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내가 이것을 위해서 왔다!

내가 이것을 위해서 왔다!

예수님께서 게넷사렛 지역의 북쪽인 가버나움(Capernaum)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고 난 후에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가셨습니다. 마가는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서 열병으로 누워 있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시는 짧은 사건을 기록하고 나서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의 치료 사역을 소개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치료 사역을 통하여 마가는 예수님의 기독론(Christology)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일으키는 모습을 통하여 마가의 독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바라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29) 그리고 그들이 회당 안에서 나온 후에 즉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30) 그 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즉시 [사람들이] 그녀에(시몬의 장모) 관하여 그(예수)에게 말했습니다. (31) 그리고 [예수께서] 가까이 가셔서 손을 잡아 그녀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열은 그녀에게서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을 시중 들었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시는 사건은 공관 복음서에 공통적으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이 사건을 예수님께서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를 ‘사람들을 [낚는] 어부’로 부르시기 이전의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고(눅 4:38-39), 마태는 마가의 역사적 순서를 따르고 있지만 마태복음의 독특한 특징인 산상 수훈(마5:1-7:29)을 기록하고 난 후에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치신 사건(마 8:1-4)과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신 사건(마 8:5-13) 이후에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8:14-15). 이러한 역사적 연대의 차이점이 나타나는 이유는 마가가 자신의 복음서 기록 목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가가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하는 목적은 온전히 역사적 순서를 따라 예수님의 사역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자료들과 자신의 신학적 성향(theological tendency)을 따라서 복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시는 사건은 다섯 단계로 진행이 됩니다.

(1) 치료자로서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도착하였습니다(29). (2) 시몬의 장모가 앓고 있는 병에 관하여 기록합니다(30a). (3) 주변 사람들에 의해 고침을 요구 받습니다(30b). (4)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십니다(31a). (5) 고침을 받은 시몬의 장모가 예수님의 시중을 듭니다(31b).

이러한 치료 과정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병으로 앓고 있는 시몬의 장모의 믿음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시는 사건을 통하여 고침을 받는 자의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독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가는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는 모습을 통하여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께서 죽은 야이로의 딸을 일으키시는 장면에서도 동일하게 사용이 됩니다(막 5:41). 그리고 마가는 ‘일으키다’(egeiro: to raise up)라는 동사를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켜서(막 12:26) 자신의 독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바라보게 하는 모티브(motif)로 사용을 합니다(막 6:14, 16; 14:28; 16:6). 더 나아가서 마가는 구약적 배경과 유대교의 배경을 통하여 병자를 고치시는 사역은 메시아의 사역임을 강조합니다(사 35:5; 4Q521; Messianic Apocalypse). 그러므로 마가는 자신의 독자들이 예수님께서 병자를 일으키시는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시는 부활의 사건을 바라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서 그의 장모를 고쳐 주신 사건 이후에 그 날 밤 가버나움에서 있었던 공개적인 병고침과 귀신을 쫓아내는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신 사건은 이미 가버나움 전역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저녁이 되었을 때 모든 병을 가지고 있는 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32) 해가 져서 저녁이 되었을 때에 모든 병을 가지고 있는 자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그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33) 그리고 온 도시가 함께 문 앞에 모였습니다. (34) 그리고 그(예수)는 다양한 병으로 아픈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예수)는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귀신들)은 그(예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Translated by YG Kim)

