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뱀파이어 그리스도인을 벗어나기” (마5 1-3절)
밴쿠버 동산교회 장천득 목사
최근 넷플릭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리얼리티쇼가 있었습니다. “흑백요리사” 입니다. 이 드라마는 “요리 계급전쟁”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습니다. 화이트 요리사들은 이미 세상에서 인정받는 톱 클래스 요리사입니다. 흑수저 요리사들은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자수성가한 요리사들입니다. 소위 흑수저 요리사들은 동네 맛집 요리사입니다. “흑백 요리사” 는 100명의 요리사들이 누가 더 실력이 있는지 경쟁하며 이긴자만 생존하는 써바이벌 게임입니다. 경쟁에서 이겨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합니다. 실력을 증명하는 자만이 살아 남습니다. 센세이션을 일으켜 궁금했습니다. 에피소드 몇 개 보았습니다. 재미있게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굳이 쉐프들을 흑수저 백수저로 나누어 경쟁할까? 왜 사람들은 왜 이런 프로그램에 열광을 할까? 재미가 있지만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며 어필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도 모르게 흑수저 출신 요리사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보았지만…. 씁쓸한 뒷맛, 약간의 허무한 재미? 그런 생각이 듭니다.
“흑백요리사”는 우리 현실의 한 단면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 줍니다. 현실은 만만치 않다. 생존해야 한다. 경쟁해야 한다.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과 서열이 존재한다. 탈락하면 추방된다. 그러므로 억울하면 실력을 갖추고 힘을 키워야 한다. 실력을 증명해야 하지만 성공하려면 역시 운도 있어야 한다……
우리 역시 생존경쟁 게임에서 살아 남기위해 애를 씁니다.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과도한 이분법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정말 흑수저와 백수저로 나뉘어 있는듯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계층과 계급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존재합니다. 심지어는 있어서는 안 되는 교회에조차 존재합니다. 만나면 누가 흑이며 백인지 서열과 힘을 확인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목소리, 잘 생존해야 한다는 무의식이 있습니다. 동시에 기회는 반드시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약간의 희망사항도 있습니다.
이민자의 현실은 참으로 고단하고 피곤합니다. “흑백요리사”의 리얼리티 쇼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잔인한 현실입니다. 생존과 행복의 기준인 영어계급론, 만만치 않은 밴쿠버 물가, 자녀들과의 문화충돌, 깊이 있는 만남의 부재, 제한적 관계로 인한 피곤함, 때때로 찾아오는 외로움과 무력감, 모국어와 영어의 사이에서의 긴장감, 고향이 아닌 곳을 고향으로 여겨야 하는 정신적 딜레마, 가끔 명절에 느끼는 노스텔지어… 온가족이 행복하기 위해 캐나다에 왔는데…. 과연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행복할까요? 한국의 많은 분들은 무력감을 호소합니다.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캐나다로 이민 오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캐나다에 오면 한국이 그립습니다…. 한국에서는 캐나다를 동경합니다. 꿈꾸었던 행복의 파랑새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민자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서 이 땅에 존재하는 자체로 쉬운 이야기 아닌 것 같습니다.
한동안 한국에 유행한 웰빙 열풍은 오래전 수그러들었습니다. 힐링이 사회의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힐링이라는 말, 웰 다잉이라는 용어는 오래전 시작되었습니다. 생존경쟁에 고단한 인생이 대한민국, 캐나다 온세상에 천지입니다. 위로와 회복… 치유가 필요한 분들이 교회에도 넘쳐납니다. 2024통계에 의하면 성도들의 25% 정도가 우울증과 정신적 고통을 앓고 있습니다. 싱글 가족, 이혼 가족도 부쩍 늘었습니다.
행복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알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저의 마음 속에도 교회는 여러가지 사명이 있지만… 지금이야 말로 복음이 필요한 시대구나!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회는 전인적인 구원, 치유와 회복의 공동체가 정말 필요하구나 절감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복음 자체 (Good News, 유앙겔리온)입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말씀과 약속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복음입니다.
