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년의 예언자, 이사야(10)
사 58장 본문에서 이와 같은 희년 실천을 명하신 분은 누구인가?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다. 이 본문의 마지막은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58:14)로 마친다. 여기서 “여호와의 입”(피 아도나이)은 하나님을 사람에 비유하는 신인동형론적 표현이 아니라, 문맥상 이 사 58장 본문과 더불어 희년 연관 본문인 사 61장에서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령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는 은유이다. 왜냐하면 이 본문에서 “여호와의 입”은 “여호와”와 구별되면서도 하나님이신 분으로 나타나기 때문인데, 이를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사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라는 말씀 가운데 ‘나 여호와’에서 ‘나’는 개역개정 성경이 히브리어 본문에 없는데 임의로 추가한 것이다. 이 성구의 주절에 있는 주어와 동사는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이다. 히브리어 본문대로 번역하면 “네가 부를 때에는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라고 그가 말씀하시리라”인 것이다.
사 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라는 말씀 역시 히브리어 본문은 3인칭 주어와 동사로 된 문장이므로,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높임말을 사용하여 “여호와께서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시리니”가 될 것이다.
이 말씀들에서 3인칭으로 표현된 ‘여호와’는 이 말씀들의 화자 곧 ‘나’라는 1인칭으로 표현된 ‘여호와의 입’과 구별된다. 그런데 “내 성일”과 “여호와의 성일”이 같은 뜻으로 평행되어 나타나는 것(사 58:13)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여호와의 입’은 ‘여호와’이시다. 곧 3인칭으로 표현된 ‘여호와’와 구별되면서도 ‘여호와’이신 ‘여호와의 입’은 과연 누구인가?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다. 성부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성자 하나님에게 주셨기 때문에(요 17:11,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 성자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성부 하나님과 공유하시면서, 성부 하나님이신 ‘여호와’와 구별되는 ‘여호와의 입’으로 표기된 것이다. 이사야서에서 여호와의 입은 이 본문 외에도 세 번 더 나온다.
먼저 사 1:18-20과 사 40:5에서 ‘여호와의 입’은 ‘여호와’와 동일하신 분이지만(사 1:18-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시면서 “내 영광”이라고 하지 않고 “여호와의 영광”이라고 표현하신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사 40:5) ‘여호와’(성부 하나님)와 구별되는 분이시다. 따라서 ‘여호와의 입’은 ‘여호와’이시면서 ‘여호와’(성부 하나님)와 구별되시는 분 곧 성자 하나님이다.
다음으로 사 62:1-4에서 성자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입’은 예루살렘에게 ‘헵시바’와 ‘뿔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신다. 그런데 이는 성자 하나님이신 ‘전능의 하나님’이 아브람과 사래와 야곱에게 각각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신 것과 같다.
요컨대 이사야서에서 ‘여호와의 입’(피 아도나이)은 모두 4회 나오는데, 그 가운데 최소한 사 58장 본문은 문맥상 ‘성자 하나님’이 명확하고, 다른 세 본문들도 ‘성자 하나님’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 58장 본문에서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이라고 말씀하시며 희년 실천을 명하신 분은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다. 성자 하나님은 희년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십자가의 대속적인 고난과 죽음 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왕으로 좌정하시고 온 세계를 통치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게 희년 정신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희년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종하여 희년 정신을 실천하면서 온 세계에 희년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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