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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달란트와 하나님의 나라(마25:14-30)_박성현 교수(고든코웰신학대학원 구약학)

<달란트와 하나님의 나라>

박성현 교수(고든코웰신학대학원 구약학) / 마25:14-30 / 

마라나타!  대강절을 맞고 있는 우리 모두 위에 주님의 평강과 기쁨이 가득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그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백성 삼으셨고, 예수님은 이제 영광중에 다시 오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즐거움에 들이실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우리 모두에게 마24-25 말씀은 매우 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24:3)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그리고는 그 때가 어느 때인지, 그리고 그 때를 어떻게 준비하며 기다려야 할 지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함께 살필 가르침은 달란트의 비유인데, 이에 앞 서서 그 때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을 우선 살펴보겠습니다.

[마24:43]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 그 때는 언제입니까? 우리가 알 수 없는 때입니다.

마24:48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 그 때는 언제입니까? 생각보다 빠르게 임합니다.

마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 그 때는 언제입니까? 생각보다 더디게 옵니다.

여러분, 도대체 그 때는 언제입니까? 마25:13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그 때를 준비해야 합니까?마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II. 달란트의 비유

예수님은 이렇게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그들의 기대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답을 주신 후에 이어서 오늘 우리가 살피고자 하는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답을 계속 이어가셨습니다.

저는 이제 달란트의 비유를 가지고 제가 묵상하게 된 네 가지를 이제 여러분들과 나누려 하는데, 아시게 되겠지만, 이 비유 역시 제자들이 기대한 답의 틀을 벗어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끝의 시작에 대해서

첫째.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주님은 제자들에게 시작에 대해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앞에 언급했듯이 달란트의 비유는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24:3)라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주어진 가르침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끝을 궁금해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시작에대한 말씀으로 그 답을 시작하십니다:

마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왜 끝에 관한 질문의 답을 시작에 관한 설명으로 전개하셨을까요?

어느 답안지에, 답만 적혀있고 시험문제는 적혀있지 않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 답을 평가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답안지에 적는 답은 시험문제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그 결과물인 것입니다. 문제를 알지 못하고 답을 알 수 없듯이, 시작을 모르며 끝을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대강절을 맞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끝은 어디며 그 끝의 시작은 어디입니까?

영광중에 다시 오실 예수께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즐거움에 들이시는 것이 이 땅에서의 삶의 끝이며, 그 끝의 시작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를 위하여 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백성 삼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작이 없다면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끝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 시작이 있으십니까?

제게는 그 시작이 있습니다.

1976년 남미 파라과이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한 저희 가정은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부모님께서 가까운 지인의 사업 자금을 위해 큰 달러 보증을 서신 것이 잘 못되었을 때, 저희는 평생이 걸려도 못 갚을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이런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저는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몹시 빠지는 것을 지켜보며 말할 수 없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천문학적인 빚이 하루아침에 온 집안을 덮는 것을 보며, 어렵게 말과 글을 익혀서 착실히 학교를 다니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회의가 밀려왔습니다. 오직 돈을 벌어우리 가정이 빚과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부모님과 상의 없이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 어느 고마운 지인의 배려로 부모님이 인수받은 시장 야채 도매상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장사를 도맡아 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시내의 식료품점을 계속 운영하셨으며, 아버지는 두 곳을 오가며 일하시게 되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마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저는 한 달란트를 받아 그 것을 땅에 묻은 어리석을 종처럼 그렇게 소망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는 가운데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어머니는 의식이 있는 듯 없는 듯 미동도 없이 누워만 계셨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네 달이 지나도 어머니의 상태는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제게는 말 못할 고통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지신 것은 분명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정말로 나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과 죄책감의 늪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일을 저지를 줄만 알았지 막상 그 후에 따를 상황을 수습할 능력이란 털 끝 만치도 없는 어리고 어리석기만 한 것이 저였는데, 그 때 하나님은 제게 긍휼을 베푸셔서 저와 제 어머니에게 소망의 빛을 허락하셨습니다. 제가 성경을 펼쳐 든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평소에 읽으시던 그 성경을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해 계속 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혹이나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성경을 읽는 내 정성을 어여삐 보시고 내 어머니를 살려주시기를 바라며 읽어갔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은 말씀 가운데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성경 읽기가 이사야까지 다다랐을 때 저는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시울이 젖는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43:1] 

