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담, “그리스도의 모형”
성경에서 아담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단순히 최초의 인간을 가리키는 역사적 명칭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아담은 “사람” 혹은 “인류”라는 뜻을 가진 낱말로 “땅”을 뜻하는 “아담하”라는 명사와 “붉게 물들다”라는 동사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인간 창조 기록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라고, 인간이 흙에서 취해졌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아담의 근본은 땅과 깊은 연결이 있습니다.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고, 아담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아담”은 많은 경우 일반 명사로서 인류 전체를 가리키고, 때로는 고유명사로서 최초의 인간을 지칭합니다. 이 낱말의 이중적 사용 자체가 아담이 개인이면서 동시에 인류의 대표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창세기 초반에서 아담은 주로 “그 인간” 혹은 “그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는 아담이 특정 개인을 넘어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전형적 존재임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은 피조 세계를 다스릴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담은 뱀의 유혹으로 창조주께 불순종하여 원래의 모습이 손상을 입습니다. 그 결과 아담에게 죄가 들어와 인간은 타락하여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고 설명합니다.
구약 시대를 지나 신약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의 타락을 매우 가슴 아프게 여겼습니다. 기원전 2세기경에 생활했던 에스라는 아담에 관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첫째 아담은 악한 마음을 품고 범죄하여 패배하였으니, 그 자신뿐 아니라 그에게서 난 모든 자들도 그러하리라. 한 알의 악한 씨가 처음부터 아담의 마음에 뿌려졌으니, 그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불경건이 일어났는가! 오 아담아, 네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였느냐? 네가 범죄하였으나, 그 넘어짐은 너만의 것이 아니라 너의 후손인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도다.” 유대 사회의 공동체 생활 규범과 신앙 규율을 담고 있는 『집회서』는 아담에 관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담이야말로 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 위에 있도다.” 창조된 모든 생물 중에 가장 탁월했던 아담의 타락에 관해서 “죄는 여자에게서 시작되고 여자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죽는다”라고, 여성 혐오적 기술로 아담의 전인적 영향을 표현합니다.
“그 사람” 아담의 행위를 이토록 통탄하는 이유는 그의 행위는 인류의 운명을 규정하는 대표적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땅에 대한 저주, 노동의 고통, 출산의 고통, 그리고 죽음의 현실은 모두 아담의 범죄와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아담은 죄와 죽음의 기원일 뿐만 아니라, 타락한 인류 전체를 포괄하는 이름이 됩니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그의 불순종은 곧 인류 전체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상태, 곧 ‘아담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다는 사상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질서입니다. 한 사람이 실패했을 때 하나님은 그 자리를 대신할 다른 사람을 세우십니다. 그러나 아담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인류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아담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아담의 불순종이 가져온 결과를 되돌리고, 새로운 인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마틴 루터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원제는 ‘하나님 자신께서 부르신 합당한 사람’)”라는 찬양에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아담과 같은 위치에 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합당한 사람으로, 처음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인류를 대신해 순종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두 인류의 머리로 대비시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사람이 생명에 이릅니다. 아담의 한 번의 불순종은 정죄와 죽음을 가져왔지만, 그리스도의 한 번의 순종은 의롭다 하심과 생명을 가져왔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여기서 아담은 단지 실패한 인간의 상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는 대조적 모형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 몸의 최후를 언급하면서 아담은 흙에 속한 자 혹은 썩을 자의 첫 시조로,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한 자 혹은 생명을 살려 주는 첫 시조로 대조시킵니다. 첫 사람인 아담은 땅에서 났기 때문이며, 둘째 사람인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났기 때문입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라.” 모든 인간은 아담의 형상을 따라 썩을 존재로 태어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장차 썩지 않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됩니다. 이 대비 속에서 아담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구원의 필요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아담은 인류의 시작이며 인간 문제의 출발점입니다. 사람은 아담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아담은 단순한 과거의 이름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인간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모형입니다. 아담으로 시작된 인간의 이야기는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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