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 대한 도전에 관한 예수님의 지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홀로 들어가셔서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막 11:15-19)으로 예수님과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서의 불화가 정점(頂點)에 도달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권위(exousia: authority)에 관한 도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가는 이미 자신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권위에 관한 질문과 선포를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회당 안에서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권위(exousia: authority)에 관하여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막 1:27). 또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이 보는 앞에서 네 명의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께 온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죄 용서함을 선포하셨습니다(막 2:1-5). 이로 인하여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한다고 비판하였고(막 2:7),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죄를 용서하는 권위를 가지고 계시다고 선포하셨습니다(막 2:10). 더 나아가서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밭 사이에서 이삭을 훑은 사건과(막 2:23-27),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오그라진 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쳐 주시는 사건(막 3:1-5)은 바리새인들이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을 죽이려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막 3:6).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행동으로 인하여 성전을 중심으로 한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위가 무너질까 봐 근심하였기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謀議)하였습니다(막 11:18). 그리고 이러한 모의는 예루살렘 산헤드린(Sanhedrin)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산헤드린은 1세기 유대 사회의 최고 의결 기관이자 재판 기관으로서 종교적 사안뿐만 아니라 로마의 통치권 아래에서 허용된 범위 안에서 정치적, 사법적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로 구성되어 있는 산헤드린의 구성원들이 성전을 걷고 있는 예수님께 다가와 권위에 관하여 질문을 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막 11:27) 그리고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예수)가 성전 안에서 걷고 계실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28) 그리고 그들이 그(예수)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권위 안에서 당신이 이러한 것들을 행합니까? 또는 누가 당신에게 이러한 것들을 행할 수 있는 권위를 주었습니까? (29)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희들에게 한 마디 묻겠다.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어떤 권위 안에서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지 너희들에게 말해 주겠다.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였는가, 아니면 사람들로부터였는가? 나에게 대답하라.” (31) 그러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말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늘로부터 라고 말한다면, 그(예수)가 말할 것이다. ‘그러면 왜 너희들은 그를 믿지 않았느냐?’ (32) 그렇다고 사람들로부터 라고 우리가 말해야 하는가?” 그들은 그 무리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요한을 진정한 선지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3)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 대답하여 말했습니다.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어떠한 권세 안에서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Translated by YG Kim)
마가는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걷고 계실 때, 산헤드린의 구성원들이 총 출동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져 예수님을 죽이려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은 한 가지 같은 목적으로 예수님께 다가와서 두 가지 권위에 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의 첫 번째 질문은 ‘어떠한 권위로 예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행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누가 예수님께 이러한 것들을 행할 수 있도록 권위를 주셨는가?’라는 질문입니다(막 11:28).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언급하고 있는 ‘이러한 것들’(these things)의 범위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행하신 성전 정화 사건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역을 통하여 행하신 기적과 이에 따른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이 예수님께 이러한 두 가지 질문을 던진 이유는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수사학적 함정(rhetorical trap)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공식적인 허가 없이 이러한 일들을 행했다고 답변하시면, 예수님을 권위 없는 인물로 몰아 대중의 지지를 잃게 할 수 있고,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 안에서 이러한 일들을 행했다고 답변하시면 ‘성전 모독’이나 로마에 대한 ‘선동죄’로 고발할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역 질문’(Counter-question)을 하셨습니다. ‘역 질문’이란 예수님 당시에 질문에 질문으로 답변하는 랍비들의 전형적인 논쟁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의 공격을 방어하셨을 뿐만 아니라,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의 명예에 도전하고, 그들이 대답하지 못할 경우 질문의 의미 자체를 상실하게 하는 수사학적 전략을 선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이 질문한 논쟁의 초점을 세례 요한의 권위로 이동시키십니다. 그 이유는 세례 요한의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과 긴밀히 연결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사십 일 동안 시험을 받으신 후,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가 자신의 동생 빌립(Philip)의 아내 헤로디아(Herodias)와 통간(通姦)한 일을 책망하던 세례 요한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후에 ‘회개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막 1:15). 이러한 연결 고리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사역 전체와 그의 메시지를 대변하는 제유법적 표현으로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였는가, 아니면 사람들로부터였는가?”(막 11:30)라고 질문하십니다.
“하늘로부터였는가?”(ek ouranou: from heaven)라는 예수님의 표현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피하기 때문에 사용된 전형적인 완곡어법(circumlocution)으로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권위를 주셨는가?’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와 반대로 “사람들로부터였는가?”(ek anthropon: from men)라는 질문은 세례 요한의 사역이 신적 기원이 없는 순수한 인간적인 발상에 근거하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입니다.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을 향한 예수님의 ‘역 질문’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하늘로부터’ 권위를 위임 받았다는 평행 구조 안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이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는 것은 그가 증언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역 질문을 받은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은 두 가지 선택의 딜레마 가운데에서 서로 의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논의는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득을 따지기 위한 논쟁이었기에 정직한 답변을 하기 보다, 예수님의 역 질문에 꾀를 써서 벗어나고자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은 만일 자신들이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으로부터’라고 인정한다면, 왜 자신들은 세례 요한을 믿지 않는지에 관한 자기모순(self-contradiction)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막 11:31).
이와 반대로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이 ‘사람들로부터’라고 답변하지 못한 이유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군중의 반응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막 11:32). 당시 예루살렘에 있는 무리들은 세례 요한을 참된 선지자로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요한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대중적인 지지를 잃거나 폭동을 유발할 위험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은 예수님의 역 질문에 자신들의 의견을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을 중심으로 한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정치적인 계산을 우선시 하였기에 결국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막 11:33b)라고 답변합니다.
이러한 답변은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이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득을 찾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요한의 권위를 인정하면 자신들의 불신앙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했고, 부정하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는 군중의 분노를 살까 두려워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유대 사회의 최고 의결 기관이자 재판 기관인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한의 권위조차 판단하지 못함으로 유대인들의 지도자로서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는 수치스러운 항복을 하였습니다.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의 답변을 들은 예수님께서도 “나도 어떠한 권세 안에서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지 말하지 않겠다”(막 11:33d)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신 것은 단순히 질문을 피하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알고 말씀하신 권위 있는 심판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함정에 지혜로운 역 질문으로 반응하시고, 그들을 침묵하게 하셨습니다.
이 논쟁의 결론은 예수님과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서 진행되어지는 포도원 농부 비유(막 12:1-12), 세금 논쟁(막 12:13-17), 부활 논쟁(막 12:18-27), 그리고 다윗의 아들 논쟁(막 12:35-27)의 서막에 해당됩니다. 마가는 이러한 논쟁을 통하여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의 완악암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 눈 멂을 강조해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함께 나누기>
-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왜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습니까?
- 예루살렘 산헤드린(Sanhedrin)은 어떠한 기관입니까?
-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던진 두 가지 질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두 가지 수사학적 질문은 함정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 함정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역 질문’의 내용은 무엇이고, 이러한 역 질문을 통한 예수님의 수사학적 전략은 무엇입니까?
- 왜 예수님께서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권위에 관한 질문에 세례 요한과 연결해서 역 질문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의 역 질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 왜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예수님의 역 질문에 답변하지 못했습니까? 두 가지 답변의 가능성에서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함께 논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진리를 찾고 있습니까? 아니면 정치적 이득을 찾고 있습니까?
- 예수님의 역 질문에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의 답변을 들은 예수님께서도 “나도 어떠한 권세 안에서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지 말하지 않겠다”라고 답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칼럼:교회를향한 하나님의메시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https://i0.wp.com/christiantimes.ca/wp-content/uploads/conversation1006.jpg?resize=324%2C160&ssl=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