그리고는 신약까지 성경을 마저 읽어 갈 때에, 하나님은 어리석은 저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이심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를 구속하여 자녀 삼으시고 지키시며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제게 말씀으로 제 안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시작해 주셨고, 정말 놀랍게도 어머니가 눈을 뜨시게 되어 1년 후 저는 장사 일을 접고 중학교에 복학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시작은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오시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예수 안에 그 생명을 아직 알지 못하는 분이 혹 계시다면 오늘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앎에 대해서

둘째.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잘 못하면 우리는 한 달란트를 묻은 것이 그 몫이 적어서였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는 당시 평민들의  20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거액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달란트가 적어서 땅에 묻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특히 본문 그 어디에도 이런 이유에서 땅에 묻었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대신 무익한 종은 그 입으로 다음 이유를 댑니다. [마25:24] 

즉, 주인을 포악한 사람으로 왜곡해 알았던 것이 결국 그로 하여금 살 궁리 끝에 달란트를 땅에 묻게 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에 대해 뒤틀린 마음을 품음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복학하여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때, 하바드 대학교에 지원하게 되었고 재정보증 서류만 제출하면 되는 단계에 이르렀던 저는 대학진학의 꿈을 접고 고등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대학진학 대신 가죽가공기술을 익혀 공장으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빚을 갚기 위해 시작한 사업을 도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당시 파라과이에 야생동물 보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저희가 시작한 털가죽 사업은 불법업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시설을 살려 다른 용도로 바꿔 빚 해결을 해 보고자 불철주야 애썼습니다만, 어떤 길로 열리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제 마음은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드디어 심신기력부진으로 일어날 힘을 잃고 자리에 몸져눕고 말았던 당시 제 마음은 달란트를 땅에 묻은 무익한 자의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하나님을 왜곡하여 알던 제가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셔서 또 한 번 말씀 가운데 저를 만나주신 것이었습니다:

[벧전1:24-25]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제게 큰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마르는 풀로 살아가는 제게 그 분의 영원을 담아주셨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날 이후 저는 다시는 하나님을 굳은 분으로 알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분으로 알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저를 긍휼이 여기시며 저를 선대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날 제 모든 소망을 하나님의 영원에 둘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이십니다. 풀과 같은 우리의 삶에 그 분의 영원을 두시어 우리로 하여금 그 유업을 이을 대열에 세워주신 놀라운 분이십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가 그런 은혜를 달리 알 수 있으며 받아 누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누구보다 잘 아시며 아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그 아버지의 품에 평안히 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달란트를 남김에 대해서

셋째.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을 통해 커가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마25:19] 착하고 충성된 종의 공통점은 그들이 수고하여 주인의 달란트를 곱절로 남겨 주인에게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달란트로 수고하여 곱절을 남겼을 때 그 결실은 우리 자신이 곱절로 누리는 삶을 살으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 소유가 곱절로 커졌다 함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 만큼 커졌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사실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소망을 두게 된 후, 하나님은 제게 대학에 진학 할 길을 열어주셔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에서 대학 학부과정을 마치게 되었고, 또 파라과이의 저희 가정의 빚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을 졸업하던 당시 저는 미국의 고든콘웰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목사가 되어 주의 일을 하고자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입학허가서를 다 받아 둔 상태에서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베들레헴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교육하는 기독교 대학, 베들레헴 바이블 칼리지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을 지난 몇 년간 찾고 있었는데 꼭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곧 미국의 고든콘웰 신학대학원으로 유학길에 올라야 하는 이유로 계속 거부하다 결국 한 달만 돕기로 하고 베들레헴에 발을 디뎠습니다. 

