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교계뉴스캐나다양종현 목사(안디옥미션)의 튀르키예 지진지역 방문 일기

양종현 목사(안디옥미션)의 튀르키예 지진지역 방문 일기

양종현 목사(안디옥미션)의 튀르키예 지진지역 방문 일기

밴쿠버 헤이스팅스 스트릿의 뒷골목 마약중독자들을 섬기는 양종현 목사(안디옥미션)가 지난 3월 6일부터 3월 17일까지 튀르키예 지진 지역을 방문하여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고 밴쿠버로 돌아왔다. 양 목사가 튀르키예 지진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 경험한 내용을 나눕니다. 

저는 지진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튀르키예 하타이주 주민들을 돕기 위하여 IECD(유엔소속 아시아협력기구)와 함께 튀르키예 지진재난구조작업을 하고있는 인터콥(10/40창의 미전도지역 이슬람국가에 복음전파를 집중 하는 선교회)의 북미 의료선교팀 2차 모집에 신청서를 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3년전 튀르키예에 2주간 잠시 가서 길거리 전도를 한 적이 있기에 늘 제 마음 한편에 저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번 지진 피해규모가 재앙적 수준이고 계속해서 여진피해가 늘고 있어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의료인(다만 UN 재난구조요원)이 아니라서 자격이 없어서 과연 어떻게 될까 했는데,밴쿠버 인터콥대표 전ㅇㅇ 간사님이 적극적인 추천으로 허락이 났습니다. 인터콥 의료팀은 대부분 미국에서 활동중인 분으로 그중엔 하버드대 의대교수님들도 있고 독일에서 우루과이 영국 등에서 활동하는 내과 심장의 카이로 한의학 간호사 통역사들로 총 27명이 2차로 참가했습니다.

제가 갔던 튀르키예는 대한민국의 7배 반의 크기이고 그 나라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메대와 바사입니다. 바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한 때 쓰임받기도 했고(에스라 느혜미야 에스더), 신약시대에는 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가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구약시대 바사는 메대의 속국이었고 변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대로 메대의 속국 바사의 고레스(바사 2대 왕)가 왕이 되었고 그가 메데와 바벨론등을 정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는 바벨론 왕 느부갓넷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취한 하나님의 집의 금 기구와 은 기구들을 총독 세스바살에 명하여 하나님의 집에 놓게하고 무너진 하나님 전을 건축하라고 명하고 스룹바벨에게 칙령을 내리고 유대인포로들 귀국(1차귀한)을 단행했습니다.

다리오왕은 예루살렘성 재건축과 성전재건축을 촉구하고 2차로 70만명의 유대백성들이 귀환캐 했습니다. 4대왕 아닥사스다 왕 때 3차 유대인포로들을 귀환시켰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 모르드개 등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500마일 정도를 4개월여 걸쳐 사막을 걸어 도착했습니다(니산월 정월초하루-5월 1일)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며 바샤는 5대왕인 다리오 1세때 페르시아 아테네 전쟁에서 패한 후 국력이 쇠약해져 BC 331년 헬라에서 일어나 알렉산더 대왕에 멸망되었습니다. 

그 후 중국에 쫓긴 흉노(말갈족)에 의해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이 멸망당했습니다. 10세기말 11세기 초에 흉노족(말갈족)은 튀르키예를 점령하고 위그르 제국, 셀주크(튀르크)제국, 오스만 튀르크 제국(1299), 2차 대전에 패한 후 그리고 터키 혁명정부(1922)을 세우고 1950년 한국전쟁때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군대도 UN군 파평규모면에서 4위로 참전하였습니다. 이번 지진피해를 당한 하타르주는 한국전 때 가장많은 군대를 파견하고 2차북미의료팀이 그지역에서 의료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신약시대 튀르키예는 사도바울의 고국이기도 합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불렀던 ‘수리아 안디옥교회’와 사도바울이 ‘이방 선교를 시작한 출발점’ 으로 보는 ‘비시디아 안디옥교회’도 튀르키예에 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교회에서 사도바울은 복음을 받은 자들을 위해 갈라디아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세운 에베소교회를 비롯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도 튀르키예에 있습니다. 바울은 예베소교회에 3년간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고, 두란노서원에서 2년간 머물며 가르치기도하며 고린도전후서를 썼습니다. 그곳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남겨 섬기게도 했습니다. 사도요한도 튀르키예의 일곱교회를 섬겨서 초대교회때 인구의 70%가 기독교인이었다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구의 0.1%(약7,600명/8600만명 중)밖에 기독교인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들은 늘 국기를 보며 기독교에 대한 적개심 및 원한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튀르키예 국기의 바탕은 빨강색인데 십자군전쟁 시 코소보 전투(1448)의에서 오토만 군인들이 전장에서 밤에 자다 일어나 탠트밖으로 나갔는데 피웅덩이에 초승달과 별이 반사된 것을 보고 그 일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튀르키예 국기바탕색을 빨강색으로했다 합니다. 벌써 수백년이 지났는데도 튀르키예 백성들은 어제일처럼 하나같이 기억하고 지금까지 계속 십자군전쟁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기독교를 적대적으로 생각케 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로 개종하면 가족 친척들에서 뿐만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괴롭힘과 위협 그리고 온갖 불이익을 받으며 테러위협까지 받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주님을 영접하는 일은 순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2000년대에도 독일선교사를 비롯 여러선교사들이 암살당했습니다. 2007년에도는 터키쿠르드족을 5년째 섬기고 있던 인터콥의 김ㅇㅇ선교사가 칼에 맞아 순교당하기도 했습니다. 법적으로 전도하는 것은 불법으로 경찰이 현장에서 잡고 또한 주민들은 경찰에 신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튀르키예는 복음화율이 낮습니다.

