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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세상과 교회를 잇는 나들목 칼럼] “아가페는 오래참지만, 에로스는 안달합니다.”

“아가페는 오래참지만, 에로스는 안달합니다.”

1. 사랑: 더 큰 은사인가? 은사가 걸어가야 할 좋은 길인가?

고린도전서 12장 마지막 절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였고, 직후에 고후 13장 그 유명한 ‘사랑장’이 나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사랑을 더욱 큰 은사로 해석하곤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14장 첫 절에서는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은사)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즉, 사랑과 은사는 모두 추구하고 사모해야 개별적인 것이지, 사랑이 더욱 큰 은사는 아닙니다. 사랑과 다른 은사들과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라, 은사가 걸어가야 갈 가장 좋은 길입니다.

고전 12장 31절과 14장 1절을 종합해보면 이런 뜻과 같습니다. “신령한 은사를 계속 구하십시오. 가능한 더 큰 은사를 사모하십시오. 그러나 언제나 사랑을 따라 구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만이 은사가 걸어야 할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2. 안달하는 에로스, 오래참는 아가페

프레드릭 뷰크너는 <어둠 속의 비밀> 에서 “아가페는 오래참지만, 에로스는 안달한다. Agape is patient; eros champs at the bit.”고 했습니다. 그의 말은 참으로 옳습니다.

a.에로스

우리는 에로스하면 육체적인 사랑만을 생각하는데, 본래 이 말은 ‘가치에의 끌림’(attraction to value)”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어떤 가치를 가진 대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행위가 바로 에로스입니다. 이성뿐 아니라, 지식과 권력 그리고 돈을 사랑하는 것 같이 자아의 만족을 채우려는 행위가 다 에로스입니다.

에로스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의 제한된 자원 속에서 이 “에로스”는 항상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가 원하는 가치가 다 비슷하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낳습니다. 에로스는 결국 내몫을 빼앗길까봐 내가 얻지 못할까봐 안달하게 되고, 그 안달이 결국은 온갖 불의의 착취, 속임수, 폭력, 전쟁 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에게로 끌고 오는 사랑인 에로스는 안달합니다.

b.아가페

그러나 고린도전서 13장이 말하고 있는,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울 수 있는 ‘사랑’은 자기에게로 끌고 오는 <인간의 사랑-에로스>가 아닌, 자기를 내어주는 <신적 사랑-아가페>입니다. 우리가 언제 자신을 온전히 내어줄 수 있을까요? 아니 그 정도까지 완성된 사랑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언제 나의 것을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내게 부족함 없이 충분히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초월적으로 충만(pleroma)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무리 나눠주셔도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자신을 채우시기 위해 다른 자원들을 추구할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 기꺼이 나누어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충만한 하나님 안에 거하면, 우리도 그만큼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손해보는 자리에서도, 상처받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오래참으며 사랑으로 견딜수 있게 됩니다.

3. 맥스 루케이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누구누구는 오래 참고, 온유하고, 시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며 견딜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생산되고 흘러나갈 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에 어울리는 사람은 역사상 단 한명만 이 땅에 존재했었습니다. 바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맥스 루케이도의 말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비로소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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