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박창수 목사의 희년이야기칼럼 연재 시작합니다. <박창수 목사의 희년 이야기>_짐을 서로 지라

칼럼 연재 시작합니다. <박창수 목사의 희년 이야기>_짐을 서로 지라

칼럼 연재 시작합니다. 

금주부터 <박창수 목사의 희년 이야기> 칼럼이 매주 연재됩니다. 박창수 목사는 기독교학 박사이며 주거권기독연대 공동대표, 희년사회 목회신학위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박창수 목사는 본 칼럼을 통해 “성경과 역사, 그리고 제 인생 경험을 통해 희년(성경에 나오는 규정으로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마다 돌아오는 해. 이 해가 되면 유대인들은 유일신 야훼가 가나안 땅에서 나누어 준 자기 가족의 땅으로 돌아가고 땅은 쉬게 한다. 유대인들은 분배받은 땅을 기업(基業, Inheritance)이라고 하여 영구히 팔지 못하도록 하였다)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라고 전했다.

짐을 서로 지라_박창수 목사

30년 전의 일인데, 가끔씩 생각난다. 군대에 입대하여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1월에 혹한기 훈련이 있었다. 부대에서 나는 81mm 박격포에 배속되었는데, 행군이 문제였다. 당시 부대에 있던 구형 81mm 박격포는 그 무게가 60kg으로 포열과 포판과 포다리로 삼단 분해되는데 그 각각의 무게는 20kg이었다. 그래서 완전군장 위에 20kg 되는 쇳덩이를 올려놓고 장거리를 행군해야 했다. 

군장만 지고 행군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거기에 쇳덩이까지 짊어지고 행군해야 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특히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는 너무나 힘들어서 주기도문을 마음속으로 한 구절씩 외면서 이를 악물고 올라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한 걸음을 떼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에 또 한 걸음을 떼고 하면서 올라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도 부대를 출발하여 행군해갈 때는 체력이 남아 있어서 그나마 괜찮았는데, 야외에서 숙영을 하면서 혹한기 훈련을 모두 마치고 부대로 복귀할 때는 며칠 동안 강추위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몸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신병으로 계급이 가장 낮았기 때문에, 중도 포기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고, 무조건 행군을 완료해야 했다.

행군하는 동안 군장과 쇳덩이의 무게가 양 어깨의 신경을 압박해서 한두 시간 후부터 양 팔의 감각이 사라질 정도였다. 그렇게 일분일초가 고통의 시간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부대를 몇 킬로미터 남겨 두지 않은 마지막 구간이었다. 그 때는 단 한 걸음을 떼기도 힘든 죽음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부대의 다른 병과에 있는 한 선임병이 그 무거운 쇳덩이를 달라고 하더니 자신의 군장 위에 대신 짊어졌다. 그리고 한참을 행군한 후에 부대 정문을 몇 백 미터를 남겨 놓고 내게 다시 그 쇳덩이를 돌려주어 내가 그것을 지고 부대 정문을 통과하게 해 주었다. 나는 그가 나를 위해 대신 그 무거운 쇳덩이를 지고 행군해 준 덕분에 마지막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결국 행군을 완료할 수 있었다. 

세면장에서 전투화를 벗는데, 양쪽 전투화의 바닥과 양말에 모두 피가 가득해서 깜짝 놀랐다. 새 전투화라 길이 잘 들지 않은 데다 숙영지에서 철수할 때 막사를 철거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전투화 끈을 제대로 묶지 못해 양 발의 뒤꿈치가 모두 까여서 찢어졌기 때문이다. 행군하면서 어느 순간 발뒤꿈치가 따끔거리는 게 느껴지기는 했는데, 그 후 행군하는 동안 군장과 쇳덩이가 양 어깨를 계속해서 누르는 고통이 너무나 커서 발뒤꿈치가 까이고 찢어지는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몸이나 삶에 어떤 고통이 있을 때, 그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 다른 부분에서 지속되면 그 작은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뒤꿈치가 까이고 찢어져 피가 흐르는 데도 그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행군하는 동안 군장과 쇳덩이가 내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이 훨씬 더 컸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위해 마지막 구간에서 그 쇳덩이를 대신 짊어져 준 그 선임병 덕분에 나는 무사히 행군을 완료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그가 그렇게 대신 짊어져 주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마지막 구간에서 낙오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낙오했다면, 신병이 군기가 빠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나 때문에 부대원 전체가 간부들에게 욕을 먹었을 것이고 특히 상병 이하의 부대원들은 점호 시간에 온갖 가혹행위를 당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선임병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떠올릴 때 성경의 이 말씀도 함께 떠오른다. 

갈라디아서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짐을 서로 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그 선임병을 통해 생생하게 배웠다. 그는 내가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행군하는 동안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보고 내게서 그 쇳덩이를 벗겨내어 자신이 대신 짊어져 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희년 정신의 정수인 근족(近族)의 대속정신이다. 어떤 사람이 가난 때문에 땅도 잃고 자유도 잃고 부잣집에 머슴으로 팔려가게 되면, 그 가까운 친족이 자기 손해를 무릅쓰는 자기희생을 통해 대신 값을 치르고 그 가난한 사람에게 땅도 되찾아주어야 하고(땅 무르기), 자유도 되찾아주어야 한다(속량). 이것이 근족의 땅 무르기와 속량 제도인데(레위기 25장),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예표이다.

희년(제50년)에는 ‘토지’와 ‘자유’를 회복하게 되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그 목숨으로 대신 값을 치르시고(십자가 죽음), 우리가 잃어버린 ‘토지’(하나님 나라 기업)와 ‘자유’(마귀의 종노릇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되찾아주심으로써 우리에게 희년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 주셨다. 따라서 우리도 그 십자가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거운 짐을 진 형제자매를 위해 그 짐을 조금이라도 져 주어야 마땅한 것이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이 말씀은 바로 무거운 짐을 진 형제자매를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희년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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