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단상] WAYMAKER(이사야 43장 18-21절) / 시냇가은혜교회 하상욱 목사

WAYMAKER(이사야 43장 18-21절 ​)

시냇가은혜교회 하상욱 목사

이사야 선지자는 구약 시대, 주전(BC) 8세기경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였는데, 이사야서에 관해서 조금 재미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전체가 66장인데 우리 성경도 66권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면 구약과 신약으로 나눌 수 있고, 39권이 구약, 27권이 신약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 이사야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자면 앞에–39장, 그리고 뒷부분 27장(40-66장),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공교롭게도 이사야의 앞의 39장은 경고, 심판의 내용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구약의 분위기와 비슷합니다. 이사야 뒤의 27장은 위로, 회복, 소망에 관한 내용인데 이것이 또한 신약 27권과 비슷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사야서는 이런 면에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부분의 39장은 “유다야, 너희가 이렇게 살다가는 망할 것이다. 우상 숭배하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멀리하며, 정치·종교적으로 이렇게 타락하면 너희가 망할 것이다”라는 큰 경고입니다. ​그리고 후에 실제 역사 속에서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나타나 유다는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 멸망과 심판을 예언하면서도 동시에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위로와 회복, 소망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그 내용이 바로 40장부터 66장까지입니다.

그런 구조를 기억하면서 오늘 본문을 보면, 오늘 본문은 43장입니다. 둘로 나눌 때 뒷부분에 속하지요. 그러니 어떤 내용이겠습니까. ​“너희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앞이 캄캄하고 절망적이고 아무 희망이 없어 보이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너희를 생각하고 계신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런 흐름이 43장 처음부터 이렇게 나타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하나님은 자신을 “너를 창조하신 분, 지으신 분, 구속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시며, “너는 내 것이라” 선포하십니다. 이제 망해서 포로로 잡혀가 있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앞이 캄캄한 인생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중에도 이런 상황에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캄캄한 현실, 힘겨운 하루하루, 잘못 살아온 것 같은 과거, 그래서 그 결과가 오늘의 현실로 온 것 같은 마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이고, 특별한 희망이나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상황, 칠흑 같은 어둠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어쩌면 하나님도 나를 신경 쓰지 않으실 것 같은 그런 분들 말입니다.

바로 유다 백성이 그랬을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도무지 탈출구가 없고, 실제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한탄하며 슬픈 노래를 하며 낙심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먼저 다가오신 것입니다. “나는 너를 창조했다. 나는 너를 택하고 구속했다. 너는 내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 가운데에도 이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우리의 현실은 그때의 이스라엘과 같이 어둠 같고 답답하며, 탈출구가 안 보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겠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바로 그런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먼저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먼저는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사 43:18)입니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여기서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신 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과거의 실패에 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때 처절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망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잘못했다, 우리는 못났다, 우리는 신앙을 지키지 못했고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했다, 우리는 망할 만한 존재다”라고 크게 좌절하며 스스로를 되씹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는 그것을 잊어라”라고 하십니다.

한번 이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가 있었지요.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 아이는 늘 가지고 싶던 멋진 장난감이 있었는데, 엄마가 이번 크리스마스에 바로 그 최신 장난감을 선물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아이가 엄마에게 큰 잘못을 했습니다. 자존심을 부리며 “잘못했다” 말하지도 않고 대들다가, 엄마와 사이가 너무 안 좋아져 버렸습니다. 

이제 그대로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아이는 후회합니다. “아,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못 받을 거야. 내가 엄마께 그렇게 대들고 잘못했으니, 엄마는 나를 미워해서 선물을 안 줄 거야. 선물은커녕 집에서 쫓아내는 건 아닐까. 먼저 내가 집을 나갈까…” 아이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날이 되자, 어머니가 먼저 다가옵니다. “얘야, 크리스마스네.” 주눅 들어 있고, 후회하며, 머뭇거리는 아들을 찾아와 “앞으로 잘하자” 하며 그에게 선물을 보여줍니다. 엄마가 먼저 찾아온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이와 비슷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큰 죄를 지었고 잘못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상당한 징계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이제는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 자리에서 계속 주눅 들고 죄책감과 실패에 사로잡혀 자책하며 낙심하기를 원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너희 잘못했으니 난 너희 모른다”가 아니라 “이전 일은 잊어라” 하시며, 자비롭게 그들을 다시 찾아오십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첫째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전 일에 얽매이지 말라.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둘째로, 이스라엘이 잊어야 할 ‘이전 일’에는 과거의 영광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전 일, 옛날 일을 잊으라”고 하실 때, 사실 성경 본문 바로 앞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 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사 43:16–17) 그리고 이어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지요. “너희를 그때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성경에 여러 번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것도 잊어라”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이제 하나님이 하실 새로운 일은, 과거 홍해 사건처럼 바다를 가르고 가운데 길을 내셨던 그 놀라운 일을 능가하는 더 큰 일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내가 일한다고 하면 그 정도의 일을 떠올리겠지만, 이제 행할 일은 그보다 더 클 것이다. 너희의 예상, 너희의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그래서 “그 예전 일도 잊어라”가 되는 것입니다.​

