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구조 개혁을 위한 6가지 질문(연재1-6회)
[연재 1회] 분노와 상실
최근 우리는 다시 한번 익숙하고도 고통스러운 장면을 목격한다. 수십 년간 공동체의 절대적 신뢰를 받아온 목회자가 자신의 혈육을 세우는 과정에서, 교회의 공적 자산과 성도들의 순수한 믿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지난 십 수년간 한국 교회가 반복해서 보여온 궤적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 사람이 특별히 나빴다’고 비난하거나,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스스로를 속여왔다. 우리가 느끼는 분노의 본질은 돈의 액수가 아니다. 그것은 리더의 혈연이 곧 영적 권위의 계승이라는 논리는 교회의 투명한 인사와 재정 구조를 마비시키는 강력한 마취제가 된다.
분노는 신앙을 지키려는 영적 통증이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 상처는 두 겹이다. 첫째는 사건 자체가 남긴 손상이고, 둘째는 “내가 믿고 싶었던 세계가 무너졌다”는 상실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의심한다.
“내가 너무 기대했나?”
“내가 믿음이 약한가?”
“내가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
아니다. 반대로다. 많은 분노는 믿음을 버리려는 신호가 아니라, 믿음을 지키고 싶다는 신호다. 신앙이 소중하니까 화가 나는 것이다. 신뢰가 있었으니까 무너지는 것이다. 문제는, 교회 안에서 이 감정이 자주 금지된다는 점이다. 분노는 불신앙으로 취급되고, 질문은 불순종으로 오해되고, 실망은 배교로 몰린다. 그 결과 사람들은 더 깊이 아프다. 아픈데 말할 수 없으니까.
거룩의 가면을 벗고 ‘조직’의 민낯을 보라
우리는 교회를 영적 공동체로만 기억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조직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돈과 권력, 명예와 보상, 가족 이해관계를 다루는 장치가 필요하다. 문제는 그 장치가 성숙하기도 전에 “신앙”이라는 말로 덮이기 쉽다는 데 있다. 교회는 특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교회는 ‘거룩’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룩은 원래 하나님을 높이는 언어인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그분은 다르실 거야.”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그러실 분이 아니야.“
이 말은 신앙 고백처럼 들리지만, 때로는 가장 위험한 면죄부다. 그리고 그 면죄부가 공동체를 망가뜨린다. 리더의 인격이라는 불안정한 요소에 공동체의 운명을 거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도박’이다.
개인의 일탈인가, 구조의 결함인가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분노는 단지 ‘돈’ 때문만이 아니다. 그건 표면이다. 진짜 이유는 내가 기대었던 신뢰의 기둥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처는 더 깊고, 실망은 더 무겁다.
이때 공동체는 흔히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쪽은 분노로 폭발한다. 다 부숴버리고 끝내자고 한다. 다른 한쪽은 침묵한다. 덮고 지나가자고 한다. 둘 다 이해된다. 그러나 둘 다 한 가지를 놓친다. 상처를 다룰 구조가 없다는 사실이다.
개인 윤리에 맡긴 공동체는 함께 무너진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완벽함을 기대한 게 아니다. 그냥 기본적인 규칙만 지키면 됐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시스템 문제가 드러난다.
규칙을 ‘개인의 선의’에만 맡겨두는 공동체는, 선의가 흔들리는 순간 공동체가 같이 무너진다. 리더에게 견제, 분산, 투명성이 없다면 우리는 신앙을 하는 게 아니라 “이번엔 잘 되겠지”에 베팅하는 것이다. 그건 신앙이 아니라 도박이다.
이 연재는 6회로 진행된다. 비판으로 끝내지 않겠다. 예방과 치유, 그리고 구조적 전환으로 끝내겠다. 다음 글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본다. 사람의 문제를 말하기 전에,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구조를 보자. 그래야 반복이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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