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어린양과 메시아적 기름부음
마가복음 14:1-16:8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사건, 그리고 부활에 관한 서사(Narrative)입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1-13장의 내용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이 갈릴리(1-8:21)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위에서의 가르침(8:22-10장), 그리고 성전 논쟁을 통한 종말론적인 메시지(11-13장)로 이어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긴 서론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바로 그 목적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입니다.
마가복음의 수난 기사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정교한 교차 대구법(Chiasm)을 통한 샌드위치 구조(Sandwich Structure)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1부에서 예수님의 수난의 준비와 체포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면(막 14:1-52), 그 중심부인 제2부에서는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는 과정과 십자가 처형, 그리고 장사(burial)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막 14:53-15:47). 그리고 제3부에서는 빈 무덤과 부활의 선포를 다룹니다(막 16:1-8).
마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수난 기사(Passion Narrative)를 통하여 (1)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구속사적 필연성에 따른 순종임을 명확히 밝히고, (2)십자가의 역설을 통하여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3)실패한 제자들과 대비되는 여인들(막 14:3; 16:1)과 아리마대 요셉(막 15:43)의 신실한 헌신을 통해 참된 제자도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마가복음 14장 1-11절은 예수님의 수난 기사의 서곡(Prelude)이자 주제적 서론(Introduction)으로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마가는 이 사건을 샌드위치 구조를 통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바로 (A) 종교 지도자들의 살해 음모(막 14:1-2)와, (B) 베다니 한 여인의 향유 옥합 사건을 통한 장례 준비(막 14:3-9), 그리고 (A´) 가룟 유다와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막 14:10-11)입니다. 마가는 이러한 샌드위치 구조를 통하여 종교 지도자들과 유다의 살해 음모(A, A´)와 한 여인의 순전한 헌신(B)을 극적으로 대조시켜, 예수님의 수난 기사의 주제적 서론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살해 음모는 유교절(pascha: Passover)과 무교절(azymos: festival of unleavened bread)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마가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음모를 구속사적인 관점과 기독론적인 관점에서 기록하여, 예수님의 대적자들의 음모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신적 주권을 강조합니다.
(막 14:1) 그리고 유월절과 무교절이 이틀 후였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어떻게 그(예수)를 속임수로 붙잡아 죽일 수 있을지를 찾고 있었습니다. (2) 왜냐하면 “백성의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절기에는 [그를 죽이는 것을] 하지 말자”라고 그들이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Translated by YG Kim)
니산월(3-4월) 14일 저녁에서 시작해서 15일 저녁에 끝나는 유월절(출 12:27)은 출애굽의 과정에서 열 번째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이고(출 12:7), 니산월 15일 저녁에서 시작해서 21일 저녁까지 칠일 동안 진행되는 무교절(출 12:17)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급하게 빠져나오기 위해서 밀가루에 누룩을 넣어 빵을 부풀릴 시간이 없었던 상황을 기억하는 절기로 구약 성경에서 별개의 절기입니다. 그러나 1세기 유대교에서는 일주일 전체를 가리켜 유교절과 무교절이 통합되어 사용되었습니다.
마가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속임수로 죽이려는 시점을 정확히 언급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두 절기가 구약 성경에서 백성들을 억압에서 해방시킨 사건을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기념하는 절기였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반란을 피하고자 이 두 절기를 피해 예수님를 죽이려 했으나, 결국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죽으심으로써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우연한 정치적 비극이 아니라, 출애굽 역사 속에서 구원의 핵심인 유월절 어린 양의 대속적 희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 대표되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은밀한 속임수(dolos: deceit)로 예수님를 잡아 죽일 계획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대중적 인기에 밀려 백성들의 반란(thorybos: riot)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은 로마 제국의 총독 빌라도와 협력하며 유대의 종교적·정치적 질서를 관장하는 기득권층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유대 민족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과 무교절에 예수님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대중적인 반란이 일어날 경우, 로마 제국은 이를 정치적 반란이나 소요 사태로 간주하여 무장 군대를 투입해 무자비하게 유혈 진압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결과 산헤드린 지도자들은 유대 땅의 질서 유지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자신들의 지위와 정치적 영향력을 잃게 될 것이 분명했기에 백성의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절기에는 예수님을 죽이지 말자고 결의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수난 기사의 장소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베다니 나병 환자의 집으로 이동시킵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한 여인이 삼백 데나리온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14: 3) 그리고 그(예수)가 베다니에서 나병(악성 전염성 피부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시고, [식사를 위해] 비스듬히 누워 계실 때 한 여인이 순수하고 매우 값비싼 나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린 후에 그(예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4) 그러자 어떤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분노하며 말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향유의 낭비가 발생했는가? (5) 왜냐하면, 이 향유가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를 가만히 두어라. 왜 그녀에게 괴로움을 주느냐? 그녀는 나에게 좋은 일을 행하였다.” (7) 왜냐하면 너희들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너희들 곁에 두고, 너희들이 원할 때마다 그들에게 [좋은 일을] 행할 수 있다. 그러나 나를 너희들이 항상 곁에 둘 수 없다. (8) 그녀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을 행하였다. 그녀는 장사 준비를 위해 내 몸에 향유를 바르는 일을 미리 행하였다. (9) 내가 진실로 너희들에게 말한다. 어디에서든지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면, 이 여자가 행한 일도 그녀를 기억해서 말해질 것이다. (Translated by YG Kim)
이 사건은 사복음서에 공통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막 14:3-9; 마 26:6-16; 눅 7:36-50; 요 12:1-8). 각각의 복음서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성향(Theological tendency)에 따라서 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향유를 붓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죽음으로 인한 장사(burial)를 준비하는 행위로 이 여인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의 틀(frame) 안에서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만, 예수님을 ‘인자’(the Son of Man)로 선언하며(마 26:2) 유월절 수난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연결시킵니다. 마태복음은 ‘인자’라는 칭호와 관련된 예수님의 수난 예언(마 17:22-23; 20:18-19)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지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서 마가복음에서 ‘어떤 사람들’이 여인이 옥합을 깨뜨린 사건을 낭비로 책망하지만(막 14:4), 마태복음에서는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한 비난의 주체가 제자들임을(마 26:8) 분명히 밝혀서, 기름 부음에 대한 제자들의 오해를 명백히 하고, 기름 부음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칩니다(마 26:12).
