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일
봄꽃이 피고 초록으로 우거지고 붉게 물들었다가 눈이 오고…. 그런 일이 내 삶에서 쉰번이 넘도록 반복되었다니 별로 믿어지지 않는다. 카톡으로 생일 축하 한다고 연락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사실 언제를 생일로 해야할 지 마음이 오락가락 하는 중이라 오늘이 생일 같은 느낌은 없다. 내가 실제로 태어난 날은 음력 2일인데 아버지가 출생신고할 때 헷갈려서 호적상으로는 음력 1일이다. 하던대로 음력으로 하자니 식구들이 기억하기 힘들다고 양력으로 하자한다. 쌍둥이 언니는 여전히 음력으로 하고 있는데 나만 양력으로 하자니 그것도 이상하다. 그러다보니 이날도 저날도 아닌 것이… 뭐 그렇게 됐다.
캐나다데이다. 아들이 노래를 불러준 것도 모자라 각 나라에서 온 캐나다 사람들이 국경일로 정해놓고 경축중이다. ㅎㅎ
내가 자라온 가정은 어른들 생신에, 잦은 제사에, 궁색한 살림에, 끝날 줄 모르는 농삿일에 눌리고 찌들려서 아이들 생일까지 챙길 여력이 없는 집이었다. 축하는 고사하고 생일날이면 애낳느라 죽을뻔한 시간을 기억하는지 엄마는 여지없이 앓아눕기 일쑤였다. 내게 생일은 고맙고 감사한 날이기보다 오히려 미안하고 죄송한 날이었다. 많은 생일날이 잊혀진 혹은 나 스스로도 잊고 지났다.
그래도 유독 기억나는 생일날이 있다.
푹푹 찌는 어느 여름날… 방학이라 할 일 없이 방바닥을 딩굴거리는데
난데없이 손님이 찾아왔다. 그 여름 땡볕에 시골길을 걸어오느라 낯이 이글이글 불타는 친구가 우리 집 마당으로 쑥 들어섰다. 태양이 굴러들어오나 싶게 벌건 얼굴은 땀으로 번들번들거렸다. 생일 선물을 전해줄 정도로 우리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는데 무슨 일인지 그 친구는 알지도 못하는 동네에 사는 나를 찾아 버스를 두번이나 갈아타고 물어물어 집을 찾아그 땡볕을 걸어서 왔다.
“미영아 생일 축하해!”
선물이 뭐였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손을 데면 데일것 같이 벌겋게 달아오른, 땀범벅인 친구의 얼굴, 그 위로 번진 미소는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뭐라고 , 여기가 어디라고 , 이 더위에 여기까지 왔을까…
누군가 나를 소중하게 대했던 기억은 두고두고 사람을 치료한다.
우울할 때, 기 죽을 때 , 의기소침할때… 그 장면장면들이 다 약이다.
그 친구의 등장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편찮으셔서 누워계시던 엄마는 어찌나 당황을 했던지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이구 이 더위에… 아이구 아이구…” 하시며…
‘생일이 뭐 별거야? 그냥 그 날이 그 날이지… ‘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마음 한구석에 서운함이 웅크리고 앉아있었던 걸까. 엄마가 한상 가득 차려내온 생일상…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만을 위한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상이라니…
‘그래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 …’
친구의 벌게진 낯을 보며 엄마가 차린 생일상앞에서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 그걸로도 남은 나의 모든 생일을 버틸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존재를 기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나를 낳느라 아팠던 어머니는 내 생일날이면 어김없이 아팠다. 아프느라, 사느라 여력이 없는 와중에도 애써 차려준 생일상을 나는 오늘도 먹고 있다. 그날의 밥은 그냥 밥이 아니었지… 살면서 두고두고 먹을 밥이었지. 그날 그 친구의 방문은 그냥 방문이 아니었지. 살면서 몇번이고 다시 찾아주는 따뜻한 마음이지… 힘이 나게 하는, 눈물을 닦아주는 소중한 기억들이지.
감사기도를 하고 소박한 아침을 먹는데 지금까지 돌봐주신 우리 주님을 생각하게 된다. 몸은 중년을 훌쩍 넘어가는데 마음은 아직 아기다. 늘 주님께 기대어 산다. 내가 뭐라고, 여기가 어디라고 그 길을 찾아오신걸까.
십자가에서 해산의 수고를 하신, 얼굴이 피범벅이신 그 분이 내게 말을 건넨다.
” 미영아 생일 축하해. 사랑한다 딸 “
그 사랑으로 모든 날을 버틸 수 있다. 두고두고 기댈 목소리다. 평생을 붙들어주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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