당시 저는 사61:1-2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사61:1-2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하나님의 눈이 향해 있는 땅으로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슬픈 자를 위로하되

신학을 공부하여 이 말씀에 순종하는 사역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그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하며, 포로되어 갇힌 자들이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것입니다.

한 달이 채워졌을 때 저는 뜻을 정했습니다. 만약 내가 이 난민들을 뒤로 하고 고든콘웰에 유학을 간다면 목사가 된다 하더라도 사61장의 말씀 앞에 설 때 늘 부끄러우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고든콘웰측에는 더 이상 진학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기를 결단 한 후, 제 삶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게 있는 한 달란트가 제 이웃 팔레스타인 난민의 삶 속에 다른 한 달란트를 남기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가르쳤던 학생 중 하나가 지금은 그 대학의 제 2대 총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 하나님은 제 아내를 만나게 해 주셔서 아내의 희생적인 기도와 격려에 힘입어 그 후 6년간 팔레스타인 사역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저만 이웃의 삶 속에 달란트를 남겨주었겠습니까? 이웃이 내 삶 가운데 남겨준 달란트는 없겠습니까? 부모님 없이 태어난 분 아무도 없으시지요? 선생님 없이 학교 다시닌 분 아무도 없으시지요? 자녀가 있으시다면 그 자녀를 통해 얻은 기쁨을 모르는 분 없으시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 남겨주는 달란트로 커져가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이미 이 땅에서 하나님의 즐거움이 어떤 것일지 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적은 일에 대하여 넷째.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주님은 제자들에게 적은 일에 충성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사역한지 6년 후, 하나님께서는 제 사역의 장을 넓히고자 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석사논문을 지도해주신 이스라엘의 교수님과 또 하버드 대학의 어느 교수님의 제의로 하버드 대학교  근동어문학과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구약교수로 임용이 되었는데 다름 아닌 고든콘웰 신학대학원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저로 하여금 가정을 돕고자 학부과정 진학을 포기했던 하버드 대학에서는 박사학위를 받게 하셨고, 또 팔레스타인 학생들을 섬기기 위해 진학을 포기했던 고든콘웰 신학대학원에는 교수로 가게 되어 작년까지 학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든콘웰 신학대학원에서 제가 학장으로 제직하며 감당한 가장 의미있는 사역은 그동안 영어로만 진행되어 왔던 학위과정을 스페인어는 물론, 포르투갈어 등 미국 내의 다양한 언어권의 1세대 이민교회 사역자들이 고든콘웰 안에서 그들의 언어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미국은 현재 5명 중 1나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 이민자들로 구성되어있는데 현재 이들을 섬기고 있는 이민 목회자들로 하여금 정규신학과정을 밟을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미국 내의 가장 시급한 선교적 과제이자 필요이기도 한 것입니다.  

제가 부학장이던 시절, 한 번은 중남미 목회자 교육을 위해 온두라스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 말았다 하며 남미 땅을 떠났던 때와는 달리, 이제 저는 하버드 출신 박사이자 명문 신학대학원의 교수 겸 학장의 신분으로 마치 다섯 달란트를 거머쥔 듯한 뿌듯함과 설레임으로 그 땅을 밟았습니다. 그런데 아주 난감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장대비가 양철지붕 위로 쏟아지는데 귀에 입을 바싹 대고 소리를 질러도 알아듣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현장 책임자에게 이 비가 언제 그치겠냐고 물었더니 한 달 째 비가 멈춘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비는 지난 2년간 가물었던 온두라스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는 큰 복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은 복이지만 여러 나라에서 찾아 온 목회자들과 저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매일 8시간씩 5일간 집중 강의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느 때 같으면 방에 들어가 다음 날 강의 파워포인트를 준비하고 있었을 저는 그 날 밤 기도로 밤을 지샐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 내가 챙겨간 나의 다섯 달란트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버드 박사라서, 또 유명 신학대학원 교수여서 비를 그치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허락해 주세요.”

