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 | D6가 전망하는 미래교회 트랜드 2026 (12회)
제1회 | 침묵의 부흥과 167시간의 민낯
12회 연재를 시작하며
어느 주일, 예배당 뒤편에 서서 사람들의 등을 바라본 적이 있다. 찬송이 울려 퍼지고, 스크린에는 은혜로운 가사가 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이도 있었고, 두 손을 높이 든 이도 있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내 마음 한편에는 묘한 질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빛은 월요일까지 이어질까?”
예배는 뜨거웠지만, 월요일의 교실과 사무실, 부엌과 운전석까지 그 온기가 따라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마치 한 시간 동안은 조명이 환히 켜졌다가, 예배가 끝나는 순간 스위치가 꺼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우리가 지켜 온 것은 ‘주일 1시간’이지, 1주일 ‘168시간의 신앙’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이 12회 기획을 하나의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싶다. 제목은 “D6가 전망하는 미래교회 트렌드 2026”이지만, 사실은 트렌드를 예측하는 글이 아니다. 우리는 점쟁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미래를 맞히려는 시도가 아니라, 방향을 묻는 여정이다.
부제는 이렇다. “침묵의 부흥에서 168시간의 일상예배로 흐르는 939주의 신앙.”
939주.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대략의 시간이다. 한 주일이 168시간이라면, 939주는 157,752시간이다. 신앙은 그 시간 속에서 형성된다. 교회 건물 안에서만이 아니라, 부엌의 식탁에서, 차 안에서, 잠들기 전 어둠 속에서, 때로는 갈등과 눈물 사이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주일을 중심에 두고 교회를 설계해 왔다. 물론 주일은 소중하다. 모이는 교회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모임의 시간이 신앙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한 시간은 나머지 167시간을 밝히기 위한 등불이어야 한다. 만약 그 등불이 월요일 아침에 꺼진다면, 우리는 구조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번 연재는 네 개의 흐름으로 나뉜다.
첫째, “각성과 귀환”이다. 젊은 세대의 영적 갈급함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그리고 그 귀환을 주일 행사로 소비하지 않고 삶의 예배로 연결할 길을 탐색한다.
둘째, “틈새와 돌봄”이다. 가난, 불안, 관계의 단절 같은 사회적 틈새가 어떻게 복음의 접점이 되는지 살핀다. 교회가 그 틈새를 외면하지 않고 일상의 네 때 속에서 응답하는 방식을 묻는다.
셋째, “도구와 본질”이다. AI가 설교를 쓰고, 상담을 흉내 내는 시대에 인간의 고유성은 무엇인지, 작은 공동체의 밀도는 왜 더 중요해지는지 다룬다.
넷째, “연결과 책임”이다. 가정과 교회, 학교와 일터가 따로 노는 시대를 넘어, 한 원탁에 앉은 세대의 생태계를 어떻게 설계할지 모색한다. 이 모든 흐름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자녀는 부모의 첫 제자다.” 이 문장은 마지막 회차에서 다시 등장할 것이다.
나는 한 가정을 떠올린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이가 묻는다. “아빠, 오늘 설교가 뭐였지?”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음…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이었지.” 대화는 거기서 멈춘다. 월요일이 오고, 화요일이 지나고, 주일은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지난주 설교는 이미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다.
만약 그날 차 안에서 이렇게 물었다면 어땠을까. “오늘 들은 한 문장 중에 네 마음에 남은 건 뭐야?” 그리고 아이가 한 단어를 말했을 때, 아버지가 다시 물었을지도 모른다. “그 단어가 월요일에 어떤 장면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이 질문 하나가 168시간을 바꿀 수 있다. 미래교회의 핵심은 더 화려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런 질문을 가정에 돌려보내는 힘일지 모른다.
이 연재는 어떤 거창한 전략서를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매주 하나의 거울을 건네고 싶다. “우리의 168시간은 어떠한가?” “우리의 939주는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
교회는 종종 리셋이 필요하다. 리셋은 실패의 고백이 아니라, 방향의 재정렬이다. 과거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를 설계하기 위해서다. 주일의 빛이 월요일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도록. 가정의 작은 순종이 교회의 큰 소망이 되도록. 나는 이 글을 쓰며 한 장면을 떠올린다.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이 오늘 하루를 나눈다. 누군가는 실수했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았고, 누군가는 작은 기쁨을 발견했다. 그때 어머니가 조용히 말한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 이 장면에서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까?” 그 순간 식탁은 예배가 된다. 그리고 그 예배는 건물 밖에서 드려진다. 1회차는 이렇게 문을 연다.
다음 회차부터는 더 구체적인 장면들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침묵의 부흥이라는 말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혼합 영성의 파도 속에서 교회가 어떤 나침반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다시 ‘영적 부모’의 눈물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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