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박창수 목사의 희년이야기 비노바 바베와 토지 헌납 운동

[희년 이야기] 비노바 바베와 토지 헌납 운동

비노바 바베와 토지 헌납 운동

비노바 바베(Vinoba Bhave, 1895-1982, 인도)는 간디의 제자이자 동료였다. 감옥 안에서 물레 젓는 간디의 사진은 유명한데, 이 물레 젓기는 영국산 의류에 의해 인도의 전통 의류 산업이 몰락하는 문제의 대안으로 원래 비노바 바베가 처음 시작하여 간디에게 전수해 준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진정 위대한 것은, ‘아쉬람’(공동체)을 세워 몸소 노동하고 실험하면서, 지주들의 사랑에 호소하여 땅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땅을 나눠 주도록 하는, 혁명과 같은 ‘부단’(Bhoodan, 토지 헌납) 운동을 20년간이나 실행했다는 점이다. 

비노바 바베는 지주들에게, 땅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여섯째아들로 생각하고, 소유 토지의 육분의 일을 나눠주라고 호소하였다. 그는 인도 토지의 총면적 3억 에이커의 육분의 일인 5천만 에이커의 자발적 분배를 이상적 목표로 삼았는데, 그에게 감동을 받은 수많은 지주들이 400만 에이커의 땅을 자발적으로 기부하게 만들었다. 

비노바 바베가 부단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하리잔’(불가촉천민)의 토지 문제 때문이었다. 1948년 4월, 그는 난민들의 재정착을 위해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서파키스탄 출신들 가운데에는 하리잔들이 많았다. 그들은 땅을 달라고 요구하였는데, 그에 대해 펀잡 정부는 처음에 수십만 에이커의 땅을 주겠다고 공표하였다가 두 달 후 그것을 번복해 버렸다. 하리잔들은 몹시 낙담하였다. 이 사실을 알고 그는 땅 없는 사람들에게 땅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로 마음속 깊이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도 전역을 맨발로 걸어 다니며 부단 운동을 실행하였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비노바 바베에게 와서 땅을 헌납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는 것이었다. 그의 아내는 신문에서 비노바 바베가 맨발로 걷는 사진 한 장을 보았는데, 그 사진을 보고 그녀는 비노바 바베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그처럼 어렵고 험한 길을 걷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데, 땅 헌납을 거절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의 헌신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어서 자발적으로 땅을 나누어 주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비노바 바베는 만일 땅을 내놓는 지주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선심 쓰듯 생각하면서 헌납하면 안 된다고 말하였다. 그에게 지주의 ‘부단’ 실천은 시혜가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의무였다.

비노바 바베는 자신의 사명이 삼중의 변화를 위한 혁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삼중의 변화란 바로 마음의 변화, 개인 생활 습관의 변화, 그리고 사회구조의 변화였는데, 그는 마음의 변화는 생활 습관의 변화로 이어져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사회 구조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자선은 사회를 일정 정도 유익하게 만들지만, 사회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자선이 불행을 경감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불행의 근원을 깨뜨리지 못한다고 통찰하였다. 

비노바 바베는 애초에 그람단(Gramdan, 마을 헌납)을 주장하였다. 당시에 파키스탄에서 넘어오는 이주민의 ‘침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비노바 바베는 그람단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비노바 바베는 일 년 간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람단이 인간의 사회적 본성들과는 완전히 일치하지만, 인간의 개인적 본성과는 잘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 두 가지 본성을 모두 다 만족시켜 주기 위해 ‘슬라브(쉬운) 그람단’을 제안하였다. 그것은 각 지주가 토지의 이십 분의 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놓고, 모든 땅의 법적 소유권은 마을 공동체에 귀속시키되, 이전의 지주는 원래 가지고 있던 땅의 나머지 이십 분의 십구를 계속 경작하며, 지주 본인의 동의가 없이는 경작권을 박탈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비노바 바베가 주장한 그람단과 슬라브 그람단에는 본질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누구는 좋은 땅을 받고 누구는 나쁜 땅을 받게 되는 문제, 즉 분배받는 토지의 위치와 비옥도에 따른 불평등 분배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만민의 토지평등권 실현이라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비노바 바베에게 아쉬움이 있다. 비노바 바베는 간디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대문호인 레프 톨스토이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였지만, 정작 톨스토이가 그 생의 마지막 사반세기를 바쳐 전파하고자 한 헨리 조지의 ‘지대(地代) 공유제’는 간과하였다. 톨스토이는 소설 『부활』에서 주인공 네흘류도프가 땅을 농민에게 나눠주는 장면에서 헨리 조지의 대안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였다. 그것은 바로 좋은 땅을 받는 사람은 그 만큼 많은 지대(地代, 토지 사용료)를 마을 공동체에 공동 기금으로 내고, 나쁜 땅을 받는 사람은 그 만큼 적은 지대를 공동 기금으로 내서, 그렇게 모아진 지대 기금을 가지고 마을의 공공 비용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나쁜 땅을 받든 좋은 땅을 받든 토지 분배에서 오는 손익이 사라지게 되어 모든 사람들이 공정하게 생각하고 동의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의 합의가 가능하고, 또 지대를 마을 공동체가 공유하기 때문에 토지평등권 원칙을 지킬 수 있으며, 각 주민은 공동기금으로 납부해야 할 지대를 제외하고 자기가 생산한 만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이 향상된다. 요컨대 비노바 바베의 그람단과 슬라브 그람단이 갖는 문제점을 헨리 조지의 지대 공유제가 명쾌하게 해결하는 것이다.

spot_img

최신 뉴스

인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