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t_img
Home 칼럼 박창수 목사의 희년이야기 희년의 예언자, 예레미야(8)

[칼럼: 희년 이야기] 희년의 예언자, 예레미야(8)

spiral green plants
Photo by Steven Hylands on Pexels.com

[희년 이야기] 희년의 예언자, 예레미야(8)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파괴하고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해방되었다가 다시 노비로 억류된 히브리 노비들에게 다시 자유를 되찾아 주시고 그들에게 토지도 분배해 주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대언케 하신 심판의 말씀처럼, 히브리 노비들을 해방하였다가 다시 노비로 끌고 간 유다의 권력자들을 바빌로니아 군대의 칼로 죽이셨다. 렘 39:6, “바벨론의 왕이 립나에서…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하나님은 이처럼 히브리 노비들을 해방하였다가 다시 노비로 삼은 노비의 주인들을 죽이심으로써 히브리 노비들을 다시 해방하신 것이다. 또한 남은 백성은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로 끌려가게 하셨다. 렘 39:9,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그러나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포도원과 밭을 받게 하셨다. 예레미야 39:10,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여기에서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은 바로 히브리 노비들을 비롯하여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아무 소유도 없는 극한 가난 때문에 노비가 될 수밖에 없었거나 노비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드디어 자유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토지도 분배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유다의 권력자들과 하나님의 행동은 정반대이다. 유다의 권력자들은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토지와 자유를 빼앗음으로써 희년을 거역하지만, 하나님은 정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토지와 자유를 되찾아주심으로써 희년을 선포하신다. 유다의 권력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채 가난한 히브리인들로부터 토지를 빼앗고 자유도 빼앗아 그들을 노비로 삼는다. 이에 반해, 하나님은 유다 왕국을 멸망시켜 유다의 권력자들을 죽이심으로써 히브리 노비들을 해방하실 뿐만 아니라, 히브리 노비들을 비롯하여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에게 토지를 나눠 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 가운데 첫 번째는 오직 공의를 행하는 것이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나라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공의를 지속적으로 행하여야 한다. 암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여기서, ‘마르지 않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인 ‘에탄’을 직역하면 ‘항상 흐르는’(ever-flowing)이다. 그래서 공의를 항상 흐르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는 뜻이다. 비가 내리는 우기에는 강물이 흐르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에는 강물이 말라버리는 와디처럼 공의를 행하다가 말다가 해서는 안 되고, 항상 흐르는 강 같이 공의를 단 한순간도 중단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항상 실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잠시라도 공의가 끊어지면, 가난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땅과 집을 빼앗기고 노예 상태로 전락하거나 심지어는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시야 개혁으로 공의가 잠시 실행되었으나, 주전 609년에 그가 죽은 후 공의가 실행되지 않고 중단된 지 22년 만인 주전 587년에 유다는 멸망했다. 

이처럼 공의가 끊어지고 불의가 실행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게 되면 그 사회는 매우 위험해지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하루 속히 공의를 항상 흐르는 강 같이 흐르게 하여, 가난한 사람들도 희망을 품고 살아갈 만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나라가 멸망할 수 있다. 렘 1: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을 철저하게 적용한다면, 이런 불의한 나라는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려야 한다. 그리고 다시 정의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심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망국이 너무나 큰 아픔과 슬픔이라는 것을 지난 일제강점기를 통해 뼈아프게 경험했다. 그리고 전쟁이 참혹한 고통이라는 것을 지난 한국전쟁을 통해 처절하게 겪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하여, 이 나라가 망국이나 전쟁의 재난을 겪지 않고, 평강 가운데 공의에 이르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공의 실천의 핵심은 희년 실천이다. 렘 34장의 교훈처럼, 희년 실천은 구국의 길이었고, 반대로 희년 철회는 망국의 길이었다. 만약 희년 개혁을 시도하다가 철회해 버리면, 차라리 아예 아니함만 못하게 될 정도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아, 그것으로 우리나라가 망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는 우리 시대에 노예와 다름없는 상태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중단 없는 개혁을 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희년을 실천하는 공의로운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