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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의 교육명령]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형이다

[연재 5회]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형이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수많은 영성 훈련, 제자 훈련, 그리고 새로운 사역 프로그램들을 도입해 왔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더 세련된 프로그램을 찾거나, 더 영향력 있는 리더로 사람을 바꾸면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훌륭한 훈련을 마친 이들이 여전히 세습에 침묵하고, 제자 훈련을 강조하던 공동체가 권력 독점의 온상이 되는 모순을 목격한다.

  이것은 프로그램의 내용이 부실해서가 아니다. 프로그램이 놓인 ‘지형(Landscape)’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아무리 정교한 드리블을 가르쳐도 경기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듯이, 권력이 수직적으로 고착화된 지형 위에서는 어떤 선한 프로그램도 결국 기득권을 강화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프로그램은 ‘처방’이고 지형은 ‘체질’이다

  프로그램은 대개 특정한 증상을 해결하기 위한 일시적인 ‘처방’이다. 반면 지형은 공동체가 일상을 살아가는 ‘체질’이자 ‘환경’이다. 지형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공동체 안에서 무엇이 중요하게 여겨지는지, 누가 진짜 권력을 가졌는지, 어떤 행동이 보상을 받는지를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설계도이다.

  현재 한국 교회의 지형은 지나치게 ‘중앙 집중적’이고 ‘수직적’이다. 모든 정보와 자원, 결정권이 정점에 있는 리더에게 쏠려 있는 지형에서는 아무리 ‘소통’ 프로그램을 돌려도 실질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리더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 되는 지형에서 성도들은 질문하는 법을 잊고, 리더는 성찰하는 법을 잊는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리더의 이름표가 아니라, 권력이 흐르는 통로인 지형 그 자체이다.

지형의 재설계

  구조적 전환을 위해서는 공동체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제도 몇 개를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작업이다. 한 사람에게 집중된 인사, 재정, 영적 권위를 기구별로 분리해야 한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과 그 결정을 감시하는 사람이 분리되지 않는 지형은 반드시 부패한다. 투명성은 단순히 영수증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 결정의 맥락을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지형을 뜻한다. 리더의 언어가 일방적으로 선포되는 지형에서 벗어나, 평범한 성도들의 삶의 질문이 신앙의 중심 의제가 되는 지형으로 옮겨가야 한다.

지형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우리는 흔히 “사람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라고 말한다. 일견 맞지만, 구조적으로는 “지형이 변해야 사람이 변한다”는 명제가 더 강력하다. 세습이 가능한 지형에서는 평범한 목회자도 세습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견제와 균형이 숨 쉬듯 당연한 지형에서는, 탐욕을 가진 개인이라 할지라도 쉽게 사욕을 채우지 못한다.

  건강한 지형은 리더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지 않으며, 성도들을 수동적인 관객으로 만들지 않는다. 각자가 자신의 영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지형이 마련될 때, 비로소 우리는 ‘거물 목회자’의 시대에서 ‘건강한 신앙 공동체’의 시대로 이행할 수 있다.

  지형을 바꾸는 일은 프로그램 하나를 도입하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고, 익숙했던 수동적 안락함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뼈아픈 재설계 없이는 한국 교회에 내일은 없다. 

  세습과 권력 독점이라는 잡초를 뽑아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잡초가 자랄 수밖에 없었던 토양의 산성도를 바꾸고, 배수 시설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프로그램 중심의 사고에서 지형 중심의 사고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이다.

새로운 지형을 향한 용기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리더 한 명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성’인가, 아니면 모두가 연결되어 생명을 나누는 ‘숲’인가? 성의 지형은 무너지기 쉽지만, 숲의 지형은 태풍에도 견뎌낸다.

  다음 글이자 마지막 연재인 6회에서는 이 새로운 지형의 구체적인 대안으로, 가정과 교회와 학교가 통합되어 건강한 경계를 세우고 세대를 잇는 실천 시스템, ‘D6 랜드’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 교회의 지형은 리더 한 명에게 모든 빛이 쏠리는 ‘무대’인가, 아니면 성도들의 삶이 빛나는 ‘광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