누가복음은 장소와 시간적 순서 면에서 다른 해석을 제시합니다. 마가, 마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 계셨지만,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갈릴리에 있는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계셨습니다. 마가, 마태, 요한복음에서는 이 사건이 예수님의 장사를 위한 기름 부음을 강조하는 반면, 누가는 기름부음에 관한 예수님의 해석을 생략하고 ‘두 빚진 자의 비유’(눅 7:41-42)를 추가하여 이 여인의 행위에 적용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두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장사를 위한 기름 부음 해석을 생략합니다. 더 나아가서 누가는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도 용서하는가?”(눅 7:49)라는 기독론적 질문을 통해 죄 많은 여인이 옥합을 깨뜨린 사건을 예수님의 죄 용서의 권한을 드러내는 기독론적 사건으로 기록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사도 요한의 신학적 성향이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11:47-53에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표적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가야바의 음모를 기록합니다(요 11:49-50). 그러나 요한은 가야바의 말이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하나님의 예언이라고 기록합니다(요 11:52). 이를 통해 요한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그리고 이방인 선교를 강조합니다.
마가와 마태와 달리 요한은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신 것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신 나사로의 집에 계시다고 기록합니다(요 12:1-2). 또한 옥합을 깨뜨려 발에 부은 여인의 이름을 ‘마리아’로 명시함으로써, 이 사건을 익명의 돌발적 헌신이 아니라 죽은 오빠를 살려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구체적인 사랑의 고백으로 기록합니다. 더 나아가 요한은 마리아의 헌신을 비난한 인물로 ‘가롯 유다’를 특정하면서(요 12:4), 예수님께 전부를 드리는 참된 제자 마리아와 탐욕으로 예수님을 팔아 넘길 배반자 가룟 유다의 선명한 신학적 대조를 완성합니다.
요한은 죽었던 나사로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입증하며, 그 자리에서 부어진 마리아의 향유는 곧 다가올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장사를 미리 준비하는 구속사적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사복음서의 특징들을 통하여 우리는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한 여인이 삼백 데나리온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사건의 신학적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전통 속에서 인물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행위는 왕이나 제사장을 세울 때 행해지던 거룩한 예식입니다(출 29:7; 삼상 10:1; 왕하 9:3; 시 23:5). 그러나 마가복음에서의 역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환영해야 할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속임수로 잡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점입니다(막 14:1-2). 반면, 성전 밖 외곽 베다니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라는 소외되고 부정하다고 여겨지던 장소에서는 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예수님을 왕과 메시아로 공인하고, 예수님의 장사를 선제적으로 준비합니다. 이러한 기름부음은 예수님의 죽으심 이후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려 했던 행동(막 16:1)에 대한 선제적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행동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때 함께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과적으로 마가는 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강조하며, 이 여인의 행동이 예수님의 장사를 위한 예언적 준비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 다음 호에 본문 주석이 계속됩니다.)
<함께 나누기>
- 예수님의 수난 기사(Passion Narrative)를 통하여 우리가 깨닫는 세 가지 특징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던 유월절과 무교절을 설명해 보십시오.
-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유월절과 무교절을 피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 마가복음 14장 1-2절과 다르게 마태복음 26장 2절에서 예수님을 ‘인자’로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에서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린 사건을 낭비로 책망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 누가복음에서는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린 사건의 장소와 시간적 순서가 다릅니다. 그 내용과 이유를 설명해 보십시오.
-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린 사건은 마가복음과 마태복음과 비교해서 어떠한 차이점이 있습니까? 요한복음에서 이 장소가 나사로의 집이라는 사실이 주는 신학적 특징은 무엇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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