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 “신성한 직무”
고대 원시 종교는 모두 신비한 질서를 중요시했습니다. 신은 언제나 비밀스런 존재였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신에게 접근하는 유일한 길은 종교 예식과 축제를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다양한 제물 헌납과 정화식이 포함된 종교 축제는 전체가 신비스런 의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전형적으로 부과되는 엄격한 침묵 준수의 명령에 따라 신자들은 신에 관해 단편적인 지식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전역에 퍼져 있던 대표적인 신비 종교는 엘레우시스 밀교입니다. “밀”이란 비밀을 뜻합니다.
엘레우시스 숭배자들이 신비한 세계에 접촉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예식과 헌신이 요구되었습니다. 지원자들은 일반 사람들과 분리되어 입문자 집단의 친교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후보자들은 신의 가르침에 대한 공식적인 상징물과 표시들을 습득하여 동일한 신의 추종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신의 운명에 참여하고, 신의 소유가 되고, 신과 같이 되어 고통과 해를 입지 않고 신의 통치에 들어간다고 믿었습니다. 공동체에서 사용되었던 상징물과 표시는 종교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고대의 신비 종교나 밀교를 표현하는 희랍어는 “무스테리온”입니다. 영어의 미스테리 (Mystery)가 파생된 단어로, 숨겨진 것 (hidden thing), 비밀 (secret), 또는 신비를 의미합니다. 더 정확히는 숨겨진 목적, 감춰진 충고, 비밀스런 계획, 또는 신성한 비전과 같은 의도적인 비밀을 뜻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 유일한 곳은 다니엘 2장과 4:9입니다. 다니엘은 왕과의 대화에서 하나님은 비밀한 일을 아시며 (2:18), 그 비밀을 환상 속에서 자신에게 알려 주시고 (2:19), 창조물인 인간은 그 누구도 비밀을 알 수 없고 (2:27),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이 비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분으로 (2:28) 소개합니다. 그는 비밀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다시 언급합니다 (2:29). 왕도 되받아 다니엘에게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라고 (2:47), 비밀의 세계를 독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마가복음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무스테리온을 처음 사용합니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씨를 뿌리는 동안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어떤 씨는 바위에 떨어져 싹이 트자 물기가 없어 말라 죽었습니다.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 가시가 기운을 막아 결실을 못했습니다.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서 뿌린 것의 삼심배나 육십배나 백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이 “이 비유가 무엇을 뜻합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씨뿌리는 비유는 무스테리온, 즉 비밀에 관해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합니다. 우선, 비밀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고, 둘째로 비밀 속의 활동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비록 비밀이라고 해도 그것을 깨닫는 사람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그 비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무스테리온이 함축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비밀은 하나님의 신성한 행위입니다. 씨뿌리는 비유를 마치신 예수님은 다른 측면에서 파종하는 비유를 이야기합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농부는 알지 못하지만 뿌려진 씨를 성장하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책임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성장하여 열매 맺게 하십니다. 믿음의 씨를 뿌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이뤄지지만, 그 씨를 자라게 하는 원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다”고 표현했습니다.
둘째, 비밀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속한 고린도 교회 공동체에서 했던 일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형제들이여, 내가 어려분에게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 달변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만세 전에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것이라.” 그가 전했던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정해 놓으신 비밀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라고 밝힙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이제 우리 안에 거주하고 계신다는 신비한 질서를 거듭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계속 그분 안에서 사십시오.”
셋째, 비밀은 창조 전에 정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는 철저히 비밀로 감춰져 있다며,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합니다.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고 (마 13:43), 극히 값이 나가는 진주와 같으며 (마 13:46),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바다에 치는 그물과 같은 데 (마 13:47),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전하는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는 “영세 전부터 감추어 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다”고, 비밀의 영원성을 언급합니다. 그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비밀에 관해 일관성 있는 내용을 적습니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넷째, 비밀은 내부 자들에게 누설됩니다. 비록 비밀이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행하시는 신성한 일들이라도 이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씨뿌리는 비유에서 살펴 본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신비의 세계는 내부 사람들에게는 밝혀지고 알려집니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말한다.” 내부 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여섯째, 비밀은 계시의 도구입니다. 비밀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계시를 위한 수단으로 비밀이 사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밀은 대부분 계시와 함께 사용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 비밀을 계시로 알려주셨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지식과 지혜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각 사람에게 나타도록 구조되었습니다. 이 일은 내부 자들의 선포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