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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열왕기상 6장 1-38절)_밴쿠버주사랑교회 윤성은 목사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열왕기상 6장 1-38절)

밴쿠버주사랑교회 윤성은 목사

우리가 믿음 생활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을 신뢰하며 따라가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어려우니까’, ‘힘드니까’, ‘불안하니까’, ‘미래를 알 수 없으니까’, ‘이러한 삶을 벗어나고 싶으니까’라는, 아주 현실적 이유를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더 나아가 ‘나는 복 받고 싶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그 놀라운 은혜를 누리며 살고 싶어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틀린 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모든 답들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눈을 돌리게 하고, 예수님을 찾아가게 하는, 첫 걸음을 떼게하는 단계에서의 이유라고 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보다 좀 더 궁극적 이유와 목적이 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며 살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서 갖게 되는 최고의 권세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를 말해볼 수 있겠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자녀된자가 가지게 되는 최고 권세는, 바로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게 아닐까.’ 그리고 ‘아버지를 부르고 싶을 때 언제든 달려가 볼수 있는 게 아닐까.’ 다른 말로 이야기해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아버지 하나님의 집에서, 같이 함께 가족으로 사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해보면, 동행하는 것. 주님과 함께 산책하는 것. 마치 아담과 하와가 범죄전 하나님과 더불어 동산을 거닐었던 것처럼 주님과 함께 사는 것. 곧 천국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아버지라 부르며, 함께 거닐며, 함께 사는 것. 이게 최고의 권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아는 복음성가중에 내 모습 이대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 가사에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모습 이대로 사랑 하시네 연약함 그대로 사랑 하시네

나의 모든 발걸음 주가 아시나니 날 인도 하소서

주의 날개 아래 거하는 것 주의 임재 안에 거하는 것

나의 가장 큰 소망 나의 가장 큰 은혜

주와 함께 동행하는 일”

이러한 가사중에는, 다른 어떤 고백보다 제 마음에 더 와 닿는 고백이 있었습니다.

“나의 맘 받으소서. 오셔서 주님의 처소 삼으소서. 나의 맘을 주님께 열었으니, 주여 내게 오셔서 내 맘에 거하여 주옵소서. 주가 기뻐하는 주의 성전되게 하소서.”

지난 한주간 그 간절함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오셔서 주님 처소 삼으소서.’ ‘주님 기뻐하는 주의 성전되게 하소서.’ ‘주님, 주와 함께 하고 싶어요. 주와 함께 거닐고 싶어요. 주와 함께 살고 싶어요’하는 간절한 고백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어 가장 큰 은혜는 무엇입니까? 가장 큰 소망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소망, 우리의 소원도 바로 여기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날개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 모시고 주님 기뻐하는 주의 성전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근본 이유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주님의 임재를 맛보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주님을 우리 삶속으로 모시어 들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우리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권세를 갖고 살아가도록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께서 우리안에 머무시도록 우리의 방을, 우리의 처소를, 주님의 성전을 잘 정돈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주님 거하시기 합당한 성전으로 지어져 갈 때,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오신 주님과 더불어, 최고의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일하심을 맛보며, 주와 동행하며, 주와 함께 거니는 최고의 기쁨,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될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주님께서 거하시를 기뻐하시는 성전으로 지어져 갈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에 기록된 솔로몬의 성전 건축기록을 보면서,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지어져 가야 하는지의 교훈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과 37절을 보면,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4년 두 번째 달부터 성전건축을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38절은 솔로몬이 왕이 되고 11년 8개월째에 성전 건축이 끝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7년 6개월이 결려 성전이 완공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주 긴 시간이죠? 그러나 그 7년 6개월도 사실은 건축이 시작되고 완공되기까지의 시간이지, 그 준비기간까지를 합한다면, 최소 20년 이상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솔로몬의 성전이라고 말하지만, 그 성전을 건축할 마음을 먹고, 재료를 준비하고, 설계도를 준비한 것은 이미 그 아버지 다윗왕때부터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역대상 28장 29장을 보면, 다윗은 성전건축에 들어갈 온갖 금과 은과 놋 철 등을 준비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29장 2절에는 다윗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와 또 마노와 가공할 검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모든 보석과 옥돌이 매우 많으며’ 거기다가 28장 19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 나에게 알려주셨느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설계도를 솔로몬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을 넘겨받은 솔로몬은 또 다시 4년이라는 준비기간을 갖게 됩니다. 즉위하자마자 성전건축을 향한 방향을 정하고 준비를 합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주님 모실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마음을 쏟고 정성을 쏟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다윗의 평생 소원이었을 거라 여겨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 1절 말씀을 시작하면서, 성전건축의 시작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480년이라고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열왕기의 저자는 왜 이곳에서 480년이라는 시간을 언급했을까요?

