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의 압축본(Plot Synopsis) 포도원의 비유 II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농사 경영의 방법으로 사용되었던 ‘부재 지주’(absentee landlord) 제도를 통하여 소작인에게 포도원을 맡기고 타지로 떠났습니다(막 12:1f).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의 첫 수확을 거둘 수 있는 3-5년의 시간이 지난 후 첫 번째 포도 수확의 ‘때’(kairos: time)가 되었을 때 포도원 소출 가운데에서 자신의 몫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종’(doulos: slave)을 법적 권한을 위임 받은 대리인으로 소작인들에게 보냈습니다(막 12:2).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포도 수확의 개념으로서 ‘때’는 ‘과거-현재-미래’로 연결되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의 순간에 개입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원 비유로 말씀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의와 진리의 열매를 기대하시며 선지자들을 보내신 시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의 정당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소작인들은 포도원 주인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소작인들은 주인이 보낸 첫 번째 종을 잡고 때렸으며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막 12:3). 특별히 ‘때리다’(dero: to beat)라는 동사의 본래 의미는 ‘가죽을 벗기다’(to skin, to flay)라는 의미로, 소작인들의 폭행이 종의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심한 폭력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소작인들은 포도원 주인의 정당한 소유권 요구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종을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소작인들의 폭행으로 첫 번째 종이 빈손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포도원 주인은 다시 두 번째 종을 보냅니다(막 12:4a). 이러한 모습은 포도원 주인이 소작인들을 향한 보복 대신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소작인들은 포도원 주인이 보낸 두 번째 종의 머리를 때리고 모욕했습니다(막 12:4b). ‘머리를 때리다’라는 헬라어 동사 ‘캐파리오’(kephalioo: to strike in the head)는 신약 성경에서 단 한 번 사용이 되는 ‘하팍스 레고메나’(Hapax Legomena)로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에서만 사용된 동사입니다.
예수님 당시 문화적 배경에서 비유를 해석한 케네스 베일리(Kenneth E. Baily) 교수는 소작인들이 두 번째 종의 머리를 때리고 모욕한 행동은 단순한 신체적 가해를 뛰어 넘어선 ‘수치스러운 대우’(shameful treatment)를 강조한 표현이라고 언급합니다. 고대 중동의 팔레스타인 문화권에서 개인의 명예는 지극히 숭고하게 여겨졌기에, 머리를 치는 행위는 상대방을 철저히 모욕하려는 의도적인 행동입니다(Kenneth E. Baily, Jesus Through Middle Eastern Eyes: Cultural Studies in the Gospels, IVP Academic, 2008, p. 647).
따라서 소작인들이 두 번째 종의 머리를 때리고 모욕하는 심각한 행동으로 포도원 주인의 명예와 권위에 정면 도전하였기 때문에, 포도원 주인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즉각적인 보복을 하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극악무도한 소작인들의 행동은 포도원 주인의 인내를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가 되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무장한 군대를 보내는 대신 세 번째 종을 보냈고, 세 번째 종은 결국 소작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막 12:5a). 하지만 포도원 주인은 소작인들의 무례한 행패(行悖)에 굴복하지 않고, 이번에는 한 명의 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종을 한 번에 보냈습니다. 그러자 소작인들은 종들을 일부는 때리고, 일부는 죽였습니다(막 12:5b).
이러한 모습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이 겪었던 핍박과 죽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냈지만 언약의 백성들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교만하여 악을 행하였습니다.
(렘 7:25) 너희 조상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내 모든 종들 곧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날마다 일찍 일어나서 보내었으나, (26)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으며, 목을 뻣뻣하게 하여 그들의 조상보다 더 악을 행하였다. (바른 성경)
이러한 반역의 역사적 흐름이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에서는 종들을 때리고, 모욕하고 심지어 죽이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점진적으로 강화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는 고대 근동의 일상의 삶 속에서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부재 지주’(absentee landlord) 제도의 상황에서 시작되었지만, 매우 평범한 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관심을 가지게 하여서 독자들의 예상을 뛰어 넘는 놀라움의 연속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유의 특징을 프랑스 철학자인 폴 리쾨르(Paul Ricoeur)는 비유의 ‘과잉성’(extravagance)이라고 불렀습니다(Paul Ricoeur, “Biblical Hermeneutics,” Semeia 4 (1975) 99, 109, 112-18). 결국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비유를 통하여 이야기의 서사 구조를 뛰어 넘는 포도원 주인의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선포하십니다(Norman A. Huffman, “Atypical Features in the Parables of Jesus,” JBL 97(1978): 208).
소작인들이 포도원 주인의 법적 대리인인 종들을 때리고, 모욕하고, 죽이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포도원 주인은 무장한 군대를 보내는 대신 마지막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을 포도원에 보내기로 결정합니다(막 12:6).
