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년 이야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roasted turkey bread and cinnamon rolls on the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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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는 희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내게’나 ‘내 가족에게’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기를 구하는 공동체 기도인데, 이 공동체는 바로 ‘만나 공동체’, ‘희년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기도의 배경이 구약의 만나 사건과 희년법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 기도는 ‘만나 공동체’의 기도이다. 하나님이 출애굽 이스라엘 민족에게 날마다 ‘일용할 만나’를 내려주신 것처럼(출 16:4),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이다. 그런데 이 만나 공동체는 하나님이 광야에서 내려주신 만나를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출 16:18) 거둔 ‘균등 분배’의 공동체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 기도를 드리는 제자 공동체는 그 안에 있는 가난한 형제자매가 일용할 양식이 없어 고통당하는 것을 알게 될 때 반드시 그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제자 공동체는 이 주기도문을 드릴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믿음은 야고보의 비판처럼 이미 죽은 것이다(약 2:15-17). 죽은 믿음으로 어찌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이 기도는 ‘희년 공동체’의 기도이다. 만나 공동체와 희년 공동체는 서로 일맥상통한다. 출애굽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만나 공동체를 이룬 것처럼, 약속의 땅에서는 희년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광야에서는 아직 토지를 기업으로 받지 못해 농사를 지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만나를 내려주셨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는 토지를 기업으로 받게 되어 농사를 지을 수 있으므로, 하나님은 만나를 주시는 대신 희년을 제정하여 주셨다. 가난 때문에 토지를 잃고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 희년에 그 토지와 자유를 모두 되찾게 하심으로써, 출애굽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희년 공동체를 이루어 자기 기업인 토지에서 농사를 지어 일용할 양식을 먹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희년 공동체 이스라엘을 온 세계의 모든 민족을 위한 “제사장 나라”로 삼아(출 19:5-6), 열방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신 4:8) 이스라엘을 본받아 온 세계가 희년 공동체로 변혁되기를 바라셨다. 

따라서 이 기도를 드리는 제자 공동체는 그 안의 가난한 형제자매들뿐만 아니라 세속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이 대토지소유제와 임금노예제가 보편화된 반(反)희년 체제 아래서 토지와 자유를 잃고 비참한 빈곤 가운데 일용할 양식이 없어 고통당할 때, 반드시 사회를 개혁하여 그 반(反)희년 체제를 혁파하고 토지의 평등권과 노동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희년 체제를 수립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일하여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하신 예수님의 말씀(눅 6:35-36)을 기억하고, 세속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사회 개혁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는 희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구하는 공동체 기도인데, 이 공동체는 바로 ‘만나 공동체’, ‘희년 공동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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