제가 이 말씀을 보는 순간, 이렇게 읽혀졌습니다. ‘이스라엘은 480년간을 목말라 했구나. 목마름, 갈증, 주님을 모시고 싶은 갈망으로 살아왔구나.’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 480년간의 여정속에 분명히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분명 동행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나아가 이스라엘은 바로 그 하나님과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정착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480년 후에, 그토록 갈망하던 성전이 세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그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픈 목마름으로, 갈망으로 세워진 것이었다’고.

오늘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주님의 처소를 만들어가며, 첫 번째로 세워야 할 기초는 바로 주님을 향한 갈망, 목마름에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주님을 만나고픈 열망, 주님과 함께 거닐고픈 갈증,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싶은 눈물. 주님 기뻐하시는 성전은 바로 그 갈증, 그 눈물로 지어져 가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방을 하다보면, 참으로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듣게 되는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주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어요. 주님을 더 알고 싶어요. 하는 소원을 적어 보내주신다. 그러한 갈망으로 말씀을 찾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은 이러한 갈증과 갈망속에 우리가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과연, 우리 주님께서는 갈망하는 자에게 임하셔서 동행하여 주심으로, 해갈의 기쁨을 더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갈망하십시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같이 주님의 임재안에 거하고 싶어요. 주의 날개아래 거하고 싶어요. 주님의 처소 삼아 주소서. 목말라 하십시오. 해갈의 기쁨이 주어지고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주님의 은헤가 넘쳐나게 될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7절 말씀을 보니까, 성전을 건축할 때,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왔기에, 건축하는 동안 성전 안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전에 한국에 있을 때 이런 광고가 있었다. 이소리도 아닙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 기뻐하실 처소되어 간다는 것은, 용각산과 같은 것입니다.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연장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내 소리가 없습니다. 

사실 교회는 내 소리를 내고 싶은 유혹이 가장 많은 곳입니다. 내가 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잘안다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아가 더 큰 유혹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저들이 모났다고 다듬어 주고 싶어하는 유혹입니다. 너 때문에 우리가 맞지 않아. 우리는 다 괜찮은데, 너 때문에 우리가 힘들어, 너는 좀 깎여야돼 라고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은, 주님께서 거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처소에서는, 그러한 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오히려 소리 없이, 다가가 손 잡아 주고, 등을 다독거려 주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이것이 주님 기뻐하시는 성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 어르신들 계시는데, 얼마나 귀한 믿음의 선배님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귀감이 되시는 분들이십니다. 제가 이러저러한 일로 전화를 드리거나 말씀을 나누면, 우리 어르신들은 뭐가 잘못됐네, 혹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런게 없습니다. 

한마디에요. ‘잘하셨어요. 목사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려구요.’ 