저는 이런 튀르키예에서 3년전 밴쿠버 인터콥 유ㅇㅇ총무님이 비행기 삯을 내줘 튀르키예 길거리 전도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2주간 길거리에서 가정에서 공원에서 바닷가 등에서 발이부르트도록 성령께서 “가서 전하라”는 감동주실 때마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 튀르키어로 복음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때론 경찰에 잡혔다 취조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두 번 다시 복음을 전하지 말라”라는 경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을 피해 다니며 복음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순종해야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제가 만일 지나치면 그들은 일평생 복음을 들을 수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지진소식을 듣고 기도하는 중 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다시 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6일 YVR 출발하여 7일 튀르키에 ADANA에 저녁 10시 20분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의료팀을 만나 호텔에서 일박하고 8일 이튿 날 아침 현지 인터콥 샘으로부터 지진상황 및 사역할 장소 등을 배정받고 그곳으로 두 시간 반 차타고 이동 후 ㅇㅇㅇ보건서 앞 공터에 남녀 숙소 천막을 현지 셈들과 셋엎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사역할 마을 지진 피해가 컸던 마을을 향하여 30분간 차를 타고 갔습니다. 가서 전체 보건소 끝 룸에서 전체 기도를 하고 의료팀은 진료 한방 카이로로 나누었습니다.

저는 어린이 팀으로 천막 안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 휴학으로 문을 닫은 학교로 데리고 갔습니다. 너무 음산했습니다. 학생이 아무도 없는 학교를 보니 어린 시절 마치 여름방학때 가끔 학교가서 뛰놀기 위해 찾아갔던 텅빈 운동장이 떠올랐습니다.  교실마다 학생들이 가득하고 운동장은 아이들이 체육시간에 나와 재잘거려야 할 텐데 너무 조용했습니다. 인터콥 자비량 샘들(터키 시리아난민사역 샘들, 터키쿠르드족 난민사역 샘, 터키 페르시아난민사역 샘들 터키사역 샘들 연인원 약 매일 약 15명씩 돌아가며 약 200여명이 와서 북미의료사역 팀(27명)통역으로, 운전으로, 읍 시 군 경찰 군부대 연락하여 의료 사역의 길을 열어주고 식사를 제공해줌)의 연락을 받았는지 행정직원이 와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얼마 후 칠 팔명의 유치부 초등부 어린이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에게 좋아하는 칼 모양 풍선과 강아지 모양 풍선을 만들어주고 즉석카메라로 사진 찍어 나주어 주니 중고대학청년들까지 모였습니다. 주먹모양의 벌룬으로 쉐도우복싱도하고 칼모양벌룬으로 검도시합도 하고 하니 조용했던 학교가 운동회하는 것처럼 왁자지껄하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가득했습니다. 중고청년들은 배구축구하며 땀을 뻘뻘흘리며 운동했습니다. 어르신들도 이 십여명 방문하고 자녀손주들이 밝게 웃고 띠노니 좋아들 하셨습니다. 자녀들 손주들하고 사진도 찍어 빼주니 아이들보다 더 좋아들 하셨습니다. 학교에 나온 학생들 어디에도 지진 난 마을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졌습니다.

얼마 후 점심시간에 그 동네 이장집에서 저희 팀 천막앞에서 저희 팀 의료 및 어린이 팀 등 20여명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동네 잔치가 되었습니다. 동네분들이 거의 다 모여 우리에게 닭을 잡아 비빔밥을 대접했습니다. 요구르트로 만든 튀르키예 전통 음료 아이잔도 나왔습니다, 모든 분들이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이 지진피해지역이 아니라 한국의 시골 결혼식 잔치 집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그곳에서 식사하고 늦은 오후까지 사역을 마치고 천막으로 돌아와 전체 평가회를 갖고 취침하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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