마가는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요약해서 기록하면서도 예수님의 ‘기독론’ (Christology)과 ‘메시아의 비밀’(Messianic secret)이라는 모티브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태에 의하면 예수님의 치유 사건은 이사야서 53장 4절에 예언된 말씀을 성취하는 모습입니다(마 8:17; 사 53:4). 예수님께서는 친히 피조물의 병약함을 떠맡으시고 질병을 짊어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예수님께서 다양한 병으로 고통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귀신들린 자들도 고쳐 주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가는 ‘메시아의 비밀’ 가운데에서 귀신들이 말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귀신들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눅 4:41)라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메시아의 비밀’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라고 부르기 보다(막 1:1; 3:11; 5:7; 15:39)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이라는 표현(막 2:10, 28; 8:31, 38; 9:9, 12, 31; 10:33, 45; 13:26, 29; 14:21, 41, 62)을 통하여 ‘메시아의 비밀’을 지키고자 합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귀신들은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막 1:24), ‘하나님의 아들’(막 3:11),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막 5:7)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신 그 날 밤이 지나고 이른 새벽에 예수님은 홀로 외딴 장소에 가셔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시몬을 중심으로 그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사람들의 관심과 예수님의 관심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35) 이른 새벽에 아직 매우 어두울 때에 그(예수)는 일어나서 외딴 장소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36) 그리고 시몬과 그와 함께 있었던 자들이 그(예수)를 열심히 찾아 나섰습니다. (37) 그들은 그(예수)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예수)에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38) 그(예수)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가까운 다른 마을들로 가자! 거기에서도 또한 내가 선포하리라! 왜냐하면 내가 이것을 위해서 왔다.” (39) 그리고 그(예수)는 온 갈릴리로 가셔서 그들의 회당에서 선포하시면서 귀신들을 쫓아냈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공관복음서 가운데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난 다음날 이른 새벽에 기도하시는 모습은 마태복음을 제외한 마가복음(막 1:35-39)과 누가복음(눅 4:42-43)에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보다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한적한 외딴 장소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막 1:35). 누가는 예수님께서 외딴 장소에 가셨다는 사실만을 기록하면서 예수님께서 이른 새벽에 기도하셨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눅 4:42). 그러므로 마가가 예수님께서 전도 여행 중 이른 새벽에 기도하셨다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것에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직접적인 목적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를 다시 한번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외딴 장소에서 기도하시는 모습과 시몬을 중심으로 하여서 그와 함께 있었던 자들이 예수님을 찾는 모습을 비교하여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목적과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목적을 대비(對比)시킵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전통(시 5:3; 88:13; 119:147)을 따라서 이른 새벽에 기도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소통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몬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목적은 지난 밤에 시몬의 집에서 이루어진 병고침과 귀신들을 쫓아내는 기적을 경험하는 것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목적을 따라서 시몬과 그와 함께 있었던 자들이 자신에게 왔을 때에 가버나움을 떠나 다른 마을로 가자고 말씀하십니다(막 1:38b).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목적을 “거기에서도 내가 선포하리라!”(막 1:38c)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을 기초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메시지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목적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포하다’(kerysso: to proclaim)는 목적어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사역에 관하여 선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누가복음 4:43절의 말씀을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내용이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마가복음 1장 15절의 말씀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5) 그(예수)가 말하기를 “때가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 그리고 복음을 믿으라”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목적을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리로 방문하셔서 그들의 회당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막 1:39).

*비록 Nestle-Aland 27th Edition Greek New Testament에서는 마가복음 1장 39절의 말씀을 1장 40-45의 말씀으로 연결시키지만, UBS Greek Text와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마가복음의 1장 39절의 말씀을 1장 35-38절의 말씀에 포함시킵니다.

<함께 나누기>

  1. 우리들은 공관복음서를 읽으면서 역사적 순서에 관한 질문을 가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고 있는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시는 사건도 공관 복음서에서 시간적 차이를 나타냅니다. 우리들은 어떠한 관점에서 이러한 시간적 차이점을 이해 할 수 있습니까?
  1.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시는 사건에서 마가는 예수님의 기독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 장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시는 부활의 사건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 이유를 우리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1.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시고 난 후에 많은 병자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들은 예수님의 기독론과 메시아의 비밀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보다 ‘사람의 아들’(인자)이라는 용어를 더욱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예수님께서 이른 새벽에 기도하러 가시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목적과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이유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과 사람의 관심은 어떠한 차이점이 있습니까?
  1.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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