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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아버지는 다 계획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_ 서규환 목사 & 이소영 사모 (2)

특별연재 “아버지는 다 계획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_ 서규환 목사 & 이소영 사모 (2)

이 당황스러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라서 답답해진 저는 하나님께 나아가 얼마간 금식기도를 하며 다음과 같이 가지 못하는 이유를 댔습니다.  

“하나님! 이 말씀은 참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코로나 때도 예배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며 지금까지 함께 해 준 가족 같은 성도들인데 이제 막 다시 회복되고 새 가족들도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제가 떠나면 마치 자신들을 버린 듯 상처받기 십상입니다.”

“지금 제가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교회를 사임하고 한국에 가면 분명히 어떤 성도들은 제가 어디 교회 청빙이라도 받아서 가는 줄로 오해 하며 크게 실망할 겁니다.”

“또 저희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합니까? 엄마 아빠랑 떨어지기 싫다고 기숙사 안가고 집 가까운 대학교에 진학한 아이들 아닙니까! 하도 여기저기 떠돌아 다녀서 이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이제는 아예 자녀들 보고는 너희가 알아서 살라고 하고 저희가 한국에 간다고 하면 애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아직 둘 다 운전면허도 없는 것 아시잖아요.”

“또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한국과 캐나다 두 집 살림을 합니까? 둘 다 아직 학생들인데 알바를 한다고 한들 학비며 생활비며 어떻게 충당을 할 것이며 대체 사역은 무슨 돈으로 합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내는 코로나 백신주사도 맞지 않아서 국내선 비행기도 타려야 탈수도 없는 상황에서 태평양 건너 한국에 어떻게 갑니까?”   

묵묵부답 아무 말씀도 없으신 하나님께 마치 기드온과 같은 심정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3가지 사인을 구하며 떼를 썼습니다.

“그러면 첫째로 교우들의 마음을 만져주셔서 차라리 저희를 선교사로 파송해 주시고 좋은 자리 청빙 받아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교우들이 알아서 섭섭함이 없게 해 주세요.”   

“두 번째!” 

“저희는 지금 한국 가서 살 전셋집 비용은 고사하고 두 내외 비행기를 타고 갈 목돈도 없는데 어떻게 갑니까? 그러면 우선 비행기 값부터 주시고 한국 가서 살 집도 해결해 주세요.   

“셋 째!”

“아내는 몸이 너무 아파서 백신주사도 안 맞은 것 아시죠? 정 그러시면 캐나다 법을 바꿔주셔서 이제 아무나 다 비행기 탈수 있도록 해주세요.” 

제일 먼저 소식을 접한 큰 아이는 너무나 의젓하게도 “저희는 염려마세요. 제가 동생 잘 돌볼게요.” 라고 말해 주었고 한동안 닭 똥 같은 눈물은 뚝뚝 흘리던 아직 10대인 딸은 “엄마 보고 싶어서 어떡하지?” 하면서도 하나님 뜻이라면 한국에 가야하지 않겠냐고 말해 주었습니다.  

교인들은 아쉬운 눈물을 흘리며 우리를 배웅해 주었고, 저희를 많이 사랑하시는 어느 자매님이 

“목사님, 사모님 저 상태로는 절대로 일반석 못타고 가십니다. 대한항공 제일 좋은 자리 타고 가셔도 사모님은 너무 너무 고통스러우실 거 아시죠? 꼭 이 돈으로 제일 좋은 자리 타고 가셔야 해요” 라고 말하며 큰 후원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방역으로 인해서 생겼던 캐나다 항공규정이 얼마 후 바뀌면서 PCR 검사만 받으면 한국으로 갈 수 있게 길이 열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그 기도들이 얼마 안 가 다 이루어지는 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29살에 목사안수를 받고 한국을 떠나 선교사로, 이민교회 목사로 살던 24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사랑하는 교우들과 아직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밴쿠버에 그대로 둔 채, 파킨슨 병 진단을 받아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들어 하며 몇 년째 투병중인 아내와 단둘이 한국에 간다고 하는 일은 저희에게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6개월 동안은 보험도 가입할 수 없는 외국인 신세인 저희가 무작정 한국에 가는 일은 너무나 큰 산으로 보였습니다.  

보험도 없고 살 집을 구할 재정도 없고, 아무런 준비나 대책도 없이 캐나다보다 더 낯설어진 고국에 수 십 년 만에 돌아온다는 것은 많은 기도의 시간이 필요한 결단의 순간이었습니다. 그저 떠나라는 명령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란을 떠났던 아브라함과 같은 무거운 심정으로 개척의 수많은 이야기들과 사연들 속에서 너무나 사랑했고 정들었던 교회를 사임한 저희는 그저 ‘순종’이라는 단어 하나를 붙잡고 한국으로 가기로 확정을 지었습니다.

“우리 한국에 가면 어디에 있지요? 저는 기도원에 가서 조용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싶어요.”

“나는 아내의 이야기에 대답도 못하며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거처가 없었던 저희에게 하나님은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을 경험케 하셨습니다. 한국으로 출발하기 얼마 전, 작은 모임에 갔다가 저희가 한국에 간다는 소식을 들은 한 분이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캐나다에 가족들 보러 왔다가 아시는 대로 그만 교통사고가 나서 6개월 쉬었잖아요. 그래서 한국에 작은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놓고 며칠 살지도 못하고 왔는데 이건 완전히 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한 여호와 이레네요. 제가 자동차 보험도 들고 와서 그냥 두 분은 몸만 가시면 되고 차도 마음대로 쓰세요.”

저희는 너무나 정확하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 그저 감사할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할렐루야! 약기운이 떨어지면 온 몸이 굳어져서 몸도 잘 못 가누는 아내를 휠체어에 태운 채, 선선한 캐나다와는 달리 무더운 열기와 높은 습도로 숨이 턱 막히는 2022년 8월의 끝자락에 저희 내외는 조용히 한국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오펠리모스 선교회- 서규환 이소영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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