“ 가끔 복음이 우리 현실과 무슨 상관이 있어? 예수 믿고 죽어서 천국가면 그만이지” 라고 생각하는 성도들을 봅니다. 예배를 드리며 기도를 하지만 교회 바깥에서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경우를 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예수 믿으면 죄 용서 받고 천국 가는 것이 복음의 전부일까요? 중요한 핵심이지만 복음의 한부분일 뿐입니다. 예수 믿으면 죄 용서받고 천국에 가는 것은 100% 사실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복음에 대한 지적인 동의로 끝납니다. 많은 분들이 복음을 인격적 반응,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지적동의나 교리에 대한 확신으로 이해합니다. 복음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관계로의 초청입니다. 저는 죄 용서 복음을 “코끼리 뒷다리 복음” 이라고 이름을 명명합니다. 복음이 코끼리 전체의 몸이라면… 죄 용서의 복음은 그 일부라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은 단지 죄 용서와 의롭다 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교리에 대한 확신 그 이상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과 관계로의 초청입니다. 예수를 믿지만 예수님과 관계없이 살아간다면 천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죄 용서함을 받습니다. 신분의 변화와 사명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하나로 연합될 뿐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의 형상(아이콘)을 회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명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단지 실컷 죄 짓다가 회개하고 용서받아 … 나 혼자 구원받고, 죄 용서 받아서 좋은 곳 천국에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복음의 조건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죄용서는 복음의 시작입니다. 예수를 구원자, 나의 인생의 주인 (왕으로) 받아들이면서, 죄 용서와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우린 비로서 하나님의 통치하에 자발적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형상(아이콘)으로 만들어져 갑니다, 복음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어도 좋을 만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 존귀한 자임을 증명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본래 하나님이 의도하신 하나님의 형상(아이콘)으로 회복되어져 가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달라스 윌라드라는 복음주의 신학자는 죄용서만 믿는 그리스도인을 “뱀파이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피만 좋아하는 그리스도인, 복음을 오직 죄용서의 복음으로만 아는 그리스도인, 나 혼자 예수 믿고 구원받는 사람, 나 혼자 행복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개인주의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면 성령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이 우릴 하나님과 연합하게(Connecting, Unity with God)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로 초청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생명력 있는 관계이지 종교 시스템이 아닙니다. 믿음생활이 주일생활, 십일조, 교회 봉사활동등…. 종교클럽 활동이 아닙니다. 주님과 영적인 교제 (코이노니아)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만 하면 주님으로부터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 라는 말은 들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나라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과 관계없는 열심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하나님과 관계(Relation) 없이 정신적 만족과 즐거움, 마음의 위로만을 위해 얼마든지 교회에 다닐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교회는 종교적 서비스, 행복 쇼핑몰에 불과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채 열심히 교회생활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복음, 예수님의 구원사건은 전인격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과 혼과 육신을 치유하며 회복합니다. 단지 예수 믿고 죄 용서 받고 천국간다는 것은 복음의 핵심이지만 복음에 대한 10%정도의 설명에 불과합니다. 복음의 내용이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 전부라면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 3년동안 수많은 병든 자, 귀신들린 사람, 마음이 상하고 애통하는 사람들을 치유하신 것을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영의 구원, 혼 (마음, mind)과 육신의 회복, 관계의 회복…. 모든 면에서 복음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사건을 통해 복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고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단지 듣고 끝나면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성령님을 통한 통치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죄로부터 해방, 내면의 변화, 관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육신의 치유도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8복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 치유와 회복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막연한 관념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마태복음 4장에 23-26절에….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두루 다니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며 수리아 까지 소문이 났습니다. 앓는 자, 각종 병에 걸려 고통 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 을 고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복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기적이 나타납니다. 우리 주님을 만나고 받아들이는 자마다 하나님의 나라, 통치가 임하니 기적이 나타납니다. 질병에서의 치유는 하나님 나라의 증거(세메이온)입니다. 몸의 치유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 하나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제가 우리 영과 혼, 육신….. 우리의 현실 속에 뚫고 들어옵니다.
