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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약의 베일을 들추며] 시선을 붙잡는 기도 

시선을 붙잡는 기도 

다까미츠 무라오카 (村岡崇光). 우리가 잘 아는『주옹-무라오카 히브리어 문법』 교재의 그 무라오카 말이다. 2월 10일 그의 부고 소식을 듣고 팔 년 전 토론토 대학의 한 심포지엄에서 처음 만났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해문서 관련 유명 학자들의 발표 중 그가 세 번째 스피커였다. 나는 심포지엄 커피 브레이크 때 그를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했었다. 은퇴하시자마자 한국에 가셔서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을 사과하는 도구로 무료 강의를 하셨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고, 그래 주셔서 감사하다고. 이어진 담소 끝에 공부하다 질문이 생길 때 이메일 하면 성의껏 답하겠노라며 그는 나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팔십 일세의 적지 않은 연세에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표하고, 행동하시는 모습, 또, 유대인들과 비종교적 이성주의 학자들 사이에서 짧고 건조했던 나의 식기도에 비해 속 깊은 표정이 드러났던 그의 침묵의 식기도, 다 내 마음에 남았었다. 

그는 2003년 네덜란드의 대학 교수직에서 은퇴한 이후 한국뿐 아리나 2차 세계대전 시 일제의 침략에 고통을 겪었던 여러 아시아 국가의 대학들과 신학교를 매년 방문하여 자신의 전공인 성서 언어와 70인역에 대한 무보수 강의를 하였었다. 본인이 지은 죄가 아니더라도 일본인으로서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 앞에서 사죄문을 읽었고, 일본 천황의 사과를 요구하였었다. 그는 일본이 진심의 사과를 할 때까지 이 행보를 계속할 것이라 말하는 실천하는 ‘양심’을 가진 학자였다. 

내 눈에는 그의 학문적 업적이나 결과물에도 이런 그의 ‘양심’이 드러난다. 시편의 특징을 살피며 그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시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시편의 시나, 잠언의 격언 등에 독특한 구조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한 절, 또는 근접한 절들의 구절들이 쌍으로 짝을 이루는데, 앞 구절과 뒤 구절이 다양한 유형의 관계 속에서 한 덩어리로 묶여 ‘생각의 대구’를 이룬다. 이를 평행법(parallelism)이라 부른다. 학자들은 한 덩어리의 두 구절의 관계 분석을 하여 병행구들이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첫 구절을 뒤 구절이 확장, 심화, 완성 시켜준다고 보기도 한다. 두 구절의 관계에 따라 다양한 평행법의 이름들이 존재한다. 시편 19편 1절을 보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내용상 한 맥락이라 두 구절의 내용이 한 덩이로 쉽게 묶여 짐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이 평행법을 스테레오 스피커에 비유하기도 한다. 즉, 왼쪽 스피커는 드럼 소리가, 오른쪽 스피커에서 피아노 소리가 나오게 한다든지, 다른 악기를 배치하거나 소리의 크기, 또는 도달 시간의 차이를 이용해, 마치 실제 공연장에서 듣는 것 같은 입체적인, 풍부한 공간감을 만드는 것처럼, 두 구절이 만나 더 깊은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비유이다. 설교자로서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두 구절의 연관성을 억지로 꿰맞춰 “과도하게 주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무라오카는 동의어, 반의어나 문학적 장치 등의 시적 수사학보다 히브리어 언어 자체가 가진 구조나 문법 등의 통사론적, 객관적 근거를 찾아, 짝이 된 구절들을 파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강조나 완성된 ‘현상’보다 그렇게 된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시편 51편 10절을 보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히브리어 원문의 단어 배치 순서에 따라 한글로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마음을 정한     창조하시고 내 속에 하나님이여/

영을     정직한    새롭게 하소서   내 안에 

성서 히브리어에서 동사, 주어, 그리고 목적어 순이 일반적인데, 두 구절 다 목적어인 ‘마음’과 ‘영’이 앞으로 배치된 것에 주목할 것을 무라오카는 요구한다. 보통 한 행에서 어순을 바꾸면 다른 행에서는 정상적인 어순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절은 두 행 모두 목적어를 전치 시켜 기도 대상의 시선을 완전히 묶어 둔다. 목적어 강조로 다른 무엇보다도 마음과 영을 정화 시켜주시길 절박하게 간구하고 있다. 무라오카는 히브리어라는 언어 자체가 가진 논리적 구조를 통해 시편의 영성을 해석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해석자의 영감이나 주관적 문학 비평의 요소를 넘어 객관적 지표를 가지고 나아가는 학자적 양심을 보여준다. 학자는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가졌을 때 양심에 떳떳하다.

복음서에서 정함을 입었던, 예수로부터 몸의 “깨끗함”을 받았던 나병환자는 “정한” 마음을 간구하는 시편의 기도를 하여 예수의 시선을 붙잡았을까(막1:4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