia,’ TDNT Vol 5: p. 315).

그러나 구약 성경에서 투구는 전쟁에서 군사의 머리를 보호하는 갑주의 의미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인(figurative) 의미로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시편 60편 7절의 말씀을 보면 다윗은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뛰어노실 때에 에브라임이 하나님의 머리의 투구가 되어서 전쟁의 선봉에 서서 나아가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에서 구원의 투구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말씀은 이사야서 59장 17절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전사(warrior)로 표현합니다.

(사 59:17)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아말렉 사람들과(출 17:8-16) 가나안 사람들을 물리치신 것처럼(수 6-11장), 이스라엘 백성들의 적을 물리치시기 위해서 전사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59장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싸워야 할 나라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공의의 갑옷을 입으시고, 구원을 자신의 머리의 투구로 쓰시고, 응징의 속옷과 열심의 겉옷을 입으셨을 때에 하나님의 적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 이방 나라가 아니라 바로 그들의 죄악입니다(사 59:18, 20).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막는 죄악을 물리치시기 위해서 전신갑주를 입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목적은 구원 받기에 합당한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죄인들에게는 응징하셔서 심판을 하시는 모습입니다(사 59:18-20).

이와 반대로 바울이 사용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목적은 마귀들의 공격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었을 때에 사용하는 투구를 “구원의 소망의 투구”(살전 5:8) 또는 “구원의 투구”(엡 6:17)로 표현합니다.

그러면 성도가 ‘구원의 투구’를 쓰고 마귀와 싸우는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들은 에베소서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soteria: salvation)에 관하여 지속적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울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언급합니다(엡 1:13). 그리고 이 구원은 허물들(trespasses)과 죄악들(sins)로 인하여 죽은 우리들을 건져내어 구속해 주시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구원 계획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엡 2:5, 8).

이러한 배경에서 성도들이 구원의 투구를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서 구원의 투구의 온전한 모습을 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의 말씀에서 구원의 소망의 투구’로 표현합니다. 우리들은 바울이 사용하는 헬라어 명사 ‘소망’ (elpis: hope)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미래에 일어날 일을 꿈꾸고, 소원하고, 희망하는 모습이 아니라 ‘확신’(confidence)과 ‘신뢰’(trust)를 기반으로 하여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expectation)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엡 1:18). 그러므로 성도가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영원한 생명을 믿음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롬 6:23; 딤전 6:12; 딛 1:1-2).

바울이 언급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여섯 번째 특징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먼저 우리들은 먼저 ‘검’(machaira: short sword)에 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고대 사회의 전쟁에서 칼은 가장 중요한 전쟁 무기였습니다. 고대 사회의 전쟁에서 사용하는 칼의 크기는 대략적으로 40-91cm(16 inch-6 feet)로 한쪽 또는 양쪽의 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칼은 전쟁을 묘사하는 상징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렘 19:7).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모습을 희망하면서 칼이 존재하지 않는 평화의 모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 2:4; 호 2:18).

또한 칼은 직접적인 전쟁의 모습뿐만 아니라 다툼과 분열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삼하 12:10). 그리고 하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향한 심판의 이미지로 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시 7:12; 렘 12:12; 계 19:15).

칼은 성경에서 언어학적인 의미로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혀의 위험을 칼로 표현하기도 하고(시 57:4; 잠 12:8), 음행을 행하는 여인의 입술이 꿀처럼 달콤하고, 여인들의 말은 기름처럼 부드럽지만 그 결과는 양쪽의 날을 가진 칼처럼 날카롭다고 언급합니다(잠 5:3-4). 또한 거짓 증인의 모습이나(잠 25:18),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자들은 칼과 같은 이빨을 가진 자들로 표현이 되어집니다(잠 30:14).

그러나 몇몇의 성경의 저자들은 칼을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첫 번째 종의 노래(사 49:1-9)에서 여호와의 종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종의 입술을 날카로운 칼과 같이 만드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사 49:2).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에게 주어진 무기는 전쟁의 무기들이 아니라 입으로 상징되어지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양날이 선 어떤 칼보다 예리하다고 표현합니다(히 4:12).

그러면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바울은 신약 성경에서 크고 넓은 칼의 의미로 사용이 되는 헬라어 명사 ‘롬파이아’(rhomphaia: large and broad sword) (눅 21:24; 계 2:16; 6:8; 19:15, 21)을 사용하지 않고, 구약 성경에서 할례를 베풀 때에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때에 사용이 되어진 작은 칼로 ‘마케아이라’(machaira: short sword)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수 5:2; 창 22:6). 그리고 이 칼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제자들이 가지고 간 칼과 같이 단어입니다(마 26:47; 막 14:43; 눅 22:36). 또한 바울은 이 칼이 성령에 의해 주어진 검(sword given by the Spirit)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할 때에 성령의 검을 사용하는 모습은 진리의 말씀 안에서 성령에 붙잡혔을 때에 가능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성령의 검을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라고 선포합니다. 특별히 바울은 ‘말씀’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로고스’(logos)라는 헬라어 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레마’(rhema)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로고스’와 ‘레마’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로고스’는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히 1:1-2; 요일 2:14), ‘레마’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개인적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마 4:4; 롬 10:17). 그러므로 ‘레마’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검이 되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와 싸우는 성도들에게 주어졌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하여 마귀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함께 나누기>

  1. 하나님의 전신갑주에서 투구는 적군의 공격으로부터 군사들의 머리를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투구를 군사들의 머리를 보호하는 장비의 의미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인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에서 투구의 이미지를 이사야서 59장 17절의 말씀을 인용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사야서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전신갑주를 입으시고 싸우시는 대상은 나라가 아니라 무엇입니까?
  • 에베소서 6장 17절의 말씀에서 바울이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목적은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성도가 구원의 투구를 쓰고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까?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구원의 소망의 투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 구약 성경에 ‘칼’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칼’이 언어학적인 의미로 사용이 될 때에 그 용례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왜 ‘칼’의 이미지와 하나님의 말씀을 연결시키고 있습니까?
  •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령의 검을 사용하기 위해서 성령에 붙잡혀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령에 붙잡혀 살아가는 성도들이 사용하는 성령의 검은 어떠한 특징들이 나타납니까?
  •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7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로고스’로 표현하지 않고, ‘레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고스’와 ‘레마’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레마’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령의 검이 되어서 마귀와 싸울을 때에 나타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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