이전에 원주민 선교를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상의는 화이트 셔츠에 하의는 블랙으로 매우 깔끔하게 차려 입은 D형제였습니다. 첫인상은 매우 좋았습니다. 어느 날 신학교에 찾아 왔습니다. 대화를 하는 중 갑자기 혀가 말리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친구였지만 거짓말을 쉽게 하는 친구였습니다. 대화를 30분 정도 하는 중 갑자기 혀가 말리고, 눈동자가 하얗게 변하고, 토하면서 땅바닥에 고꾸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 2학년을 마친 친구인데… 거짓말 뿐 아니라 생활속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습관들이 있었습니다.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선포할 때 성령이 임재 아래 악한 영이 떠나갔습니다.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하나님의 나라, 그분의 통치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마음의 병도 치유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왕, 어두움을 추방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어둠의 세력이 떠나갑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특별히 산상수훈이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헌장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누구인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예수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사실 산상수훈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가르침과는 매우 대조되는 말씀이었습니다. 5-7장은 전체가 하나의 설교이며 강화라고도 합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다.
산상수훈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산상수훈을 듣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하나같이 제도권에서 무시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열두제자들도 흑수저요 전부 흑수저들입니다. 사회적으로 흑수저요 종교 시스템에서도 흑수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여겨진 흑수저들이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율법으로는 저주받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임신하지 못한 사람들, 홀로 된 과부들, 어린아이들…. 이들은 당시에 하나같이 의를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의 부류입니다. 이들은 전혀 천국에 들어갈 조건이나 자격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제대로 행하지 못한 부류 이기 때문입니다. 의롭거나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구요? 세리와 창기가 정말 천국에 들어가기 더 쉽다구요? 정말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천국의 의외성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 저주받은 것 같은 사람들이 더 천국에 들어가기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천국에 들어갈 사람에 대한 전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거룩과 경건과는 거리가 먼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아무 소망 없는 흑수저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가깝다. 멀지 않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더 들어가기 쉽다. 창녀와 세리가 오히려 경건하고 의로운 너희들보다 더 천국에 들어가기 쉽다…. 라고 매우 충격적이며 과격한 말씀을 합니다. 급진적이며 기존의 상식과 전통을 뒤집어 없는 Upside-down Kingdom (전복적인 하나님 나라)을 말씀합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도리어 천국에서 멀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쉽다고 말씀합니다. 교회에 다니며 의롭게 살기 위해 애를 쓴 여러분보다 길거리의 거지가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쉽다면 어떨까요? …..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우리의 상식, 인간의 기준과 다르다는 것이지요. 복음은 인과응보가 아닙니다. 복음은 도덕적인 사고, 종교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은혜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감격과 감사가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이 하나의 충격처럼 들렸습니다. 복이 있다는 말은 Blessed는 ‘마카리오스’ 인데… 당시에 헬라인들이 지극한 복(extreme happiness, bliss), 신적인 행복을 의미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마음에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하다! 이해하기 힘든 말입니다. 대개 심령이 가난해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성경 본문(Context)에 대한 오해했습니다.
8복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팔복이라는 이름 때문에 오해를 합니다. 예수님이 마치 복이 마치 8개만 말씀하신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복을 받으려면 이런 조건이 되야 한다?! 라고 오해를 합니다. 팔복은 복 받기 위한 처방전 아니며 조건도 아닙니다. 복 받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의 약속,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식, 복음이라 할 수 있다. 우린 팔복을 지나치게 종교적 의미, 영적인 의미로만 해석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심령이 가난해져야 하고, 애통해야 한다? 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우리 삶 속에 실존이며 우리의 현실 앞에 존재한다. 지금 여기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자에게 실존한다는 것이 8복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적으로 빈곤한자, 영적으로 무일푼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달라스 윌라드 라는 복음주의 신학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정말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아무 소망이 없는 사람으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으로 파산한 사람, 영적인 모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붙잡을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망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망한자에게 복이 있다구요?
누가복음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 를 단지 가난한 자,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로 기록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눅6:20)” 왜냐하면 예수를 통해 지금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코 앞에 있고, 예수를 받아들이는 자에게 임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은혜 없이 설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실 심령이 가난 한 것, 경제적으로 가난한 것 자체는 선이 아닙니다. 고난과 고통 자체는 선이 아닌 것처럼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해석하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고난이 복이 될 뿐입니다.
