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은 마음에 조각작품을 남기는 것 (눅2:17-20)
박태겸목사(로뎀하우스 원장)
예수님이 탄생한 마굿간에 베들레헴 목자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들판에서 천사가 아기에 대해 전한 강보에 싸인 아기를보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며 생각하는 사람은 마리아 뿐이었습니다. 아버지 요셉도 여관 주인과 목자들도 이를 한번 크게 감동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지나쳐 버렸습니다. 영성은 보고 듣는 것으로 자라나지 않습니다. 19절에 ‘마음에 새기다’를 ‘treasured up’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보물을 쌓다’라는 뜻입니다. ‘보물’이란 명사를 동사로 사용하면 ‘마음에 깊이 새기다’라는 의미로 바뀝니다. 마리아에게 아기 탄생은 영성이 쌓이는 사건이었지만, 요셉에게는 영성이 쌓였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본문 51절에도 예수님이 12살 때 예루살렘에 부모와 함께 올라갔다가 도중에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때 부모들은 근심하고 놀라며 아이에게 야단을 쳤습니다. 이에 예수는“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요셉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고 새겼습니다. (“She treasured all these things in her heart.”) ‘treasured’ (보물을 쌓다)라는 표현을 여기서도 반복했습니다.
마음에 새긴 마리아와 마음과 새기지 못한 요셉에게는 어떤 차이가 일어났을까요? 마리아는 자녀를 볼 때 근심이 사라졌지만, 요셉은 이 아들로 인해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마리아는 그때부터 이 아이를 믿고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요샙은 어쩌면 이 아이가 너무 독립적이어서 큰 사고를 칠 아이로 생각했는 지도 모릅니다. 영성이 쌓이면 두려움과 걱정을 내려놓고 자녀에 대한 신뢰를 쌓게 됩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기 전까지는 영적 성장은 일어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방임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를 통해 하실 일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기도하며 나를 내려놓는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로뎀하우스에는 ‘내려놓음의 길’을 반복해서 걸아갑니다.
마리아는 이 아이로 말미암아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성전을 떠니지 않고 기도하는 시므온 선지자의 예언처럼 부모는 이 아이로 말미암아 칼이 그 마음을 찌르듯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난이 아닌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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