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다시 시작된 종교개혁
제3편. 세대가 잇는 미래 – 개혁은 가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종이 한 장으로 시작된 이야기
루터의 개혁은 거대한 조직이 아닌, 종이 한 장으로 시작되었다. 그가 들고 있었던 것은 칼이 아니라, 펜이었다. 그 펜 끝에서 흘러나온 글자들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508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개혁은 또 한 장의 종이로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이번엔 ‘95개 반박문’이 아니라, 하루의 가정 루틴, 하나의 가정 예배 일정표, 한 장의 Table Talk(D6 Splink) 카드일지 모른다.
루터가 교회 문 앞에 못질을 했다면, 오늘 우리는 식탁 옆 벽에 하루의 말씀 일정을 붙인다. 그것이 우리의 21세기 비텐베르크 선언이다.
개혁은 가정에서 멈추지 않는다
D6의 개혁은 ‘가정 회복’에서 출발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가정에서 교회로, 교회에서 세상으로 이어지는 순환형 개혁 구조다. 신앙이 가정 안에서만 머문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가정주의’다. 복음은 흐른다. 가정에서 흘러 교회로 가고, 교회에서 세상으로 스며든다. 이것이 세대가 잇는 복음의 방향성이다.
루터가 수도원 담을 넘어 말씀을 세상으로 돌려주었다면, 오늘 우리는 교회 건물의 담을 넘어 복음을 다시 일상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세대의 단절을 넘어, 언약의 흐름으로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세대 단절’이다. 교회는 여전히 다음 세대를 외치지만, 그 다음 세대는 이미 교회를 떠났다. 아이들이 교회를 잃은 것이 아니라, 교회가 아이들의 언어를 잃었다. 예배의 언어, 설교의 언어, 대화의 언어가 달라졌다. 부모는 스마트폰을 들고, 자녀는 유튜브를 듣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들으라”(Shema)고 말씀하신다. ‘들으라’는 명령은 단순한 청각의 행위가 아니라, 세대 간의 경청(순종)의 회복을 뜻한다. D6의 개혁은 바로 그 회복에서 시작된다. 부모가 자녀의 말을 듣고, 자녀가 부모의 신앙 이야기를 들으며, 세대가 함께 말씀을 듣는 공동체, 그것이 언약의 흐름을 잇는 교회다.
디지털 문명과 경량 교회
21세기의 종교개혁은 단순히 교리의 문제가 아니다. 이 시대는 속도의 문명, 과잉의 시대다. 사람들은 더 많이 알고, 더 빨리 소비한다. 하지만 믿음은 빠르게 성장하지 않는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경량 교회다. 프로그램을 줄이고, 루틴의 밀도를 높이는 교회. 건물을 확장하는 대신, 가정의 식탁을 세우는 교회. 사람을 모으는 대신, 세대를 잇는 대화를 복원하는 교회이다. 루터가 면벌부의 무게를 벗겨냈듯, 오늘 우리는 종교적 과잉의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 신앙의 무게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지는 것이다.
선교적 가정, 새로운 비텐베르크의 모델
D6가 그리는 미래의 교회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선교 공동체다. 가정이 곧 선교지이고, 식탁이 곧 강단이다. 부모의 기도가 자녀의 선교 첫걸음이 되고, 아이의 질문이 세상과의 대화가 된다. ‘선교적 가정(MissioFamily)’은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집이 아니라, 복음이 체화된 일상의 공간이다. 그 가정은 말씀을 나누고, 이웃을 초대하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낸다.
루터의 비텐베르크가 한 도시였다면, 오늘의 비텐베르크는 수많은 가정들이다. 그 집들 안에서 복음의 불씨가 켜지고, 그 불이 모여 교회를 다시 밝힌다.
D6 95개 반박문 – 새로운 세대를 향한 선언
루터의 95개 반박문은 교황에게 던진 도전이었지만, D6의 95개 반박문(홈페이지 참고/www.d6familykorea.kr)은 세대에게 던지는 초대다. 그 선언은 신학 논쟁이 아니라, 생활의 신학이다. 면벌부가 아니라 루틴, 프로그램이 아니라 관계, 제도적 교회가 아니라 세대적 교회이다. 루터가 문 앞에서 못질했다면, 이제 우리는 이렇게 못질한다. “하루의 루틴, 일상의 순종, 세대의 대화.” 그 세 가지가 오늘의 종교개혁이다.
D6의 목표는 단순한 세대 통합이 아니다. 그것은 세대를 통하여 복음이 확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가정의 예배’가 ‘교회의 부흥’으로, ‘교회의 루틴’이 ‘세상의 선교’로 이어진다. 종교개혁은 한 사람의 결심이었지만, 오늘의 개혁은 한 세대의 결단이어야 한다.
다시, 식탁에서 세상으로
이제 우리는 다시 출발점에 선다. 루터가 성문에 못질했던 그날처럼, 우리는 오늘, 식탁 위에 말씀을 못질한다. 그리고 그 못질이 다시 세상을 향해 퍼져 나간다. 그렇게 복음은 세대를 넘어, 문화를 넘어,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
[3부작을 마무리하며]
가정에서 다시 시작된 종교개혁 3부작은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글이 아니다. 루터가 면벌부의 시대를 끝냈듯, 우리는 위탁신앙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 그 시작은 거대한 운동이 아니라, 하루의 식탁, 한 번의 기도, 한 세대의 결심이다. 이제 새로운 개혁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 현장은 비텐베르크의 성문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 우리의 식탁이다.



![[칼럼: 하나님의 교육명령] 컨텐츠 혁명7(마지막회)-왜 D6 커리큘럼인가 2](https://i0.wp.com/christiantimes.ca/wp-content/uploads/d6.jpg?resize=324%2C160&ssl=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