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세상과 교회를 잇는 나들목 칼럼] 권위와 권위주의

권위와 권위주의

권위주의와 권위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권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 세계를 질서있게 다스리시는 가장 보편적 도구로서, 권위가 멸시되면 질서는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권위를 뜻하는 라틴어 ‘auctoritas’는 동사 ‘augere'(자라게 하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진정한 권위는 한 사람을 보다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선한영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위기를 만난 동족을 위해 왕에게 나아가 탄원하라!” 했을 때, 에스더는 완곡히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모르드개는 왕후 에스더를 질책합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4:13-14).

보통 이정도 말을 들으면, 왠만한 사람들은 상처받았다 할 것입니다. 우리는 상처에 지나치게 예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받을까봐 두려운 나머지, 책망하지 못하는 세대가 되어 버린 듯 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달랐습니다. 그에겐 책망할 수 있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모르드개의 책망은 에스더를 행동하게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모르드개의 이러한 권위는 어디로부터 흘러나온 것일까요?

“그의 삼촌의 하닷사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같이 양육하더라.( 2:7)

첫째, 그의 존재(being)로부터입니다. 모르드개는 고아가 된 에스더를 어려서부터 키웠습니다. 오랜 세월 에스더는 모르드개를 삶으로 경험했습니다. 진정한 존경과 존중이 겹겹이 쌓여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때에 한 마디 말은 태산같은 무게의 영향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둘째, 그의 진실한 사랑으로부터입니다. 모르드개는 정말 에스더를 자신의 딸처럼 키웠습니다. 권위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책망과 충고는 잔소리로밖에는 안들립니다. 그러나 사랑을 알면, 권위에 순복하게 됩니다.

반면 권위주의는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말처럼, “사람 사이의 상하 계층을 설정해 놓고 우열을 가리며, 강자에게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고 약자에게는 공격적 태도를 보이는 성향”을 드러냅니다.

즉 권위의 산물은 ‘선한영향력’인 반면에, 권위주의는 파괴적인 통제와 지배를 낳게 됩니다. 이러한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바로 ‘꼰대’가 아닙니까?

권위를 뜻하는 헬라어 ‘ex-ousia’는 ‘ex'(~로부터)와 ousia'(존재)의 합성어입니다. 권위는 한 사람이 위치한 자리 혹은 직(職)이  아닌 존재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없신 여김을 받지 말라.( 2:15).

바울은 권위로 책망하라고 합니다.

모르드개는 ‘권위주의’가 아닌 존재와 사랑의 기초 위에 세워진 ‘권위’로 책망했고, 에스더는 그 권위 아래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옳은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나에겐 책망할 수 있는 권위가 있는가? 입이 아닌 삶으로 증명되는 존재의 묵직함과 사랑의 진실함이 내게는 있는가?”

단지 편안하고 좋은 관계가 아니라, 옳은 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합니다.

– Fullerton 나들목비전교회 권도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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