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있는 악한 행동과 생각을 깨끗이 하라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몇몇이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은 사건으로 인하여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언급하셨습니다(막 7:6). 예수님께서 이사야서 29:13절의 말씀을 인용해서 강조하시는 내용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주장하는 장로들의 전통은 사람의 전통이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막 7:8) 너희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들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9) 그리고 그(예수)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이와 같이 무시하고 있구나! (10) 모세가 말하였다. ‘너의 아버지와 너의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11) 그런데 너희들이 말하기를 ‘만일 사람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당신이 나에게 받을 수 있었던 유익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바친] 예물이다’라고 하면, (12) 그가 더 이상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해드리지 않도록 허락하고 있다. (13) 너희는 너희가 전해준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이 하며, 또한 이와 유사한 일들을 많이 행하고 있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사람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3가지 동사로 표현합니다(막 7:8, 9. 13).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1) 버리고(aphiemi: to abandon), (2) 무시하고(atheteo: to nullify), (3) 헛되이 하고(akyroo: to make void)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허락해 주신 이유는 그들이 언약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레 11:45; 19: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속하심의 은혜 가운데에서 출애굽의 역사를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은 하나님의 거룩에 동참하는 삶입니다. 하지만 이 거룩이 형식에 빠지면 거룩의 본질을 상실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형식을 따라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무시하고, 헛되이 여기는 모습을 부모 공경의 모습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십계명의 제 5계명에 해당이 되는 부모 공경은 이 땅에서 장수의 복이 허락된 복입니다(출 20:12; 신 5:16). 이와 반대로 언약의 백성들이 십계명의 제 5계명을 어기면 죽음으로 그 대가를 받게 됩니다(레 20:9).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면서 부모 공경을 거룩한 삶의 첫 번째 예로 제시합니다(레 19:2-3).
예수님께서 언급하시는 형식의 폐단이 부모 공경과 연결되었을 때 그 내용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고르반’(korban: an offering to God)이 구약 성경에 처음 사용되는 곳은 레위기 1:2절입니다. ‘고르반’은 구약의 다섯 가지 제사 제도에서 사용이 되는 ‘예물’(offering)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 사이에서 ‘고르반’의 문제점은 형식이 본질을 삼켜 버렸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성문화 하여서 작성한 미쉬나 네다림 1:2절의 내용을 보면 ‘고르반’은 ‘서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In the case of one who says to another that a certain object is konam, konaḥ, or konas, these expressions are substitutes for the term offering [korban], and the vow takes effect.” (Mishnah Nedarim 1.2)
한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면, 한 농부가 무화과 과수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무화과 열매의 소득 일부를 부모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농부가 부모님께 드리는 무화과 열매를 아깝게 생각해서 무화과 과수원의 열매를 하나님께 바친 ‘고르반’이라고 선포하면, 이 열매는 하나님의 예물 또는 헌물이 되어서 더 이상 부모님께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르반’ 제도의 문제점은 강제성이 없어서 일부만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거나 아예 드리지 않고 자신들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는 ‘고르반’이라고 하는 사회적 관습을 이용해서 하나님께서 십계명에서 언급하고 계신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무시하고, 헛되이 여기고 있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대화가 끝나고 난 후 예수님께서는 다시 무리를 불러 말씀하십니다.
(막 7:14) 그리고 그(예수)가 무리를 다시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으로부터 그에게 들어가서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16) NA(Nestle-Aland) 27과 The Greek New Testament, UBS 5에는 16절의 본문 내용이 없습니다. (개역 개정 성경과 일부 한국어 성경은 15절의 하반절을 16절로 번역하였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먹는 것으로 자신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자신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막 7:15).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지키고 있는 장로들의 전통을 정면으로 대치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내적인 정결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장로들의 전통으로 주어진 외적인 정결함이 내적인 정결함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하였습니다(막 7:17). 특별히 마가복음에서 ‘집’(oikos: house)이란 사적인 공간(private area)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주시는 장소입니다(막 5:38; 7:17; 9:28; 9:33; 10:10; 14:3). 예수님께서는 레위기 11장의 음식법과 관련된 내용을 재해석하십니다.
