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설.래임 設.來臨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섬김> 수건과 대야 @섬김은 어린아이의 일이 아닙니다

<섬김> 수건과 대야 @섬김은 어린아이의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가 단번의 희생과 섬김을 상징한다면, 수건과 대야는 우리의 일상에서 날마다 반복되는 섬김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으심을 앞두고 수건과 대야를 놓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느니라.”(요13:15)

그렇다면, 예수 제자 공동체 즉 교회의 가장 선명한 특징은 서로의 발을 씻겨 주는 ‘섬김’에 있음이 자명해집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타인의 발을 씻겨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건과 대야를 가져다 내려놓고, 누군가의 발을 씻겨주기 위해선 체조선수가 아니고서야 반드시 먼저 허리를 숙여야 하고,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섬김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겸손이 없으면 지속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여러분의 집에서 누가 제일 섬김을 받습니까? 가장 연약한 아이들 아닙니까? 아이들은 가정이 세워지는데 경제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별 도움이 안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연약하기에 도리어 부모의 Service(섬김)을 받습니다. 섬김은 어린아이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섬김은 언제나 성숙한 자의 몫입니다.

영단어 Deacon(집사)은 디아코니아란 헬라어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디아코니아는 dia(~를 통하여, ~가운데)와 konia(먼지)의 합성입니다. 즉 집사의 직분은 먼지 가운데서 수행되는 직분이란 뜻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오롯이 섬김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은 사랑과 겸손으로 무장한 성숙한 신자만이 바르게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섬김을 받을 가치와 자격 있는 사람만 섬기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 그 현장에는 가롯 유다도 있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진정한 섬김은 상황과 사람의 조건에 따라 변치 않습니다.

RESUME, 이력서의 ‘이력(履歷)’은 한자어로 밟을 ‘리’와 역사 ‘력’의 결합어입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로 이제 제자들은 이력, 즉 밟는 땅이 달라집니다. 섬김을 받는 높은 땅에서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주는 섬김의 낮은 땅으로 말입니다. 밟는 땅, 이력이 달라지는 것이 곧 성숙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수건과 대야’는 무엇입니까? 지식, 물질, 힘, 각양 은사들, 심지어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재료가 되는 아픈 상처의 이력조차도 타인의 발을 씻어주는 수건과 대야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Fullerton 나들목비전교회 권도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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