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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영접,” 가족이 되다. 

“영접,” 가족이 되다. 

 고전 희랍어 “프로스람바노”는 “붙잡다,” “환영하다,” 혹은 “주목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다가오는 죽음을 제자들에게 예언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말립니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주님!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설득하는 장면을 설명하는 단어가 프로스람바노입니다.  

   직업이 의사였던 누가는 이 낱말을 “음식을 섭취하다”로 사용합니다. 바울을 호송하던 배가 이탈리아로 항해하던 어느 날 유라굴로라 부르는 폭풍에 휘말립니다. 사십일을 바다에서 표류하던 배는 드디어 어떤 섬에 정박하게 됩니다. 그 때 바울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섭취하라”고 권합니다. 누가는 또한 이 낱말을 “붙들다,” 혹은 “도움을 얻기 위해 군인을 징집하다”로 씁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지역의 회당에서 성경을 가르치자, 그곳에 있던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바울을 시기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불량배들을 모아서 그를 군중들 앞으로 끌어내려고 바울이 머물고 있는 야손의 집으로 쳐들어 갑니다. 유대인들이 깡패를 모으는 행동을 프로스람바노로 표현했습니다.

   사도행전 28장 2절에서 이 낱말은 “영접”으로 사용됩니다. 바울이 승선했던 배가 파선되고 그의 일행이 널빤지를 의지하여 간신히 몰타섬에 올라옵니다. 성경은 그 섬 사람들의 행동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지금까지 살펴본 이 단어의 사용법은 매우 단순합니다. 사람들의 특별한 관심이 누군가에게 집중될 때 쓰인 것입니다.  

   로마서 14장에서는 교회는 믿음이 연약한 자의 의견을 비판하는 것 대신에 “그들을 받아라”고 할 때, 이 낱말을 사용합니다. 곧 이어서 교회가 그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고 밝힙니다.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할 때 동일한 낱말을 사용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영적으로 가르쳤던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언급하며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대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거든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 주고, 나를 맞이하듯, 그를 맞아 주기 바랍니다.” 사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는데, 그는 주인의 귀중품을 훔쳐서 도망쳤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던 당시 오네시모는 잡히면 당연히 죽음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라고 부탁합니다. 프로스람바노는 “누군가를 기독교 교회와 성도들의 교제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입니다.

   고대 근동 지역 사람들이 사용했던 프로스람바노는 기독교의 영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더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고대 유대 사회에서 구약성경을 희랍어로 번역한 “칠십인역”에서 이 낱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받아들일 때 자주 사용됩니다.  시편의 저자는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낱말은 한 사람을 영원한 자녀로 받아 준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복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언급하면서 다윗은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뜰에 살게 하신 자임을 말합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 “가까이 데려 오다”로 사용됩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라고 밝힙니다. 그렇다면, 이 단어의 첫번째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특별한 자녀로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영접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받아 주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받아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받아 줄 때 사용된 이 낱말은 그리스도인이 동료 인간을 받아줄 때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환영할 때는 하나님의 모든 관대함, 용서, 순전한 친절이 있어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프로스람바노는 “누군가를 자신의 조력자로 수행시키다”는 뜻으로 일관성 있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전쟁할 때, 그리스의 용병 장이었던 크세노폰이  새로운 기병과 보병대를 자신의 원정군으로 받았을 때, 그 원정군을 프로스람바노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 사회에서 이 낱말은 특히 세 개의 희랍어 낱말들과 함께 사용됩니다.  그것은 “동맹” 혹은 “결연”을 의미하는 “숨마코스,”  “일을 함께 하는 사람” 또는 “일을 돕는 사람”을 의미하는 “수네르고스,”  그리고  “사업의 파트너” 혹은 “동업자”를 의미하는 “코이노노스”와 함께 사용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교회와 교회 공동체로 영접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번째, 교회 측면에서 그 사람은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가장 잘 사용될 수 있는 은사가 있다는 것을 완전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영접받은 사람 측면에서 그는 교회 공동체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힘과 재능을 교회 사역에 투입할 목적으로 교회에 들어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파피루스에 기록된 프로스람바노는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됩니다. 첫째는 “집이나 가정에 들어오는 사람을 환영한다”에 쓰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 공동체에 받아들여 졌을 때,  그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나그네처럼 그 가운데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는 가족의 일원으로 집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를 소개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가족이지, 서로 모르는 낯선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두 번째, 후기 희랍어에서 프로스람바노는 “군인을 군대에 등록시키는 것”에 대한 전문 용어입니다.  입대한 사람을 그가 근무할 부대에 배속한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한 개인이 교회의 교제 속에 들어갈 때, 그는 그리스도의 군대에 입대한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군인이 된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환영하고 영접한다는 희랍어 프로스람바노는 하나님께서 한 개인을 자식으로 받아 주는 것처럼, 교회가 새로운 사람을 그렇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막 교회에 발을 딛는 사람을 진정한 가족의 한 일원으로 환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 공동체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제 동맹자이자 조력자로서,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한 사병으로서 입대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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