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용서함의 권세를 가지고 계신 예수님
요한 마가는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쳐 주신 사건(막 1:40-45)을 통하여 메시아의 비밀(Messianic Secret)을 감추고 있지만, 예수님과 종교 지도자들과의 대화로 이어지는 다섯개의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가는 예수님의 기독론(Christology)에 중점을 두어서 다섯개의 사건을 교차대구법(Chiastic Structure)을 통하여 배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마가복음 2:1-3:6절의 말씀을 읽어 갈 때에 다섯개의 사건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사건을 통하여 드러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2:1-12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paralytikos: paralytic)의 죄를 용서해 주시면서 그를 고쳐 주시는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특별히 마가는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는 사건을 처음(막 2:1-5)과 끝(막 2:10b-12)에 배치하고 그 중앙에 예수님과 서기관들과의 대화(막 2:6-10a)를 배치하는 샌드위치 구조(sandwich structure)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시는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 그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예수님과 서기관들의 대화를 통하여 예수님의 기독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들은 마가복음 2장 1-12절의 내용을 읽을 때에 중풍병자와 그를 돕는 친구들의 믿음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죄사함의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고 본문을 읽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집(아마도 이 집은 베드로의 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막 1:29)에 다시 돌아오셨을 때(막 2:1), 이미 예수님의 명성은 갈릴리 지역 전역에 퍼져 있었습니다(막 1:32-34, 37, 45).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집으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 모여들었고, 그 결과 집 문 앞에조차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네 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막 2:1) 며칠이 지난 후에 그(예수)가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을 때에 그(예수)가 집에 계신다는 사실이 들렸습니다. (2)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그 결과 문 앞에 조차도 더 이상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예수)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 그 때에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들어 그(예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4) 그리고 무리 때문에 그(예수)에게 데리고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예수)가 계신 곳의 지붕을 걷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구멍을 뚫은 후에 중풍병자가 누워있는 침상을 내렸습니다.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너의 죄들이 용서함을 받았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무리들에게 말씀(logos: word)을 가르치셨습니다(막 2:2b). 우리들은 먼저 ‘로고스’(logos)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로고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판단을 인도하는 기준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이 되었는데, 이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이 되어질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복음’(euangelion: gospel)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마태와 누가와 달리 예수님께서 집에서 ‘로고스’로서 ‘복음’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언급하여서 복음의 능력이 어떻게 중풍병자에게 나타나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로고스’를 선포하셨을 때에 중풍병자와 네 명의 친구들은 예수님께 나아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절망이 그들의 마음에 다가올 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친구의 침상을 예수님께 내렸습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 생각하게 되지만, 예수님 당시의 갈릴리 집들의 구조를 생각해 보면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갈릴리 집들은 지붕에 올라가는 계단이나 사다리가 외부에 있었으므로 네 명의 친구들은 중풍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친구와 함께 지붕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지붕은 진흙과 억새를 이어 만들었기에 지붕에 구멍을 내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극복해 낸 네 명의 친구들과 중풍병자의 믿음(pistis: faith)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아들아, 너의 죄들이 용서함을 받았다”(막 2:5b)라고 선포하십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대신해서 죄 용서함을 선포하시는 것인지, 또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죄 용서함의 권세를 가지고 계신지에 관한 질문 때문입니다.
먼저 문법적으로 생각해 보면, “너의 죄들이 용서함을 받았다”(Your sins are forgiven)는 표현은 수동태(aphientai: are forgiven)로 표현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일반적인 신적 수동태(divine passive)의 의미로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하여 중풍병자에게 나타났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말씀하신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막 2:10)라는 메시지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신 내용으로 인하여 서기관들의 마음은 불편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는 서기관들의 마음을 아시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메시아의 비밀에 관한 예수님의 기독론에 관하여 스스로 말씀하십니다(막 2:6-10a).
(막 2:6) 서기관들 중에 몇 명이 그들의 마음 안에서 생각하면서 거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7) ‘왜 이 사람이 이와 같이 말하는가? 신성모독이구나! 하나님 한 분 이외에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8) 예수께서 즉시 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아시고 자신의 영으로 아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너희들의 마음 속에서 이러한 생각들을 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너의 죄들이 용서함을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과 또는 ‘일어나 너의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쉬우냐? (10a)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너희가 알도록 하겠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너의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의 죄들이 용서함을 받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2:5, 9). 그런데 중풍병자를 향한 예수님의 죄 용서함의 선포는 서기관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의 1세기에서는 죄와 병의 문제가 밀접하게 연결되어져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시기 위해서 죄 용서함을 선포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세기 당시에 죄의 문제에 관하여 금기어가 있었는데, 죄 용서함을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너의 죄들이 용서함을 받았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서기관들의 시선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신성을 모독하는 표현이었습니다(막 2:7).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이 본문을 이해해야 합니까?
우리들이 마가복음 5장 5절에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을 신적 수동태로 해석을 한다면, 마가복음 5장 10절의 말씀에서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단지 하나님의 죄 용서하심의 능력을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에 R. T. France의 마가복음 주석(NIGTC)을 보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죄 용서함을 선포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 용서함의 권세를 가지고 중풍병자에서 선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France는 예수님께서 “너의 죄들이 용서함을 받았다”라고 선포하셨을 때에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수행적 발화”(performative utterance)로 이해하였고(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2002, 125),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자’(the Son of Man)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선포를 통하여 자신의 권위를 말씀하셨다고 설명합니다. (See also James D. G. Dunn, Jesus Paul and the Law, 1990, 27). 이러한 표현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지었을 때에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죄 용서함을 선포하는 내용과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삼하 12:13).
특별히 우리들은 메시아의 비밀과 관련해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자’(the Son of Man)라고 지칭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생각해 본 것처럼 마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 (막 1:1; 3:11; 5:7; 15:39),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막 1:24), 또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막 5:7)이라고 부르기 보다 ‘사람의 아들’로서 ‘인자’라는 호칭을 통하여 메시아의 비밀을 지키고자 합니다(막 2:10, 28). 그리고 ‘인자’라는 단어는 마가복음 8장 31절 이후부터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과 관련하여서 사용하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막 8:31, 38; 9:9, 12, 31; 10:33, 45; 13:26, 29; 14:21, 41, 62).
결과적으로 마가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사용하고 있는 ‘인자’라는 단어를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과 연결해서 이해하고 있고, 인자가 죄 용서함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중풍병자는 걸어서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막 2:10b) 그(예수)가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너의 침상을 들어라. 그리고 너의 집으로 가라” (12) 그리고 그가 일어나서 즉시 침상을 들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하기를 “이러한 일을 우리가 전혀 본적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마가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집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사건을 샌드위치 구조로 배치하여서 예수님과 서기관들의 대화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죄 용서함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메시아의 비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함께 나누기>
- 우리들은 마가복음 2장 1-12절의 말씀에서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았다는 사건을 읽을 때 예수님께서 죄 용서함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보다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의 믿음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 우리들은 마가복음 강해에서 ‘신적 수동태’(divine passive)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2장 5절에서 말씀하신 “너의 죄들이 용서함을 받았다”는 표현은 신적 수동태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막 2:10)는 말씀과 대치됩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이 본문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의 죄 용서함을 선포하였을 때에 그들의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 마가복음에서’인자’가 죄 용서함과 연결되어서 사용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