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라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본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거룩을 파괴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본받는 자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생활 방식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버리고 감사의 말을 하는 삶입니다. 그 이유는 성적 타락과 관련된 죄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을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엡 5: 3) 그러나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심은 그 이름조차도 여러분들의 [입에] 담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올바릅니다. (4) 음란한 말과 어리석은 말과 거친 농담은 여러분에게 올바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의 [말을 하십시오.] (5)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이것을 확실하게 알아 두십시오.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심을 부리는 자는 우상 숭배자여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합니다. (6) 여러분들은 아무에게도 헛된 말에 속지 마십시오. 이러한 일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합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들의 [말]에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Translated by YG Kim)

바울은 하나님을 본받는 자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생활 윤리에서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심은 성도들의 입에서조차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엡 5:3).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심은 서로 연결이 되어져 있습니다. 먼저 ‘음행’(porneia: fornication)은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서 이루어지는 성적 타락으로, 매춘(prostitution)이나 잘못된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적 타락의 죄악입니다. 바울이 음행의 문제를 다루면서 언급하고 있는 ‘온갖 더러운 것’(akatharsia pasa: impurity of any kind)은 단순히 깨끗함을 잃어버린 상태로서의 더러움(uncleanness)을 의미(마 23:27)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타락과 관련된 더러움을 의미합니다(롬 1:24; 고후 12:31; 갈 5:19; 골 3:5). 그러므로 바울은 ‘더러움’이라는 단어를 성적 타락의 문맥에서 사용을 하여서, ‘더러움’이란 성적 대상이 되어지는 상대와 함께 서로가 자신들의 몸을 욕되게(dishonoring)하는 행동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은 이성과의 관계(heterosexual relationship)가 아니라 동성애(homosexuality)와 연결이 되어집니다(롬 1:26-27). 또한 일반적으로 ‘탐심’(pleonexia: greediness)이란 무엇인가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지만, 탐심이라는 단어가 음행과 함께 사용이 되어질 때에는 다른 사람의 몸을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서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골 3:5; 벧후 2:14).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거룩을 본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의 삶 속에서 성적 타락과 관련된 내용을 입에 담지 않지 않도록 성도들의 생각과 행동을 주의하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을 지키는 올바른 행동이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성도들의 생활 윤리 가운데에서 언어의 습관이 어떠해야 한다고 권면합니까? 바울은 “음란한 말과 어리석은 말과 거친 농담”을 버리고 감사의 말을 하라고 권면합니다(엡 5:4). 그러면 “음란한 말과 어리석은 말과 거친 농담”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음란의 말’(aischrotes: obscenity)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사회적 그리고 도덕적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언어와 관련해서 사용이 되어질 때에 그 의미는 수치스러운 말(disgraceful speech)로 3절의 성적 타락의 내용과 연결해서 해석해 보면 음란한 말(obscenity)을 의미합니다. ‘어리석은 말’(morologia: foolish talk)의 헬라어 명사는 ‘바보’(moros)라는 단어와 ‘말’(logos)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말’이란 추측에 근거한 의미 없는 말이나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기를 방해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에베소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영지주의(Gnosticism)의 입장에서 ‘어리석은 말’을 생각해 보면, 육체를 물질세계의 한 부분으로 종교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영지주의자들이 육체의 쾌락과 도덕적 방종의 삶을 추구하면서 언급하는 성적 타락의 말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친 농담’(eutrapelia: sarcastic ridicule)이란 음행을 함축하는 언어로 현대적인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성희롱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이러한 세 가지 언어의 습관을 버리고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라고 언급합니까? 바로 감사(eucharistia: thanksgiving)의 언어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일상의 언어 습관에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자기 중심적인 죄의 본성에서 나오는 언어의 습관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감사는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은 성도들이 성적 타락의 언어들을 버리는 방법입니다.

바울이 음행과 관련하여서 이렇게 강조해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권면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성적으로 타락한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엡 5:5).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음행하는 자나, 성적 타락으로 동성애에 빠진 자나, 성적 타락의 탐심에 빠진 자를 ‘우상 숭배자’(eidololatres: idolater)와 동일시 합니다(엡 5:5; 고전 6:9). 그 이유를 로마서 1장 25-26절의 말씀에 근거해서 생각해 보면, 성적 타락에 빠져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서 창조주를 대신해서 피조물을 숭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성적 타락에 빠져 있는 자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고, 그들은 동성애의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적 타락에 빠져 있는 자들을 우상 숭배자로 언급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논지에서 바울은 더 이상 헛된 말에 속지 말라고 언급합니다(엡 5:6). ‘헛된’(kenos) 이라는 형용사는 ‘진리가 없는’(without truth)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를 찾은 성도들이 ‘교묘한 말’(plausible argument; 골 2:4)이나 ‘헛된 말’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인 성도들은 옛 사람의 삶의 태도를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뿌리를 다시 내려 새 사람을 입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헛된 말’에 속임을 당하면 그 결과 그들은 ‘불순종의 아들’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 서신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1)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 자들의 특징으로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과(롬 1:18a), (2)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과(롬 1:18b), (3) 마음의 완악함으로 인하여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롬 2:5), (4)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롬 5:9), (5) 음행과 관련된 죄를 짓는 사람들(엡 5:5-6; 골 3:5-6)에게 임합니다.

결과적으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음행하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함께 하는 자’라는 헬라어 명사는 ‘함께 살다’(syzao: to live with)라는 동사와 ‘공유’(metochos: sharing)라는 명사가 결합되어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적으로 타락한 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자’(partner)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나누기>

  1.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심’은 성적 타락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성적 타락의 말들을 입에서조차 나오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우리들은 언어 생활 가운데에서 성적 타락과 관련된 은밀하게 짓는 성적 타락의 언어들이 있지 않습니까?
  1.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더러움’이란 성적 타락의 결과로서 동성애(homosexuality: 롬 1:26-27)와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동성애는 성적 타락에 빠진 자들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서 이성적인 관계(heterosexual relationship)를 파괴한 행동입니다. 우리들은 동성애와 관련해서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성적 타락한 자들이 잘못된 열정으로 동성애에 빠지게 되었다고 하면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동성애자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
  1. 성도들이 음란한 말, 수치스러운 말, 어리석은 말들을 일상의 삶 속에서 가지고 있다고 하면, 가장 먼저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기 위해서 이러한 말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말들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죄를 짓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을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말들을 버리는 방법으로 감사의 말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 감사의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일상의 삶을 감사할 수 있습니까?
  1. 우리들은 십계명의 두 번째 개명으로 우상 숭배와 관련된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적으로 타락한 자들이 결과적으로 우상 숭배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지는 성적 타락의 모습에서 벗어나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작은 실천들은 무엇입니까?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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