(막 7:17) 그리고 그(예수)가 무리를 떠나 집에 들어가셨을 때, 그의 제자들이 그 비유에 관하여 그(예수)에게 질문하였습니다. (18) 그러자 그(예수)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도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은 그를 더럽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느냐? (19)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20) 그리고 그(예수)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21) 왜냐하면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곧] 속에서부터 악한 생각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 음행들, 도둑질들, 살인들, (22) 간음들, 탐욕들, 악독들, 속임수, 방탕, 악한 눈, 비방, 교만, 어리석음 (23) 이 모든 악한 것들은 속에서부터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Translated by YG Kim)
레위기 11장에서는 정결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새 언약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는 의미에서 정결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의 음식법을 폐기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먹는 음식은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배로 들어가 배설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막 7:19).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사람의 마음을 더럽히는 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약 성경에서 마음(kardia: heart)이란 단순히 인간의 심장을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라 인간의 생각(thinking), 감정(feeling), 그리고 의지(volition)를 포함한 내면의 삶의 중심이자 근원이고, 또한 지각(perception)과 지혜(wisdom)와 지성(intellect), 그리고 인간의 생각의 반영을 포함한 모든 숙고(reflection)를 포함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12가지의 악한 생각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막 7:21b-23).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12개의 죄의 목록들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앞의 6개 목록은 복수(음행들, 도둑질들, 살인들, 간음들, 탐욕들, 악독들)로 기록되어 있고, 나머지 6개는 단수(속임수, 방탕, 악한 눈, 비방, 교만, 어리석음)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6개의 복수로 기록되어 있는 죄의 목록들은 금지된 행동의 개념이고, 단수로 기록되어 있는 6개 목록들은 금지된 생각과 관련된 개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수로 기록되어 있는 6가지 금지된 행동들은 처음 세 개와 나머지 세 개가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칭 구조를 통하여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음행과 도둑질과, 살인의 악한 마음이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연결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음행’(porneia: fornication) = ‘간음’(moicheia: adultery)
‘도둑질’(klope: theft) = ‘탐욕’(pleonexia: greediness)
‘살인’(phonos: murder) = ‘악독’(poneria: wickedness)
또한 단수로 기록되어 있는 금지된 생각과 관련된 6가지 목록들을 거꾸로 나열해 보면, 내적인 죄가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리석음’(aphrosyne: foolishness) => ‘교만’(hyperēphania: arrogance) =>’비방’(blasphemia: blasphemy) =>’악한 눈’(ophthalmos poneros: evil eye) =>’방탕’(aselgeia: licentiousness) =>’속임수’(dolos: deceit)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금지된 행동과 금지된 생각과 관련된 12가지의 죄의 목록들은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에서 말씀하시는 여섯 번째 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 5:8) 마음이 깨끗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Translated by YG Kim)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6가지의 금지된 행동들과 6가지의 금지된 생각들의 목록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게 하는 죄악들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려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렘 4:14; 바른 성경)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형식에 빠져 인간의 마음 속에 내포하고 있는 죄악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을 때 그들이 형식이 본질을 사로잡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악한 생각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거룩의 시작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함께 나누기>
-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3가지 동사로 설명해 보십시오. 우리들도 교회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동일하게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룩이 형식에 빠지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들의 모습 가운데에서 이러한 모습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 성도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는 첫 번째 모습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고르반’이라는 잘못된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고르반’의 본질적인 의미와 유대 공동체에서 행해지고 있었던 ‘고르반’의 모습을 설명해 보십시오.
- 왜 예수님께서는 유대 공동체에서 행해지고 있는 ‘고르반’의 문제점을 꾸짖고 계십니까?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정결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 신약 성경에서 사용이 되는 ‘마음’이란 어떠한 장소입니까?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6가지의 금지된 행동들은 어떠한 연결 고리가 있습니까?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6가지의 금지된 생각들을 우리가 어떻게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