‘사랑하는’이라는 헬라어 형용사 ‘아가페토스’(agapetos: beloved)는 마가복음에서 3번 사용이 되는데, 처음 두 번은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호칭하신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에서도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은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막 1:11)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 하늘에서 들린 음성 또한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막 9:7)라는 음성입니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에서 예수님의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이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을 마지막으로(eschatos: last) 포도원에 보낸다는 의미는 주인의 아들을 종말론적인 메시아로 보냈다고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주지 않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소작인들이 자신의 아들의 고귀한 신분을 보고 수치심을 느껴 회개하고 자신의 아들을 존경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막 12:6c). 따라서 포도원 주인은 군대를 보내는 대신, 아무런 군사적 위협도 가지고 있지 않아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없는 전적인 취약성(total vulnerability)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포도원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포도원 주인이 보낸 아들이 ‘상속자’(kleronomos: heir)임을 알고 그를 죽였습니다(막 12:7-8). 이러한 모습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의 특별한 권위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기를 거부했음을 암시합니다.
특별히 7절 하반절에서 ‘이 사람이 상속자이다. 오라 우리가 그를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라는 표현은 예수님 당시 유대 법전 미쉬나(Mishnah)에서 언급하는 ‘점유권’(squatter’s rights)과 관련된 개념입니다. 소작인들은 주인이 죽었다고 가정하고, 유일한 상속자인 아들만 제거하면 3년 동안 땅을 점유함으로써 합법적으로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무모한 도박을 한 것입니다.
“The legal period of possession for houses, cisterns, trenches, caves, dovecotes, bath-houses, olive-presses, irrigated fields, slaves, and anything which continually produces a yield is three complete years.” (Mishnah, Seder Nezikin, Tractate Bava Batra 3:1)
결국 그들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습니다(막 12:8).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벽 밖에서 처형되실 것을 예고하는 것이며, 심지어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장례조차 치러주지 않는 철저한 모욕과 메시아로서 예수님을 향한 거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막 12:9a)라고 질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비유를 듣고 있는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통하여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하게 하십니다. 포도원 주인이 직접 포도원에 와서 소작인들을 죽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포도원을 넘겨주는 것처럼(막 12:9b),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실패한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권위를 빼앗아 예수님께 충성하는 새로운 신앙 공동체인 열 두 제자들과 믿음의 공동체 그리고 이방인들에 넘겨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비유의 결론에서 시편 118편 22-23절을 칠십인역(LXX: Ps 117:22-23)으로 문구의 변화 없이 그대로 인용하셔서 말씀하십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
이것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이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니,
우리의 눈에는 놀라운 일이다.” (막 12:10b-11)
포도원 비유에서 ‘소작인’들과 마찬가지로, 시편 118편 22절에서 ‘건축자들’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또한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판단하여 내버린 이 ‘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특별히 ‘아들’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명사 ‘벤’(ben)과 ‘돌’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명사 ‘에벤’(eben)의 발음의 유사성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소작인들에 의해 살해 당한 ‘아들’이 성경에서 예언한 승리한 ‘머리돌’이 될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은 ‘모퉁이의 머릿돌’(cornerstone)이 되었습니다.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머릿돌’이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기초석’(foundation stone)으로 해석하기 보다, 솔로몬의 유언(Testament of Solomon) 22:7-9; 23:1-4절을 근거해서 ‘높이 올려진 모퉁이 돌(elevated cornerstone) 또는 아치형의 쐐기돌(keystone)로 건축 구조의 가장 위쪽에 놓이는 돌이라는 해석의 가능성을 제기합니다(Joel Marcus, Mark 8-16, The Anchor Yale Bible 27a, pp. 808-809). 그 이유는 ‘머리’(kephale: head)라는 단어가 보통 수직적인 상승이나 높이를 암시하며, 특별히 예수의 부활을 암시하는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And there was a great cornerstone that I wished to put at the head of the corner crowning the Temple of God. And all the tradesmen and all the spirits who labored on it came together to bring the stone and set it on the pinnacle of the Temple” (Testament of Solomon A 22:7-9)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포도원 비유는 구약 성경을 포함한 마가복음 전체의 핵심적인 줄거리를 구속사적 관점에서 요약한 ‘압축판’(Plot Synopsis)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를 깨달았지만, 무리를 두려워해서 예수님을 붙잡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막 12:12-13).
<함께 나누기>
-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에서 ‘카이로스’의 ‘때’를 구속사적 관점에서 설명해 보십시오.
- 소작인들은 포도원 주인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종들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 마가복음에서 ‘사랑하는’이라는 형용사는 어떠한 배경과 의미에서 사용이 됩니까?
- 소작인들이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유대 법전 미쉬나(Mishnah)에서 언급하는 ‘점유권’(squatter’s rights)과 관련된 개념으로 설명해 보십시오.
- 포도원 주인은 자신의 아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소작인들을 어떻게 했습니까? 포도원의 주인이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 ‘포도원 비유’와 ‘건축자들의 버린 돌’ 비유를 알레고리 해석으로 설명해 보십시오.
- ‘모퉁이의 머릿돌’의 의미를 설명해 보십시오.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을 통해 드러난 기독론](https://christiantimes.ca/wp-content/uploads/conversation1006-324x16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