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를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신랑을 빼앗기는 날에 금식하라

신랑을 빼앗기는 날에 금식하라

마가복음 2:18-22절의 말씀은 요한 마가가 예수님의 기독론을 중심으로 배치한 다섯 가지 사건의 중심부에 해당이 되는 내용입니다. 마가는 마가복음 2:1-3:6절의 말씀에서 교차대구법(Chiastic Structure)이라는 수사학적 방법을 통하여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기독론을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미 살펴본 봐와 같이, 마가는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쳐 주시는 사건(막 1:40-45)을 통한 메시아의 비밀(Messianic Secret)이라는 구조(framework)를 제시하고, 다섯 가지 사건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우리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쳐 주시는 사건을 통하여 죄 용서함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선포하셨고(막 2:1-12), 세리 레위를 부르시는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는 사실을 선포하셨습니다(막 2:13-17). 그리고 마가는 마가복음 2:1-3:6절의 중심에 있는 금식 논쟁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함축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막 2:20).

마가복음 2:18-22절의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먼저 2:18-20절의 말씀에서는 금식 논쟁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함축적으로 암시하고 있고, 2: 21-22절의 말씀을 통해서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과 관련된 두 가지 비유를 통하여 유대인들의 전통과 예수님의 사역이 어떠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 상황 가운데에서 발생한 금식에 관한 논쟁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막 2: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예수)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랑이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신랑의 친구들이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이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신랑을 그들로부터 빼앗김을 당할 날이 올 것인데, 그 날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Translated by YG Kim)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에 따라서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어떠한 이유로 금식을 하고 있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금식은 일년에 한번 대 속죄일(The Day of Atonement)로 이스라엘의 달력으로 일곱째 달(Tishri) (로마력으로는 9월-10월 초) 10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인 열심은 대 속죄일의 금식 이외에 추가적인 금식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스가랴 8:19절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나라를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넷째 달, 다섯째 달, 일곱째 달, 열째 달에 금식을 했습니다. 이러한 금식을 통하여 그들은 나라를 찾을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기쁨으로 금식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만이 페르시아 제국 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던 날을 기억하면서 부림절(Purim)에 금식하였습니다(에 9:31). 더 나아가서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였습니다(눅 18:12).

우리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어떠한 절기나 이유로 동일한 날에 금식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이 그들의 전통에 따라서 금식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하는 내용이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제자들과 함께 금식에 참여하지 않는지에 관한 질문입니다(막 2:18c).

예수님에게 질문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구약의 전통으로 주어진 금식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 않는지에 관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금식의 본질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금식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셔서 참된 금식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계신 내용은 ‘지금 혼인 잔치가 진행되어지고 있는데 신랑의 친구들이 어떻게 아무런 음식도 먹지 않고 금식할 수 있는가?’라는 반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 비유’(wedding metaphor)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를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의 시작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 1:1)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 그리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로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신랑의 역할을 하고 계시고, 그의 제자들은 신랑의 친구들로 혼인 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구약 성경에서 ‘신랑’(nymphios: bridegroom)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창조주이시면서 동시에 남편의 역할을 감당하여서 그들을 구속해 주십니다(사 54:4-8; 61:9).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금식의 시간은 언제입니까? 바로 ‘신랑을 그들로부터 빼앗김을 당하는 날’(막 2:20)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심문 당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는 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날로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날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랑을 그들로부터 빼앗김을 당하는 날’은 레위기 16장에 기록되어 있는 ‘대 속죄일’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6:29절의 말씀에서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스스로 괴롭게 하다”는 의미를 이사야서 58:3, 5절 말씀을 통해 해석해 보면 금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 속죄일에 금식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대 속죄일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비하심, 그리고 선택 받은 언약의 백성들을 향한 용서와 정결을 강조하기 위해서 대 속죄일을 지정하셨습니다. 대 속죄일의 가장 중요한 행사는 제비로 뽑은 염소 두 마리를 가지고, 한 마리를 여호와를 위해서 속죄제물로 드리고(레 16:8, 9) 다른 한 마리는 회막문 여호와 앞에서 취하여 아사셀(Azazel)을 위하여 광야로 보내는 의식입니다(레 16:10).

특별히 아사셀을 위해서 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아론은 두 손으로 숫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모든 불의와 그들의 범죄와 반역과 온갖 죄를 염소에게 전가하여서 그 죄를 부정한 장소인 광야로 추방하는 의식입니다(레 16:21-22). 그러므로 대 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을 하는 본질적인 의미는 자신의 죄가 염소에게 모두 전가되어서 용서함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구약의 대 속죄일에 금식을 하는 행동은 예수님께서 상징적으로 예언하고 계신 혼인 잔치에서 신랑을 빼앗김을 당하는 날의 금식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대 속죄일에 언약의 백성들이 자신의 죄 용서함을 받았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심으로 인하여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신 사건과 연결되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들에게 속량(redemption) 곧 죄 사함의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히 9:12-13).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에서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금식하지 말고 신랑을 빼앗기는 날에 금식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상징하고 있고, 죄 용서함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금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은유적으로 말씀하시고 난 후에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과 관련된 두 가지 비유를 통하여 복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하십니다.

(막 2:21) “아무도 오래된 옷에 새로운 천 조각을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천 조각이 오래된 것을 잡아당겨서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그리고 아무도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부대들을 터트릴 것이다. 그리고 포도주와 가죽부대들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두 가지 격언은 비유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비유는 오래된 옷에 새로운 천 조각을 대고 깁지 않는 것이고(막 2:21), 두 번째 비유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담지 않는 것입니다(막 2:22a).

이 두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대조해서 함께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오래된 옷’과 ‘낡은 가죽부대’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바로 유대교의 전통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전통과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서 금식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전통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본질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복음으로 상징되어지는 ‘새로운 천 조각’과 ‘새 포도주’를 율법으로 상징되어지는 ‘오래된 옷’과 ‘낡은 가죽부대’와 연결시키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전통에 사로 잡혀서 이미 시작되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새 언약이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시작되었고, 또한 구약의 역사 가운데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정화된 형식이 본질과 함께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전통 안에서 주어진 형식을 완성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함께 나누기>

  1.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은 구약의 전통에 따라서 형식에 치우쳐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금식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구약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금식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1. 예수님의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신랑을 그들 로부터 빼앗김을 당하는 날’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1.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과 구약의 대 속죄일은 어떠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왜 대 속죄일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날에는 금식해야 합니까?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두 가지 격언에서 ‘오래된 옷’과 ‘낡은 가죽부대’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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