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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따르라,” 제자들의 말

 “따르라,” 제자들의 말

고전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따르다” 혹은 “뒤에 간다”는 낱말인 아코루데오”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동사였습니다. 다양한 용도와 여러 단어들과 연결되어 사용되는 이 낱말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설명해 줍니다. 우선 고전 희랍어에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지적, 도덕적, 그리고 종교적으로 누군가를  열렬히 지지하고 신봉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따른다는 뜻은 지도자를 정신적으로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 아테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따르다”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연설자의 목적과 계획을 이해하는 것이 단지 행동으로 따르는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좋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외적인 형태일 뿐, 그들의 정신을 고정시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르다”는 말은 사람의 마음과 본능적인 반응으로 움직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이자 군인인 크세노폰은 자신이 지휘하던 전쟁 중에 경험한 이야기에서 “아코루데오”를 사용합니다. “다리오와 파리사티스 사이에 군인인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맏이는 아닥사스다이고 작은 이는 키루스였다. 다리오가 병들어 누워서 자기의 죽음이 임박한 줄 알고 두 아들이 자신과 함께 있기를 원했다. 그러자, 크세노폰은 이렇게 대답했다. ‘차라리 전장에서 나를 따르는 이 장군들과 대장들에게 당신의 아들들을 주시오’.” 상관을 따르는 군인의 임무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경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따르다”는 낱말은 군대에서 지휘관과 병사들의 관계에서 흔히 쓰였습니다.

   “따르다”는 말은 주인을 따르거나 섬기는 노예에게 사용되는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는 자신의 작품 『성격론』에서 “의심 많은 사람의 성격”이란 주제로 글을 쓰면서 “따르다”를 언급합니다. “의심 많은 주인은 노예가 달아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가 자신과 수행할 때는 일반 주인들처럼 노예가 뒤에서 따라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앞서 걷도록 강요한다.” 이 낱말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서 사용됩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파피루스에는 “따르다”는 자신이 원하는 어떤 호의를 얻어 내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애착을 가질 때 통속적으로 사용된다고 기록합니다. 어떤 사람이 상대방에게 조언을 합니다. “항상 포톨라리온에게 달라붙어. 그에게 달라붙어! 그러면 너는 그의 친구가 될 수 있어.” 이 말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받아질 때까지 그 사람을 따르라는 뜻입니다.

   “따르다”는 남의 충고나 의견을 따르거나 순종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국가와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은 철학연구과 정치 지도력이 그들의 본성이어야 하고, 또 지도자의 추종자들은 천성적으로 지도자를 따르는 것이 요구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리더십을 발휘하기에 적합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따르는 것에 적합하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아코루데오”의 이와 같은 용법들 모두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군인의 위치에 있으며, 즉시 지도자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언과 통치를 구해야 하며, 주님의 가르침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말씀하신 것을 따르는 겸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 말씀을 따라야 하는 학습자이자 듣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지혜를 날마다 더 많이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줄 수 있는 호의와 은혜와 도움을 필요로 하고 갈망하는 사람의 위치에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신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따르다”는 동사 “아코루데오”는 매우 빈번하게 사용됩니다. 이 낱말은 다음 다섯 카테고리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직업과 사업을 놓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에게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자, 베드로와 안드레가 곧 그물을 버려 주고 따랐습니다. 이 낱말은 물고기를 기적적으로 잡은 후 제자들의 반응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부르실 때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고, 빌립에게도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셨으며, 이 말씀은 베드로에게 주신 마지막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가장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무리들에게 사용됩니다. 무리들은 치유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자신의 요청이 승인될 때까지 상대방에게 달라붙는 파피루스의 내용처럼 두 맹인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치며 예수님을 따라옵니다. 넷째, 감사의 결과로 예수님을 따를 때 사용됩니다. 예수님의 눈을 만지심으로 앞을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맹인 거지였던 바디매오도 치유해 주심에 감사하여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다섯째, 죄인들이 예수님을 따랐을 때 사용됩니다. 마가복음 2:15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를 따름이러라”고 기록합니다. “따르다”는 단어의 가장 중요한 사용법으로 죄인들이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고 언급한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는  희생이 수반되며 십자가를 져야 하는 고난이 따릅니다. 그렇지만, 그 길만이 하나님께 귀히 여기심을 받아 많은 열매를 맺는  인생의 바른 방향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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