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누에서 만난 사람들 – 이누잇 사람 힛콕
두 번째 카누여정때 만난 힛콧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한국 우리 시골 동네서 알던 동생과 너무 비슷해서 하마터면 그 친구에게 한국어로 말을 걸 뻔했다. 오래 전 아시아에서 베링해를 건넜다는 몽골로이드 이동설의 산증거로 느껴질 정도였다.
힛콕은 20대 중반이었는데 고향인 북극 지대를 떠나 따뜻한 남쪽 밴쿠버로 왔다. 그는 한동안 집도 없이 살다가 운좋게 케어홈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이누잇 사람을 생전 처음 만난 터라 정신 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들의 생활 방식은 어떤지, 밴쿠버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생계 수단은 무엇인지 등등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던 것이다.
힛콕은 절대 여름에는 고향을 방문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눈과 얼음이 녹으면 많은 곳이 호수로 변하기 때문에 육지로 접근할 만한 길이 없고, 있다고 한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기에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 모든 곳이 얼어붙기 때문에 나침반만 있으면 어느 곳이든 쉽게 갈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벤쿠버에서 차로 얼마나 걸리냐고 묻자, 여름이라도 족히 한 달은 걸릴 것이라며 웃으면서 말했다. 혹 물 위로 착륙할 수 있는 경비행기가 있다면 자기 동네까지 3-4일만에 갈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사냥을 했으며, 겨울이 되면 하루 종일 깜깜한 밤이 지속되고 영하 40-50도를 넘기 때문에 밖에서 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의 가족에 대해서 묻자, 지금껏 신나게 설명을 해주던 그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우리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가족 소개가 그에겐 말하고 싶지 않은 금기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누잇 사회도 가정이 심각하게 깨어져 있다. 힛콕도 낳아준 어머니는 있으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캐나다 통계에 따르면 백인 청소년들보다 원주민 청소년들의 자살율이 5-6배 높다고 한다. 그런데 원주민 청소년 중에서도 이누잇 청소년들의 자살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깨어진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미래의 희망도 없이 살다보면 각종 중독에 빠져 결국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카누 여행 이후로도 몇 번이나 힛콕과 만나 식사를 했다. 여전히 그는 가족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려했지만, 길에서 부모와 아이가 손잡고 함께 다니는 모습을 보면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이후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다가 어느 날 문득 힛콕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밴쿠버 다운타운까지 가서 그와 함께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그때 힛콕은 여러 가지 힘든 이야기를 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벤쿠버에서 와서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후로 몇 달 동안 힛콕은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느 여성의 연락을 받았다. 힛콕의 사진이 내 페이스북에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힛콕의 어머니가 아들을 찾는다며 연락한 것이었다. 나는 카누여정을 같이 했던 사람들에게 수소문했고, 그제서야 힛콕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세상을 뜬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힛콕과 함께 찍은 사진을 모아 그의 어머니에게 전달했다. 사진을 손에 들고 오열을 했을 그의 어머니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무척이나 힘겨웠다. 이후로도 나는 하늘을 나는 경비행기를 볼 때마다 그걸 타고 하루 빨리 고향을 방문하고 싶어 했던 힛콕이 떠오른다. 그가 없는 이누잇 땅이지만 꼭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