가난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부자체는 축복도 저주도 아닙니다. 고난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해져야 복이 있고 행복하다 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앉아 있는 너희여! 마음이 깨지고 가난한 너희여! 현재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들이라!!! 가난한 자조차 하나님 나라에 열려 있으니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면 오늘 현재 우리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 하나님의 나라, 은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병든 자를 우리 주님은 치유하기 원하십니다. 죄인에게는 죄 용서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믿는 자에게 현재적 사건이 됩니다.
우린 심령이 가난한 자를 겸손한 자처럼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음은 가난한 자조차 예수를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통치와 복이 임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는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가 천국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나의 마음에 들어올 공간(space for God)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에는 너무나 의지하는 것이 많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인 되어서 스스로 하나님처럼 굴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부자이면서 권력이 있는 사람은 구원받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붙잡을 것이 없다면 오히려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율법에, 종교 안에 아무런 구원의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난한자, 천대받는 사람들, 반쪽짜리 혼혈 사마리아인, 실패한 사람들, 그동안 스스로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복음은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조건 없이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임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통치를 받아 들이는 사람들에게만 !!!
나 같은 사람도 천국에 들어간다고요? 천국이 여기에 있다고요 ?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에게 복음은 복음이 됩니다. 엄청난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8복이 말하는 것은 심령이 가난해지고 재정적으로 가난해져야 한다….가 아닙니다. 주님은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현재 빈손으로 주님 앞에 나가는 사람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억지로 겸손 떨면서 마음이 가난해져야 구원이 임한다면 이것은 복음이 아니라 율법입니다! 가난해져야 한다? 애통해야 한다? 핍박을 받아야만 하나님 나라의 복이 임한다?? 이것은 산상수훈의 의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구원받는다? 종교활동 열심히 해야 천국의 복을 누리게 된다가 아닙니다. 복음이 말하는 것은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통치와 주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처한 모든 곳에 주님의 통치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8복중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현실속에 임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8복은 예수님 당시 부자만이 복 받은 것이고 경건해 보이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뒤집어 엎습니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변화되며….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이…. 은혜가 값없이 임하지만 오직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며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를 믿는 자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현실속에서 애통하는 자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면 행복(blessed, 마카리오스)합니다. 말할 수 없이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비참한 환경 속에 슬퍼하는 자, 죄로 인해 애통하는 자도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위로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항할 힘이 없는 온유한 자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면 하나님께서 땅(세상)을 통치하게 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악인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면 영적 배고픔, 세상의 불의로 인한 목마름이 사라집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들도 행복(Blessed, 마카리오스)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면서 세상속에서 어리석다고 취급을 받는 사람들, 어려운 중에도 빵한조각 나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할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현실 속에서 상처를 받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 통치가 임하면 세상에 어떠한 소망도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세상에 소망이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만 바라보기에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힘과 힘으로 싸우는 세상 속에서, 싸움의 한복판에서 싸움을 말리고 평화를 중재하는 사람, 화평케 하는 사람은 실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악한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로 살아가다가 핍박을 당하는 사람들, 의를 위해 살다가 핍박 받는 자들은 행복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상급이 크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8복이 말하는 행복은… 경건하든 경건하지 않든…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초청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초청하며 영접하는 자에게,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현재적으로 임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복음은 은혜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이 말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복, 행복은 어디로부터 올까요? 오직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복음은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합니다. 인간적 행복은 잠시 잠깐입니다. 삶 속에 주신 소소한 행복, 물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전도서 기자의 말처럼 안개(헤벨)과도 같습니다. 우리 인생이 예수님의 통치 가운데 있을 때 비로서 진정으로 행복 (blessed, 마카리오스)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오늘도 여러분 가운데 임하길 기원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뱀파이어 그리스도인”을 벗어나길 예수 이름으로 기원 드립니다. 죄용서의 복음을 넘어서서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통치가 여러분 인생 가운데 임하길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통치를 경험하고 복음을 경험하고 누리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복음으로 행복한 여러분, 또 절망하는 세상속에서 복음을 자랑하는 여러분 되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