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박창수 목사의 희년 이야기]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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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나도 살면서 억울하게 인신공격을 당하고 매장당한 적이 몇 번 있다. 몇 해 전에도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첫날은 너무 힘들어서 지옥과 같았다. 분노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다음날 병원 중환자실에 가서 사경 중에 있던 한 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그 가족을 위로한 후 돌아오는 지하철 열차 안에서도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그날 아침 대도(代禱)를 드릴 때 암송한 빌립보서 2장 5-11절의 ‘그리스도 찬가’가 떠올랐다.

이 말씀은 20여 년 전인 1999년 봄에 내가 예수원에서 3개월 동안 지원훈련을 받을 때, 점심 대도를 인도하던 한 형제님이 삼종(三鐘)의 은은한 종소리와 더불어 읽은 묵상 본문이었는데, 묵상할수록 그 뜻이 깊어서 결국 암송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빌립보서 2장의 ‘그리스도 찬가’가 그 지하철 열차 안에서 떠오르며, 내마음의 눈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바로 그 때 섬광처럼 다섯 가지가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첫째, 예수님도 나처럼 억울하게 죄인으로 매도당해 죽임을 당하셨구나.

둘째,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그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지. 그럼 나도 나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킨 사람들을 위해 그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죄 없다, 의롭다 하시고 죽음에서 부활시키셨지. 그처럼 나도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든 아니면 죽은 후에든 “너는 죄 없다, 의롭다” 하시고 나의 짓밟힌 명예를 다시 살리시면 그것으로 족하다.

넷째, 나를 부당하게 인신공격하는 데 동참한 그 분들처럼 나도 그렇게 다른 사람을 인신공격해서 그 사람을 좌절시킨 적은 없는가? 이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다섯째, 나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만날 때, 이제 내가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그 심정을 알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해 주고 조언해 줄 수 있겠다. 이 생각들은 지하철에서 그리스도 찬가를 묵상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아주 짧은 시간에 든 생각들이었는데, 그 순간 하늘의 평화와 기쁨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복잡한 지하철 열차 안에서, 내 마음은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순식간에 변화되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십자가의 진리가 전에는 머리로 이해되었다면 이제는 가슴으로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 십자가의 도를 가슴으로 깨달을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나를 억울하게 만든 그 분들이 고맙게까지 생각되었다. “그 분들 덕분에 이제 내가 십자가의 도에 사로잡히게 되었구나.”

그 전날까지 복수의 칼을 휘둘러 그 분들의 거짓을 폭로하여 이제는 거꾸로 그분들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그 대신 짓밟힌 내 명예를 되찾는 일을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이제는 확실히 복수의 칼을 버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자고 마음을 확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그 가운데 유독 집요하게 나를 인신공격한 분에 대해, 그 분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 분이 왜 그토록 나를 공격했을까?”를 생각하면서 내가 그 분에게 잘못한 것들이 무엇인지 성찰했다. 그리고 그 분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 잘못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낱낱이 말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그 분이 그 동안 내게 잘못한 것들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 그 과거의 잘못들뿐만 아니라 그때 나를 인신공격해서 사역의 중요한 계획을 좌절시키고 나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킨 죄까지 모두 내가 이미 그 분을 용서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분은 마지막에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 분은 나에 대한 인신공격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미 나에 대해 유포된 부정적인 말들은 여전히 살아서 돌고 돌아 지금도 나를 괴롭히고 있고 희년 사역을 방해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처럼 말이란 참 무섭다. 사람을 죽이는 말은, 그 말을 한 사람이 나중에 회개한다 하여도, 그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살아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퍼져서 피해자를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죽인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험담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억울하게 고난당할 때일수록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하늘의 위로가 임하여 분노가 사라지고 평화가 넘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원수 사랑의 길로 한 걸음씩 걸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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