아침이 되어 혹시나 하며 강의장으로 들어섰는데 정확히 8시가 되어 비가 그쳤습니다. 우리는 언제 비가 다시 쏟아질 지 몰라 최대한의 속도로 최다량의 내용을 소화하며 몰아갔습니다.  그리고는 학생들에게 묻기를 비가 멎은 김에 밤까지 계속 진행하면 어떻겠냐고 하니 좋다 하여 진행하고자 했는데, 정확히 4시 종강시간이 되자 천둥번개가 치고 순식간에 비가 쏟아져 강의는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동일한 상황이 이튿날도, 셋째날도, 넷재, 다섯째 날도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저희 목회자들은 구약의 포로기를 다루던 중 온두라스 민족의 아픈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나라에 살면서도 마치 잡혀 간 포로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백성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경악해 우리는 목요일 오후 강의를 접고 테구시갈파 시내를 밟으며 렘29:7 말씀을 바탕으로 그 도시의 평안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금요일 오후, 모든 일정을 마치고 보스톤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른 저는 승무원이 나눠준 신문을 받고 그만 숨이 막히는 줄 알았습니다. 바로 전 날, 저희가 테구시갈파를 걸으며 그 성의 평화를 위해 중보기도 하던 시간 바로 그 일대 주변 세 곳에서 온두라스 경찰 및 특수부대 등 네 기관이 합동으로 갱 조직인 ‘빤딜야 18’ 소탕전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주말 토요일에 테구시갈파 시내에서 박격포 50여대를 동원해 그 수도를 불바다로 만들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목회자들로 하여금 그 성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고, 그 기도가 드려지던 시간, 테구시갈파를 불바다로 만들고자 했던 일당이 소탕되고, 그 성읍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평안이 깃들었습니다. 

보스턴에 돌아와 월요일, 사뭇 들뜨고 무언가 큰 일을 이루고 왔다는 상기된 마음으로 사무실에 나갔는데, 제 학생 중 브라질 출신의 여 목사님 한 분 저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교수님 지난 목요일에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그 날 새벽 저와 제 남편이 동일한 꿈을 꿨는데 누군가가 우리에게 똑같이, ‘박성현교수와 그의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라’라 했습니다. 둘 다 놀래서 깨고는 그 날 작정하고 금식하며 교수님과 온두라스에 모인 목회자들을 위해 하루 종일 중보했습니다.

그 날 아침, 또 한 번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 말씀하신 대로 테구시갈파에 있던 저와 목회자들, 그 성안 모든 이의 평안을 지켜주셨고, 그 역사의 한 가운데는 다섯 달란트를 쥐고 온 교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 평생 신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한 채 성도들을 섬겨 오다 60이 넘어서야 신학생이 된 한 소박하고 온유한, 한 달란트의 목회를 하고 있는 제자의 기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주인은 다섯 달란트를 맡은 자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25:21] 

두 달란트를 맡은 자에게 역시 동일한 말씀을 주십니다:[마25:23] 

만약, 한 달란트를 맡은 자가 충성스럽게 그 맡은 역할을 감당했더라면 그 역시 동일한 칭찬을 들었을 겁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우리 모두는 적은 것을 맡은 자들입니다. 다섯 달란트는 적은 것이며, 두 달란트 역시 적은 것이고, 한 달란트는 당연히 적은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다시 오실 때 까지 모두, 적은 일을 맡은 자들입니다. 

III. 마치는 말

예수님의 오심과 다시 오심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이 땅에서의 삶의 시작과 끝이며, 그 끝날에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즐거움에 들이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너무 기뻐하기에는 이릅니다. 제가 인용한 달란트의 비유의 구절들 중에 생략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마25:21, 23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 구절들의 줄임표에 어떤 말씀이 있는지 아십니까?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착하고 충성된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에서도 계속, 아니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하시게 될겁니다. 부디 강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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