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낚는] 어부(The fishers of men)
예수님께서 자신의 공생애의 시작점에서 “회개하라 그리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라고 말씀하시고 난 후에 그 복음을 전할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은 어부인데 마가는 그들의 이름을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셔서 소명을 주시는 장면에서 시몬과 안드레를 ‘사람들의 어부’로 불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부에 관한 구약적 배경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들의 어부’의 특징과 역할에 대해 집중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막 1:16) 그리고 그(예수)가 갈릴리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을 때에 그(예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뒤를 따르라. 내가 너희들을 사람들의 어부가 되도록 만들 것이다.” (18) 그리고 그들은 즉시 그물들을 버려두고 그(예수)를 따랐습니다. (19) 그리고 조금 더 가시다가, 그(예수)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배에서 그물들을 수선하는 것을 보시고 (20) 즉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배에서 일꾼들과 함께 있는 그들의 아버지 세베대를 남겨두고 그(예수)의 뒤를 따랐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공관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부르시는 장면을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마가와 마태와 다르게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5:1-11). 그러므로 우리들이 공관복음서의 내용에 한정하여서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부르시는 상황을 다시 한번 재구성해 보겠습니다.
먼저 마태는 마가의 기록을 거의 동일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마태는 시몬(Simon)의 이름을 베드로(Peter)라고 부르고 있지만(마 4:18),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petros: stone)라는 이름을 지어 주시는 장면이 열두 제자들을 세우시는 장면입니다(막 3:16). 또한 마가와 마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소가 갈릴리 호수 해변가라고 기록하면서 구체적인 장소를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막 1:16; 마 4:18). 그러나 누가는 그 해변가가 갈릴리 호수의 서 북쪽 게네사렛 호수가(the lake of Gennesaret)라고 명시합니다(눅 5:1). 또한 누가는 시몬의 형제 안드레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를 만났을 때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시몬과 안드레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는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마가와 마태는 이 내용을 언급하고 있지 않기에 우리들은 누가의 기록에 근거하여서 예수님께서 시몬을 부르는 장면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누가에 의하면 시몬은 자신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거나 알고 있었습니다(눅 4:38-39). 그리고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밤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시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게 하여서 그 배위에서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눅 5:3). 이러한 복음 전파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인데(막 1:38), 시몬은 밤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상황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으로 인하여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부의 경험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렸고, 그 결과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눅 5:6). 그래서 시몬은 자신의 동료인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의 도움으로 두 배에 물고기를 가득 채웠습니다(눅 5:7). 이러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시몬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죄로 가득한 사람(a sinful man)이라고 고백합니다(눅 5:8).
이렇게 시몬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경험하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인식하였을 때에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 예수님을 ‘선생님’(epistates: master)이라고 부르지 않고 ‘주님’(kyrios: Lord)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눅 5:5, 8).
이러한 배경 설명과 다르게 마가는 예수님께서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를 부르시는 장면을 간결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시몬과 안드레가 갈릴리 호수가에서 그물을 던지는 모습을 기록하면서 독자들에게 불필요한 정보처럼 보이는 시몬과 안드레의 직업이 ‘어부’(halieus: fisher)라는 사실을 강조하여서 부각시킵니다.
우리가 구약적인 배경에서 ‘어부’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어부’는 하나님의 심판의 이미지와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그 예를 생각해 보면, 솔로몬은 사람들에게 비유적으로 말하면서 언제 물고기가 촘촘한 그물에 걸릴지 모른다고 표현하고 있고(전 9:12), 아모스 선지자는 사마리아에 사는 타락한 지도자들에게 그들이 언제 낚시 바늘에 걸릴지 모른다고 책망합니다(암 4:2). 또한 에스겔 선지자는 두로를 향한 심판의 메시지에서 두로가 바다 가운데에서 그물을 치는 장소처럼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고(겔 25:5, 14), 애굽을 향하여서는 바로를 악어에 비유하여서 갈고리로 악어의 아가미를 꿰고 잡아 사막에 던져 버리겠다고 선포합니다(겔 29:3-6). (합 1:14-17). 더 나아가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어부를 보내셔서 백성들을 물고기처럼 잡아 그들의 행위를 보고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렘 16:16-18).
이러한 구약적 배경에서 어부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어부는 그물 안에 걸린 물고기들을 심판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부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시는 과정에서 어부의 이미지는 심판의 이미지가 아닌 구원의 이미지로 바꾸어집니다.
그러면 공관복음서에서 물고기는 어떠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누가는 예수님께서 시몬을 부르실 때에 잡힌 물고기가 심히 많은 것을 구원받을 자들이 많다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고(눅 5:6),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행하신 오천 명이 먹고 열 두 바구니가 남는 기적과(막 6:30-44; 마 14:13-21; 눅 9:10-17), 또한 떡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이 먹는 기적(막 8:1-10; 마 15:32-29)을 통하여 물고기의 이미지를 구원의 이미지와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의 비유에서 물고기와 그물은 구원과 심판의 이미지로 사용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마치 어부가 바다에 그물을 던져 온갖 물고기를 잡아 그 안에서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지만, 나쁜 물고기는 바다에 버리는 모습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마 13:47-48).
그러면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에게 “나의 뒤를 따르라. 내가 너희들을 사람들의 어부가 되도록 만들 것이다”(막 1:17b)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시면서 부르심의 소명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 목적은 그들을 ‘사람들의 어부’(fishers of men)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들의 어부’라는 헬라적 개념을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우므로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낚는 어부’의 의미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과 베드로를 ‘사람들을 낚는 어부’의 역할로 부르셨을 때에 그들의 역할은 심판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그물 안에 사람들을 모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누가는 예수님께서 시몬을 부르시는 장면에서 ‘사람들의 어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지금부터 너는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눅 5:10)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면 보다 구체적으로 ‘사람들을 낚는 어부’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에 의해 시험을 받으시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을 낚는 어부’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낚는 어부’는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 안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는 시몬과 안드레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주목해야 합니다. 마가는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시몬의 연약함을 자신의 복음서에서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귀신을 내쫓는 권능(막 3:15; 6:7)과 병자들을 고치는 능력 (막 6:13)을 제자들과 함께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과 이적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시몬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막 8:29)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잘못 이해해서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막 8:33). 또한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시는 상황 가운데에서 세 번이나 자신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막 14:66-72).
이러한 삶을 살아갔던 시몬이지만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 이후에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고 난 후에 ‘사람들을 낚는 어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시몬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받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선포합니다(행 2:36).
결과적으로 시몬이 ‘사람들을 낚는 어부’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말씀으로 인하여 마음의 변화를 받아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주목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를 ‘사람들을 낚는 어부’로 부르신 것처럼 우리들도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우리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나누기>
-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부르시는 장면은 어떠한 차이점이 있습니까? 마가와 마태와 다르게 누가는 보다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 누가는 예수님께서 시몬을 부르실 때에 시몬의 순종과 마음의 변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평생 어부로 살아왔던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많은 물고기를 잡는 기적을 언급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기적을 경험한 시몬이 예수님께 고백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또한 시몬이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습니까?
- 구약적인 배경에서 어부와 물고기는 어떠한 이미지로 기록되어져 있습니까? 구약 성경에서 어부의 이미지는 심판의 이미지입니까? 아니면 구원의 이미지입니까?
-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에 그들의 역할을 복음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을 낚는 어부’로서 복음은 증거하는 삶은 어떠한 삶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