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년 개혁자가 겸비해야 할 두 가지(1)
예수님이 우셨다(눅 19:41).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이 보시고 우신 대상은 예루살렘이었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 첫째,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은 자들의 성이다(눅 19:11, 27). 둘째,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파송하신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의 성이다(눅 13:34-35). 셋째,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죽일 자들의 성이다(눅 18:31-33). 넷째,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할 성이다(눅 21:12, 행 8:1). 그래서 예루살렘 파괴는 하나님의 징벌이다(눅 21:20-22).
곧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왕이 되는 것을 거부한 악인들의 성이다. 또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파송하신 예언자들을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일 악인들의 성이다. 게다가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박해할 악인들의 성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파괴될 수밖에 없는 성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악한 예루살렘을 위해 우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선인들을 위해 우신 것이 아니요, 불순종하는 악인들을 위해 우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눈물에는 지극한 사랑이 있다. 악인들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원수들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예수님은 이 마음을 끝까지 품으셨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스데반도 자기를 돌로 쳐서 죽이는 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행 7:60,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바로 이것이 희년 교회 개혁과 희년 사회 개혁의 길을 걷는 희년 개혁자가 배워야 할 자세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만유의 왕으로 공식 취임하시고, 우리를 위해 오순절에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신다. 성령님은 우리의 존재와 소유를 바꾸어 주신다. 성령님에 의해 변화된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변화된 우리의 소유는 하나님의 나라이다(롬 8:14-17).
성령님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성령님 안에서 우리 희년 개혁자들이 희년 교회 개혁과 희년 사회 개혁의 길을 걷는 가운데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곧 하나님의 자녀로서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다(롬 8:18).
이처럼 우리의 존재와 소유를 바꾸어 주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도 바꾸어 주신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셔서, 예수님처럼 악인들까지도 사랑하며 그 악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신다. 불의한 교회와 사회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주신다. 불의한 교회와 사회를 위해 흘리는 눈물에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데, 그 사랑은 성령님이 그리스도인의 성품에 맺어 주시는 열매이다. 성령님의 열매 아홉 가지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사랑이다(갈 5:22).
혹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약해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으리라는 소망도 희미해진 사람이 있는가?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기도하자. 또 혹시 불의한 교회와 사회를 보면서, 분노와 냉소만 남고 눈물이 마른 사람이 있는가?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기도하자. 성령님은 기쁘게 오셔서 우리 내면에 다시 충만하게 임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