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신화 #베데스다(Pool of Bethesda) #무자비한 자비의 집
베데스다에는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오던 전설 혹은 신화가 있었습니다. 천사가 가끔씩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 바로 그 때! 제일 먼저 베데스다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 낫는다! 더라는 전설말입니다. 이 전설의 핵심은 ‘낫는다’가 아니라 ‘먼저’입니다. 선착순 1등만 치유될 수 있는 곳, 그래서 어떻게든 무슨 편법과 반칙을 써서라도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곳, 타인의 생명을 배려해서는 내가 살아날 수 없는 곳, 그래서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은 적이 될 수밖에 없는 곳, 그곳이 바로 베데스다의 잔혹한 실상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베데스다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베데스다는 본래 히브리어 벧(집)과 헤세드(사랑,자비)의 합성어로 ‘자비의 집’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1등만 치유될 수 있다는 베데스다의 법칙은 베데스다를 ‘무자비한 자비의 집’으로 만들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곳에 사랑과 은혜(자비)로 충만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진짜 베데스다가 오신 겁니다. 예수님은 38년된 병자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세상에 병으로 고생하는 하는 사람들 중 낫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낫고 싶은 그의 인생 소망을 몰라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삶을 노예삼은 신화를 복음으로 바꿔주시기 위한 질문입니다. 그는 당연히 “네 주님, 정말 낫고 싶으니, 고쳐주옵소서.”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엉뚱합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 5:7)
베데스다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그의 눈은 치유의 주체이신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베데스다만 보였던 것입니다. 그에게 필요한 예수님은 자신을 치유해주실 예수님이 아닌, 베데스다에 자신을 경쟁에서 이기게 해 주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경쟁에서 이기게 해 주시는 분으로 우리 곁에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망가진 우리 삶을 온전히 고쳐주시기 위해 치유자로 우리 곁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거라!” 하십니다. 베데스다를 떠나라 하십니다. 베데스다가 그의 희망이 아니라, 베데스다를 떠나는 것이 그의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철저히 속고 있었습니다. 베데스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자기 삶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거짓된 신화에 말입니다. 21C 베데스다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베데스다의 악령은 우리에게 어떻게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너희들의 희망이라고, 그래야만 더 나은 삶, 행복한 삶을 수 있다며 여전히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베데스다의 그러한 신화는 강력합니다. 거기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면서도, 예수님을 그저 내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나를 밀어주시는 분 정도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치유자이심은 정작 모른채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베데스다의 신화에서 벗어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치유의 길은 베데스다에서 일등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을 만나 그 사랑으로 치유받고 베데스다를 떠나는 것이라는 복음!말입니다. 1등하지 못해도, 승리하지 못해도, 성공하지 못해도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복음!!말입니다.
NLMA선교협의회 사무총장 권도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