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2026년 새해에 드리는 야베스의 기도

2026년 새해에 드리는 야베스의 기도

2026년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두 가지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연결되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일상(日常)의 삶 속에서 주어진 공평한 시간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으로 오늘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크로노스’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순례자의 길이라고 하면, ‘카이로스’의 시간은 그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크로노스’의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어떻게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지 고민합니다. 우리는 건강을 위한 운동을 시작하기도 하고, 자기 계발을 위해서 독서와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또한 가족과 이웃들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행복한 삶은 우리의 결단과 노력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해도, 삶은 언제나 우리의 계획에서 벗어나 어려운 순간들을 마주하게 합니다. 예기치 않은 실패와 좌절, 장담했던 건강의 악화, 그리고 가족과 지인들과의 관계속에서 경험하는 슬픔은 우리가 붙들고 있는 ‘크로노스’ 시간의 주도권이 결코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합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우리가 좌절을 경험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세밀하게 개입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납니다.

역대기 기자는 수많은 유다 자손의 이름 가운데에서 두 명의 이름에 주목하고 있는데, 바로 갈미의 아들 아갈(Achar)과 야베스(Jabez)입니다. 갈미의 아들 아갈은 여호수아 7장에 등장하는 아간(Achan)과 동일한 인물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한 이유는 아간의 범죄 때문입니다. 역대기 저자는 ‘아간’을 ‘아갈’로 바꾸는 의도적인 언어유희(wordplay)를 사용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갈’이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입니다.

‘아간’은 문자 그대로 ‘문제를 일으키는 자’(troubler)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아갈’은 ‘괴로움, 고통, 재앙’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간의 범죄 곧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여리고 성의 전리품인 외투 한 벌, 은 이백 세겔,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수 7:21)를 몰래 빼돌린 사건은 단순히 개인적인 탐욕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troubler of Israel)라는 의미를 그 이름 속에 내포하도록 역대기 저자가 언어유희를 사용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아갈’은 하나님께서 주신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통하여 아골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수 7:22-26).

이와 반대로 역대상 4장 9-10절에 등장하는 유다의 자손 야베스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간섭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인물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대상 4:9)라고 언급합니다. 수많은 유다 지파의 이름이 나열되는 족보 속에서 야베스를 향해 이러한 수식어가 붙은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야베스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특별한 인물이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야베스에게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은 행복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야베스의 어머니는 그를 낳을 때 극심한 산통을 경험해서 ‘고통’이라는 히브리어 명사 ‘에세브’(eseb: pain)에서 유래된 ‘야베스’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고대 근동의 사회에서 한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운명이나 성품을 규정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야베스의 이름을 부를 때 그는 ‘고통’이라는 삶의 꼬리표를 달고 인생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자신의 삶 속에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유다의 족보 가운데에서 갑자기 야베스의 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라고 자신의 기도를 시작하고 있는데, ‘복을 받다’(to bless)라는 히브리어 동사 ‘바라크’(barak)는 ‘무릎 꿇다’(to kneel)라는 동사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경험하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되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복은 순례자의 길 위에서 무릎 꿇는 기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며, 예배하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간구하는 행동입니다. 따라서, 야베스가 그의 형제보다 존귀한 자로 불린 이유는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 무릎 꿇고 세 가지 복을 간구하는데 바로 삶의 지경(border)을 넓히는 것과 하나님의 도우심, 그리고 환난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샬롬의 복입니다.

첫째, 야베스는 삶의 지경(gebul: border)을 넓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야베스가 기도하는 삶의 지경은 단순히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라,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확장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이 하나님께 땅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실제로 점유하고 넓히는 과정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수아 7장에 기록되어 있는 아간의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지 않으시면 그들은 아이성을 점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아간의 사건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승리에 취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전리품을 취하지 말라고 (수 6:18) 말씀하시는데, 갈미의 아들 아갈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습니다(수 7:1, 21).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를 호언장담(豪言壯談)했던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게 됩니다(수 7:5).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전리품을 빼돌린 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더 이상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으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수 7:12).

(수 7:12)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원수 앞에서 대항할 수 없었고, 그들의 원수 앞에서 등을 돌려야 했으니, 이는 그들 스스로 진멸할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그 진멸할 것을 너희 가운데서 멸하지 않으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바른 성경)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의 지경을 넓혀 아이성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삶의 지경을 넓혀달라는 야베스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해달라는 간절한 간구입니다.

둘째,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나를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의 손의 구체적인 보호와 인도를 간구합니다. 역대상 29장 12절의 말씀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대상 29:12) 부와 존귀가 주께로부터 나오고, 주께서는 만물의 통치자이시며, 권세와 능력이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고 힘을 주는 것도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바른 성경)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언약의 백성을 도우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인간의 수단보다 훨씬 강력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불에서 건져 주신 것처럼(단 3:19-30),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구해주신 것처럼(단 6:16) 하나님께서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들을 자신의 손으로 보호하고 인도해 주십니다.

셋째, 야베스는 환난을 벗어나 샬롬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이 기도에서 야베스는 자신의 이름에 담긴 비극적인 운명(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환난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야베스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는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야베스는 단순히 추상적인 평안을 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고난으로 이끄는 실제적인 환난과 그로 인한 심적, 육체적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2026년 새해를 맞이한 우리는 많은 계획들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365일의 ‘크로노스’의 시간을 성실히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 길위에서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과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카이로스’의 시간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개역 한글)

<함께 나누기>

  1.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과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1. 역대기 기자가 여호수아 7장에 등장하는 ‘아간’의 이름을 ‘아갈’로 바꾸어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야베스’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어떠한 의미에서 지어 주었습니까?
  1. 야베스가 자신의 삶에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경험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경험한 중요한 단서가 무엇입니까?
  1. 야베스의 첫 번째 간구 ‘삶의 지경’은 어떻게 넓혀집니까?
  1. 야베스의 두 번째 간구에서 하나님의 손은 어떠한 능력이 있습니까?
  1. 야베스의 세 번째 간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 가운데 무엇을 간구하고 있습니까?
  1. 야베스가 기도하는 세 가지 기도를 우리의 기도제목으로 적용해 보십시오.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