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쫓아내는 하나님의 나라의 원칙
요한 마가는 마가복음 3:13-35절에서 다섯개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교차 대구법(fivefold Chiastic Structure)을 통하여 예수님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마가복음 2:1-3:6절의 말씀에서 다섯개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교차 대구법을 생각해 본 것처럼, 1세기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이러한 문학 기법은 일반적으로 사용이 되고 있었고, 마가도 자신의 복음서에서 다섯개의 구조로 구성된 교차 대구법 통하여 예수님의 메시지를 공동체에게 보다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3:13-35절의 말씀을 [A, B, C, B´, A´]의 구조로 생각해 보면, (A)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막 3:13-19)은 (A´) 예수님의 가족이 된 제자들(막 3:33-35)의 모습과 연결되어 있고, (B) 예수님을 향한 가족들의 반응(막 3:20-21)과 (B´)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는 모습(막 3:31-32)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앙에 (C) 예수님을 향한 율법학자들의 고발과 예수님의 메시지(막 3:22-30)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하여 마가는 예수님의 가족으로서 참된 제자가 누구이고,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하나님의 나라의 원칙과 어떻게 연결되어져 있으며, 성령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부인하는 율법학자들이 얼마나 심각한 죄를 짓고 있는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먼저 우리들은 짧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막 3:13) 그(예수)가 산으로 올라가셔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예수)를 따랐습니다. (14) 그(예수)가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이름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그들을 보내어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고, (15)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소유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6) [그(예수)가 열둘을 임명하셨는데]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시고, (17)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을 부르시고, ‘보아네게’라는 이름을 그들에게 주셨는데, 그 [의미는] ‘우레의 아들들’입니다. (18) 그리고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메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와 가나안 사람 시몬과 (19) 그(예수)를 넘겨준 가룟 유다입니다. (Translated by YG Kim)
마태(마 10:1-4)와 누가(눅 6:12-16)와 다르게 마가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로 부르신 목적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들은 신약 성경에서 사도(apostolos: apostle)들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사도들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직접 부르심을 받은 열두 제자들을 지칭합니다(마 10:2-4; 막 3:16-19; 눅 6:13-16).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난 후에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서 맛디아가 사도로 선출되었습니다(행 1:26). 신약 성경에서는 열두 명의 사도들뿐만 아니라 바울(롬 1:1; 고전 1:1; 갈 1:1)과 바나바(행 13:43, 14:4, 14)와, 아볼로(고전 4:6, 9)도 사도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고 사도라고 이름을 정해 주신 이유를 마가는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막 3:14b-15).
첫째,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자신과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도로 보내시어 말씀을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들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고 난 후에 그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마가는 구체적으로 집 안에 누가 함께 있었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많은 무리들로 인하여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예수님의 소식을 들은 예수님의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잡기 위해서 왔습니다.
(막 3:20) 그(예수)가 집으로 들어가시니, 많은 무리들이 함께 모여들어서, 그 결과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21) 그(예수)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듣고, 그(예수)를 붙잡으려고 나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예수)가 재 정신이 아니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Translated by YG Kim)
먼저 우리들은 예수님을 붙잡기 위해서 온 자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가는 가족이라는 헬라어 명사 ‘오이코스’(oikos: house, fig. family)나 ‘오이케이오스’(oikeios: relative, family)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고 ‘예수님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가의 표현을 통하여 우리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이고, 둘째는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이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하여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였을 때 예수님을 붙잡으러 온 것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족들입니다.
그러면 마가가 ‘가족’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예수님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들로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가는 예수님 가까이 있었던 제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부터 갈릴리로 온 율법학자들을 원근법(perspective)으로 거리감을 표현해서 예수님의 대적자들이 누구인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재 정신이 아니라고’(He has gone out of his mind)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동일한 본문을 다루고 있는 공관복음을 배경으로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이 들려서 눈이 멀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시는 사건(마 12:22; 눅 11:14)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 주시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바알세불의 우두머리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막 3:22)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말하기를 그(예수)가 바알세불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예수)가 귀신들의 우두머리로서 귀신들을 쫓아냅니다. (Translated by YG Kim)
먼저 우리들은 ‘바알세불’(Beelzebul)에 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구약적 배경에서 ‘바알세불’은 ‘바알세붑’(Baal-zebub)이라고 불리는 ‘파리 떼의 왕’ 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파리 떼의 왕’을 섬긴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는 인간에게 해악을 주는 파리 떼의 왕을 섬기는 일이 자신들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모세를 통한 애굽 땅을 향한 10가지 재앙 가운데에서 네 번째 재앙인 파리 떼의 재앙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파리 떼의 왕’이 파리 떼를 자신들에게 보내서 자신들을 책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백성들의 마음이 잘못된 우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바알세붑’은 블레셋 땅 에그론(Ekron) 지역의 신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이 우상의 특징은 병을 고치는 특징(왕하 1:2)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하 1: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또한 신약 시대에서 바알세불을 ‘귀신들의 왕’(마 9:34; 눅 11:15)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시대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Antiochus IV Epiphanes)에 의한 바알세불을 ‘하늘의 주’로 우상 숭배화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약과 중간기 시대의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바알세불’을 ‘사탄’(Satan)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공격하는 율법학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셔서 율법학자들의 논의가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막 3:23) 그래서 그(예수)가 그들을 불러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만일 한 나라가 자신을 분열시키면, 그 나라는 설 수 없고, (25) 만일 한 가정이 자신을 분열시키면, 그 가정은 설 수 없을 것이다. (26) 그리고 만일 사탄이 스스로 [대적하여] 일어나 분열되면, 그(사탄)은 설 수 없고 오히려 끝이 올 것이다. (27) 그러나 아무나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그의 물건들을 탈취할 수 없으며, 먼저 강한 자를 결박 한 후에 그의 집을 탈취할 있다. (Translated by YG Kim)
율법학자들의 공격에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그 비유의 대상은 나라와 집입니다(막 3:24-25). 이러한 예수님의 비유의 핵심은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나라와 집이 내적 분열(internal strife)이 일어나면 그 나라와 그 집은 상대를 향해 힘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더 이상 굳게 설수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사탄에게 적용해 보면 만일 사탄이 스스로 일어나 분열되면 사탄의 집단은 결과적으로 붕괴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막 3:26).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떻게 귀신들을 내쫓는지 한 가지 비유를 더 들어서 설명하고 계십니다(막 3:27). 비유의 핵심적인 내용은 만일 어떠한 사람이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물건들을 약탈한다고(diarpazo: to plunder) 하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한 후에 가능하다는 내용입니다. 이 비유를 예수님과 사탄의 관계로 설명해보면 ‘사람’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고, ‘강한 자’는 ‘사탄’을 상징합니다. 또한 ‘집’은 ‘사탄의 결박 안에 있는 세계의 구성원’들이고, ‘물건들을 탈취하는 것’은 ‘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의 능력이 사탄의 능력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음주 칼럼에 계속됩니다.]
<함께 나누기>
- 초대 교회에서 사도란 누구이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 이외에 사도로 불리운 자들은 누구입니까?
-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사도로 세우신 세 가지 목적은 무엇입니까?
-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예수님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 바알세불에 관하여 설명해 보십시오.
- 율법학자들의 공격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나라와 집의 비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마가복음 3장 27절의 말씀을 예수님과 사탄 그리고 귀신들린 자들의 비유로 설명해 보십시오.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