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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보냄을 받은 자의 삶(요한복음 20:21, 17:18)_토론토 말씀의교회 한혜경 목사(Knox College / 기독교윤리학과 교수)

보냄을 받은 자의 삶(요한복음 20:21, 17:18)

토론토 말씀의교회 한혜경 목사(Knox College / 기독교윤리학과 교수)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이심을  거듭 강조합니다.   

요한 복음을 읽다보면  “보내신 이”라는 명사와  “보내셨다”라는 동사가 자주 발견됩니다. 60번 이상이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또는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부터  보냄을 받으셨다”라는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요한 복음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세상 가운데 보내셨고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신 뜻을  순종하심으로 이루셨을 뿐 만 아니라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하심을  통해 자신이 아버지께로 부터 보내어진 그리스도임을  확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아버지께로 부터 보내진 분임을  증거하는 것으로 끝을 내지 않습니다.   이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께서 구원사역을 계속해서 진행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세상가운데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부터 보내어진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즉 우리들을  세상가운데  보내신 것입니다.    

잡히시기 전 날 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낸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8)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같은 내용으로  지상명령을  주십니다: “ 평강이 있을지어다….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한 20:21)   

요한 복음을 통해 우리는  세가지 차원의 “보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냄같이 예수님께서도 이 복음을 전파하고 구원사역을 계속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이 세상 가운데 보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성령님을 보내시어 믿는자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이제부터  “보내심”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요한 복음을 통해 깨닫게 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은  자신을 “보냄을 받은자”로 정의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 부터 보내심을 받은자임을 확실히 알고 계셨습니다. 이 확신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 나는 예수님으로 부터 보냄을 받은 자 입니다” 라는 고백을 할수있길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으로 부터 이 시대에 이 삶의 자리로  보내어진 사람이다” 라는 고백과 함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매일 매일 살아야 합니다. 

“나는 보내어진 사람으로  이 삶의 자리에 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삶엔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매일의  삶을 대하는 우리 자신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수동적이었던 태도가 적극적인 태도로, 부정적이었던 태도가 긍정적인 태도로 바뀔것입니다. 환경에 의해  지배받던 삶의 태도가 이제  환경을 헤쳐나가며 오히려 변화시켜가는 태도로 바뀔것입니다. 이기적인 삶에서 이타적인 삶으로,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던 삶에서 남에게 유익한 존재로  바뀔것입니다.  

둘째로, 내  의식 속에 “나는 예수님으로 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 라는 확신이  자리잡게 되면 우리는  보내신이의 뜻을 묻기 시작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4장 3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 저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그 많은 식구들이 함께 다니면서 한끼 한끼를 어떻게 해결하셨을까? 먹는 문제가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첫 관심사는 양식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로 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는 소명의식이 분명한 사람들은   내가 먹는 것, 내가 입는 것, 내가  누리는 것이 마치 인생의 전부인것 처럼 살지않습니다.   예수님처럼 보내신이의 뜻을 행하고 이루는 것이 우리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중대한 관심사였던 “보내신 이의 뜻”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상을 구원하시고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제일 먼저 외웠던 요절 말씀인  요한 복음  3: 16, 17 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저는 예수님께서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며 죽기까지 그의 뜻을 수행하셨는지 요한복음 6:38절의 말씀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대하며 나는 너무 감격하여서 수없이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시고 아버지의 심장을 가지고 생명을 구원하시는 사명을 죽기까지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38)

보내신이의 마음을 아시고 그의 뜻대로 한 영혼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목숨까지도 아끼시지 않으신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예수안에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가 맡기신 영혼들 중에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저는 목회자로서  반성합니다. 나에게는 과연  한 영혼을 향한 그런 긍휼함과 보내신이의 뜻을 이루고자하는 열정이 얼만큼 있는가?  

예수님의 중대한 관심사였던 “보내신이의  뜻”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며 불신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확실히 계시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 그러면 믿겠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것이니라.”(요한복음12: 44)

제자들 중의 한사람인  빌립도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대답해 주십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또 하나의 “보내신 이” 의 뜻은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 어둠속에 거하는 자들에게 진리를 선포하시고  자유케하시려는 것입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2:46) 

우리가 어두움 속에 있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내면에 빛이 없으면 영적으로 어두워져 삶의 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방황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성의 회복이 더욱 절실해진 때를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삶에 비관하여, 어떤 사람들은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어떤이 들은 자신이 추구하던 명예와 사업이 좌절되어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어떤이들은 세상을 탓하며 뭇 사람들에게 총을 겨눕니다.  왜 이런 악이 발생할까요?  사람들은  잠시 본인에게 주어졌던  삶의 자리가 그리고 잠시 누렸던 지위가 곧 자기자신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돈과 명예와 지위가 사라지면 곧 자기자신도 없어진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거나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까지고 해를 범하는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곧 어둠에 갖힌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되신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시면 어둠의 세력은 물러가고 내 안에 밝은 빛이 찾아옵니다. 빛은 생명이기 때문에 어떤 환경도 헤쳐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혁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보냄을 받은자로서  시대적 사명을 확실히 깨닫고 빛으로,  생명을 살리며 자유케하는일에 평생을 헌신한 하나님의 사람, 한 분을 소개해드립니다.   

2006년도에 발표된 영화 “Amazing Grace”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1759년도에 영국에서 부유한 특권층 집안에서 태어난  William Wilberforce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특권층으로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영국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의 친구로 부터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그는  정치계를 떠날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2 9세 되던 1786년 부활절 이침에 예배드리던 중   “시대적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중대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예수님께서 그를 국회의사당으로 보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가 보게된 것은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이 죄인지도 모르고 오히려 특권이라고 생각하며 저질렀던 가장 큰 사회악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프리카에 가서  사람들을 잡아다가 짐승처럼 노예로 파는 행위였습니다.  영국은 그 당시 이런 노예제도를 합법화하고 있었습니다.

위버포드가 받은 사명은 그당시 최고 사회악인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1788년   노예무역을 종결하자는 법안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패배로 돌아갑니다. 그는  포기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국회로 보낸 것은 이 일을 수행하게하기 위함이라는 보내신이의 뜻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791, 1792,  1793, 1797, 1798, 1799, 1804 1805 계속 패배합니다.  극적으로 1807년 노예 무역을 폐지하는 투표를  실시하게 됩니다. 영화는 여기에서 끝나지만 그는 그후에도  26년 간 계속해서 사람들을 설득하며 결국 1833년 7월 26일  노예해방안을 완전히 통과 시킵니다.  그리고  3일 후 45년간 타협하지 않고 “보내신 이”,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노예해방을 수행하고 결과를 본 후 인생을 마감합니다.  이 결과는 큰  파장을 이루어 미국에 서도 노예제도 폐지가 이루어지게 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늘 이시간 각자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봅시다.   예수님, 당신은  나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나를  이 시대에 내 삶의 자리에 보내셨습니까 ? 저도 이런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지며 나를 보내신이의 뜻을 재확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보다 일찌기 카나다로 보내셨고 내가 추구하던 것을 버리게 하시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하셨습니다. 이민 온 저에게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어린이 주일 학교와 학생들이었습니다. 언어 불통으로 교회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아이들은 교회 지하층에서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하나님이 나를 기성세대와 다음세대를 잊는 “bridge maker”로 부르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의 연속선상에서 지금은 미래의 목회자들에게 보내진 자로  바른 신학과 윤리관을 가르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가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애쓸 때, 그 분은 우리와  끝까지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한 복음 8:29)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한 복음 9:4).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대로 주어진 장소에서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여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어 드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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