진짜 용각산 믿음을 가지고 사시는 분들이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을 지어가시는 분들입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했다고 연장소리 내고 싶은 유혹, 내 말대로 해야 된다는 연장소리, 다른 사람 모났다고 깎아주고 싶은 연장소리. 다 내려놓고, 용각산 믿음으로, 주님 거하실 성전을 지어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기뻐하실 성전은, 내 자랑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했습니다. 내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라 했습니다. 절대 내 생각으로, 내 경험으로 만들어지지 않을뿐 아니라, 다른 사람 고쳐보겠다고 깎아내는 것으로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절대로, 말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으로 만들어질까요? 세 번째 기준을 보십시오.

세 번째,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의 모습을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11-13절의 말씀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9절에 성전 건축이 마쳐졌다 했습니다. 솔로몬이 정말 주님 만나고픈 목마름을 가지고, 최고의 정성을 들여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잘했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정작 성전의 주인되시는 주님께서는 칭찬대신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 지켜라.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내가 정말 괜찮은 성전을 짓는 방법을 알려줄게. 내 율례를 행하라. 내 법도를 따르라.” 

무슨 말이겠는가? 내 말대로 해라. 시키는대로 해라.

주님은 내가 무엇을 잘해서,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보다, 주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480년을 이어온 갈망과 최고의 정성을 다하여, 내가 만들어 가는 성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생각 내려놓고, 주님 말씀하신대로 따라가는 것이 주님 최고로 기뻐하시는 성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최고로 잘 지은 성전은,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성전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지어진 성전입니다. 내 말로, 내 기준으로, 내 경험으로 가는 성전. 성전도 아닌거죠. 아름답다고 해도, 빛이 난다고 해도, 결코 주님 거하실 수 없는 빈껍데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내 생각따라 일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거 같습니다. 말씀따라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말씀과 내 생각이 부딪칠 때조차도 내 생각을 굽히려 하지 않습니다. 루이 14세가 그랬다 그랬죠. ‘짐이 곧 국가다.’ 내가 곧 법이고, 내가 제일 잘 알기에 내뜻대로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똑같은 생각을 품고 성전을 지어갑니다. 내가 제일 잘 알기에, 하나님을 위해서 가장 좋은 길을 내가 제일 잘 알고, 내가 제일 잘 할거라 생각하면서,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내가 480년을 고민한 것이기에, 내가 밤을 세워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낸 결론이기에, 내 말대로 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때, 주님 너무나도 슬퍼하신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성전을 잘 지어간다고 하고, 성전을 잘 정돈한다고 하지만, 정작 주인되시는 주님께서는 슬퍼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기뻐하고 내가 좋아하고, 내가 거할 처소는, 내가 하라는대로 순종하는 거라고.

주님 위해 많은 것을 내가 할 수 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내 생각대로 하면, 교회가 잘되고, 내 생각대로 하면 하나님이 손해볼 거 없을거라고 장담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의 교회는, 내 생각과 내 뜻이 아니라, 내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법대로 가는 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전되기 원하시나요? 천국의 기쁨을 누리기 원하시나요? 주님과 함께 할 것을 갈망하십시오. 더 가까이 더 가까이 주님께 가고 싶어하고, 주님께서 내 집에, 내 마음에 오시기를 갈망하십시오. 내 마음을 청소하십시오. 내가 주인되었던 마음의 집을 청소하고, 예수님이 주인되셨음을 선포하십시오. 너무 내 욕심차리려고 하지 말고, 내 자랑하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 자랑하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주님 우리 마음에 오시어 좌정하시어, 우리와 동행하여 주실 것이며, 주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 내 평생에 소원. 내가 더 간절히 간절히 원하는 것은, 주와 함께 거닐며, 주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주님 내 마음을 주님께 드리오니, 나를 주님의 처소 삼으시고, 좌정하여 주옵소서. 동행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갈망하며, 내가 가진 생각도 뜻도 다 내려놓고, 오늘 주님만을 주인삼고, 주님의 말씀따라 순종하며 살기 원하오니, 오셔서 주님 기뻐하시는 성전삼아 주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되기를 간절히 소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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