또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조금 전 그 아이입니다. 그 아이는 그 크리스마스에 큰 장난감을 선물로 받았었습니다. 이제 몇 년이 지나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엄마와 크게 다툽니다. “아, 이놈의 성질… 선물 받고 싸울 걸…” 후회가 됩니다. 그래도 아이는 마음 한쪽에 약간의 기대를 합니다. “그때도 비슷한 상황에서 엄마가 장난감은 주셨는데, 이번에도 그 정도는 주시지 않을까.” 예전 장난감 정도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가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그때 받은 장난감 같은 건 잊어라. 이번에는… 최신 아이폰이다.” 아이는 놀랍니다. “아니, 자격 없는 나에게, 그때 수준도 아니고 더 큰 것을 주신다고?”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과거에 경험한 기적, 은혜, 이런 것들을 다 잊어라. 너희가 무엇을 기억하고 상상하든, 나는 그 이상의 더 큰 일을 행할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너무나 놀라운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때, 우리에게 “이전 일을 잊어라”라고 하십니다. ​과거의 실패, “나는 이런 놈이야, 구제불능이야, 여기서 못 빠져나올 거야” 하는 생각에 묶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과거의 실패에 묶여 있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또 과거의 영광, “예전에 이 정도는 좋았는데, 하나님도 이 정도는 하시겠지” 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것도 잊으라고 하십니다. 

이제 다가오시는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큰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사 43:19) 여기 재미있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 나타낼 것이라”는 표현을 히브리어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지금 그 새 일이 싹트고 있다”는 뜻입니다.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가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그 일을 보고 있느냐, 인식하고 있느냐.”  어쩌면 우리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아도,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은 이미 내 삶 속에서 새 일을 시작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때, 그 일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납니까.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 43:19)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광야의 특징은 길이 없는 곳입니다. 사막은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절망과 불가능의 대명사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앞에 길이 끊어진 순간’이 있습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 건강의 위기, 경제적 어려움, 관계의 단절, 자녀의 문제, 사회적 고립, 열등감 등으로 “이제는 길이 없다”며 패닉에 빠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길을 찾아보았지만, 열심히 두드려 보았지만, 정말 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노력의 부족도, 지혜의 부족도 아닙니다. 그저 상황 자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길이 없는 것 같은 현실일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할 때 홍해 앞에서 바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앞에는 시퍼런 홍해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애굽의 병거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쫓아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거기서 절규합니다. “길이 없다! 길이 없다! 우리는 여기서 죽는것이구나!” 거기는 인간적으로 볼 때 길이 없는 자리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에 손을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 말은 인간의 상식과 논리를 완전히 초월합니다. 전혀 누구도 기대하거나 상상할 수 없던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길이 없음만 보았지, 하나님이 아예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실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요.

“하나님은 Way Finder(길을 찾는 분)가 아니라, 하나님은 Way Maker(길을 만드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조금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학교나 직장에 지원하고 합격을 바라면, 그것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충분히 바랄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되게 해 주세요, 우리 가정이 이렇게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때도, 사실은 우리는 바랄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복권에 당첨되게 해 주세요”라고 한다고 합시다. 그것도 사실은 확률은 낮을 수 있지만 바랄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길이 아닌, 아예 없는 길,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길을 하나님이 만들어 내실 것이라는 믿음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홍해 앞, 거기서 바다가 갈라질 것이라고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다를 가르셨습니다. 길이 없는데 거기서 하나님이 길을 만드실 것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일 것입니다. ​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사실 홍해 사건보다도 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또 행하셨습니다. 모든 인간, 온 인류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어떤 한 사람도 완전한 의인으로 하나님 앞에 설 길이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한 길을 내셨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길,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그 십자가를 통해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누가 이런 길을 이전에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10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십니다. 

바울은 이 길을 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로마서에서 이렇게 감탄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3) 하나님은 너무 깊다. 그 누가 그의 결정을 미리 예상할수 있었겠으며, 누가 그의 모사가 되어 하나님께 조언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의 지혜는 놀라워서 그 어떤 이도 상상할수 없고, 그래서 바랄 수도 없었던 일을 행하셨구나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성도 여러분, 2026년을 시작하는 이때, 여전히 여러분 앞에 거대한 바다가 가로막혀 있습니까. “혹시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인가 보다, 이렇게가 끝이구나”라고 낙심하고 계십니까. 그 자리에서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전 일을 잊고, 새로운 일을, 그 어떤 일도 행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길이 없어보이지만,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이 WayMaker이심을 바라보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길을 내​실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며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인이 가지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