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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그런뜻이었구나] 선지자, “하나님의 통역자”

선지자, “하나님의 통역자”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신들의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알리는 사람을  “프로페테스”라 불렀습니다. 선지자로 번역되는 이 낱말은 “전에” 또는 “앞에”를 뜻하는 “프로pro”와 “말하다” 혹은 “공언하다”를 의미하는 “페미phemi”의 합성어입니다. 영어의 “프로펫Prophet”이 유래한 단어로, “공개적으로 알리는 자” 또는 “드러내 놓고 선언하는 자”입니다. 초기에 이 단어는 신탁의 통역자로 사용되었습니다. 신성한 메시지의 전달자를 위한 전문적인 명칭이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 시인 핀다르스의 글에는 백성들 앞에서 말하는 모세의 기능에 관해서 “선지자 모세는 ‘나는 예언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선지자들의 세대는신들의 신탁에 관해서는 율법으로 그것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자기 스스로 예언한 사람들은 이러한 신비스럽고 불가스의한 일들에 무지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선지자가 아니라 위선자이다.” 선지자들은 인간이 이해 할 수 없는 신들의 계획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테네의 비극시인 에루리피데스는 인간과 선지자를 구별해서 설명합니다. “신들의 눈에는 우리 인간에게는 영리함이 없다. 우리 조상의 전통과 우리가 평생 동안 지켜온 생활 습관들은 어떤 주장으로도 뒤집혀 지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의 깊은 기지로 어떤 지혜를 발견했다고 해도 여전할 것이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신은 모든 사람은 동일한 명예를 누리고 칭찬받기를 바란다. 테이레사,  너도 이 옳은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신의 통역자로 세우겠다.” 

   포로페테스는 넓은 의미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하는 신들의 통역사였습니다. 신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음악을 인도하는 포로페테스, 억눌린 인간을 자유롭게 해방하는 정의의 프포페테스,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구원의 프로페테스, 또한 왜곡된 역사를 바른 길로 이끄는 진리의 프로페테스 등이 있었습니다. 미래 때를 예언한다는 개념을 가진 프로페테스는 분명히 신들의 통역자로서 이 단어의 기술적 기능을 강조한 것입니다. 

   희랍어 구약 성경인 LXX에서 프로페테스로 번역되는 히브리어는 일반적으로 “나비”입니다. 이 단어에서 중요한 요소는 나비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집단을 위해서 나타나며 온갖 방식으로 사회 제도 전반에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비의 동사형인 “나바”는 “부르다”혹은 “선포하다”는 아카디아어 “나부”와, “전달하다” 혹은 “주다”는 아랍어 “나바아”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선지자 혹은 연설자로 번역되는 이 낱말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문제는 행동의 원인입니다. 선지자는 부름을 받은 자이며 전달자이기 때문에 행동의 원인 제공자가 아닙니다. 역대기의 저자는 선지자를 불러서 메시지를 주시고 전달하게 하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밝힙니다. “그들의 선조들의 하나님 야훼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당신께서 계실 그 곳을 구원하실 뜻으로 특사들을 다시금 보내어 경고하셨다.”

   아모스 선지자는 전달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선지자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요청에 따라서 예언을 한 것입니다.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나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계시해 주는 사람,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시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모세를 향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모세와는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한다.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두 말해 준다. 모세는 나 야훼의 모습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나의 종 모세에게 감히 시비를 걸다니, 두렵지도 아니하냐?” 

   게다가 선지자에 대한 이전 이름이 “대언자 혹은 예언자”였다는 사실은 선지자를 구성하는 요소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 가운데 전달해야 해야 하는 신성한 메시지를 받은자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예전에 이스라엘에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여쭈려 할 때에 이같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선견자에게로 가자’ 였더라. 지금 대언자라 부르는 사람을 예전에는 선견자라 불렀더라.” 

    당시 성취되지 않았던 구약시대 선지자들의 예언 내용은 신약시대에 와서 명확하게 밝혀집니다.  신약 성경에 따르면 선지자들의 예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사무엘 이후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은 신약의 그리스도 시대로 향합니다. 마태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곧 예수 그리스도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성취됩니다. 마태는 선지자들이 예수님의 삶에 대하여 예언한 내용들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이제 이 예언들은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그리고 수난과 부활은 예언에서 핵심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전하는 전체 메시지의 근본이며 중심입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참된 예언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나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선지자는 인간 자신의 우수한 재능 때문에 자격을 얻지 않습니다. 그들을 선지자로 만든 것은 의사소통 능력도 아닙니다. 그들은 성령의 직접적인 영감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네덜란드 신학자이자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는 “영감이란 성령이 교회에 완전하고 오류 없는 성경을 부여하는 포괄적인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고 언급했습니다. 우리 시대는 성령의 강권적인 지배로 오늘의 특수 상황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절박하게 요구하시는 말씀을 가감없이전달하는 선지자적 설교가 필요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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