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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정결, “완전한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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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ohn-Mark Smith on Pexels.com

정결, “완전한 회복”

트로이 전쟁에서 다른 영웅들은 귀환했지만 오디세우스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타카 지역과 인근 섬의 귀족 청년들은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기 위해 궁전에 무단으로 침입해 거주했습니다. 때마침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궁전을 점령한 구혼자 모두를 처단한 후에 유모 에우뤼클레이아에게 살균과 정화 효능이 있는 유황과 불을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는 불과 유황을 이용해 피비린내와 죽음의 오염으로 가득 찬 전당과 집안 전체를 연기로 정화합니다. 이어서 시녀들이 피투성이가 된 의자와 탁자를 물과 스펀지로 깨끗이 씻어냅니다. 이곳에 사용된 “정화하다”는 헬라어 동사형은 “카다이로”고, 형용사형은 “카다로스”입니다. 

   호메로스의 고전 작품에는 카다이로가 전쟁의 무기나 집안의 잔 그리고 신체를 깨끗하게 물로 씻을 때 사용됩니다.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출전하는 친구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기 위해 제우스 신 앞에 술잔을 올려 제사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아무도 손대지 않고 오직 제우스에게 제사할 때만 사용하는 보물궤 속의 아름다운 그릇들을 꺼내어 유황으로 소독하고 물로 깨끗하게 카다이로한 후에 사용했습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카다이로를 피 흘림 (살인)의 오염에서 정결하게 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프리기아의 왕족 아드라스토스가 실수로 친족을 죽인 후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에게 찾아와 정정당당하게 정화 의식을 요청합니다. “리디아 사람들의 정결 의식 (정화법)은 그리스인들의 방식과 거의 같다”고 설명하며, 피를 흘린 살인범의 부정한 오염을 씻어내는 의식을 묘사할 때 카다이로를 인용합니다.

   유대 사학자 요셉푸스는 구약의 레위기 율법 규례나 유대 전통을 희랍어로 번역하여 설명하면서, “씻다,” “정결하게 하다”의 카다이로와 그 연관 동사 “카다리조” 등을 적극 활용합니다. 그는 정결 규례를 설명하며, 시체나 나병, 기타 의식적 부정함에 오염된 사람이 회막에 들어오기 전 몸과 옷을 정결하게 씻어야 함(카다리조)을 명시합니다.  그는 70인역 (LXX) 성경 번역자들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 매일 아침 바닷물에 손을 씻어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카다리조) 하나님께 기도드렸음을 밝힙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 (침례)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는 요한이 강조한 세례는 단순히 육체의 죄를 씻어내는 외형적 정화 (카다이로)가 아니라, 이미 영혼이 의로움으로 정결해진 자들이 받는 신체적 정화의 표시였다고 기재합니다. 그는 또한 성전의 거룩함과 정결을 설명하면서 성전이 유혈 사태나 이방인의 불경함으로 오염되면 그 성전을 정결하게 씻어내고 회복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문헌에서 “깨끗한,”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혹은 “순수한”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카다로스”는 눈으로 식별되는 물질적인 깨끗함뿐 아니라 도덕적이고 영적인 내면의 정결함을 가리킵니다. 이 어휘군은 단순히 씻는 행위를 넘어 “불순물을 제거하여 본래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정결과 부정의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어떤 접촉이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지, 어떻게 씻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칩니다. 이러한 규례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백성이 거룩함을 배워 가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외적인 정결함보다는 내면의 정결을 중요시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고 말씀하시면서 겉보다 속을 먼저 깨끗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변화는 정결의 내용이 점차 “무엇을 씻었는가”에서 “누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카다로스는 단순히 겉이 깨끗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것, 거짓과 죄로 오염되지 않은 마음을 가리킵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고 말씀하신 후에,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순결하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베드로 역시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는 형제 사랑에 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말씀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시며 마침내 흠 없는 신부로 세우신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복음이 보여 주는 정결의 신비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깨끗해진 후 하나님께 나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분의 은혜로 깨끗하게 되어 가는 존재입니다. 요한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언급한 후에,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정결은 한 번의 종교적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씻고,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은혜 가운데 서는 삶입니다.

   정결에 대한 깊은 통찰은 문학과 신앙의 역사에서도 발견됩니다. 영국의 설교자이자 시인 존 던은 잠자리에 들 때 “깨끗한 손”으로 잠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하루 동안 정직함으로 손을 깨끗하게 지켰거나 밤의 회개로 다시 씻어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는 살인 이후 맥베스가 마음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지만, 인간의 힘만으로는 그 내면의 오염을 씻어낼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복음은 인간의 절망에 답을 줍니다. 사람은 죄책감을 잊는다고 깨끗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심리적 현상이라고 이름 붙인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깨끗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정결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닦아내는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주님, 나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불결한 환자로 낙인 찍혔던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나아와 무릎 꿇고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실 때, 그는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정결의 가장 깊은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죄인이 깨끗해져야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오면 그분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조건 없이 우리를 초대합니다. “오라!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