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짓지 말라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짓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떻게 귀신을 내쫓는지 비유(막 3:23-27)로 말씀하시고 난 후에 하나님께 용서 받을 수 있는 죄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막 3: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의 아들들에게는 [그들의] 모든 죄들과 어떤 비방의 말로 모독하든지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이 죄는] 영원한 죄이다.” (30) 왜냐하면 그들이 “그(예수)가 더러운 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에서 처음으로 ‘진실로’(amen: truly)라는 부사를 사용해서 율법학자들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진실로’라는 단어는 유대교의 문헌에서 논지의 결론을 표현할 때 사용이 되는 단어인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논지의 시작점에서 이 부사를 사용해서 예수님의 말씀의 중요성(importance)과 진정성(authenticity)을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피조물로서 사람들의 아들들에게는 용서 받을 수 있는 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용서 받을 수 있는 죄는 피조물인 인간이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행동으로 짓는 죄와 상대를 향하여 언어로 짓는 죄입니다.

먼저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hamartema: sin)의 개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죄로서 ‘하마르티아’(hamartia)는 ‘하마르타네인’(hamartanein)의 동사의 의미를 따라서 정의되어진 것으로, 죄란 ‘과녁에서 빗나간 행동’(to miss the mark)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BC 4세기경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s) 13장에서 언급되어진 ‘하마르티아’의 개념에서 가져온 것으로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죄의 본질적인 의미를 설명하는 데에는 부족합니다. 그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하마르티아’의 개념은 ‘결점’ 또는 ‘과실’의 의미가 강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성경적으로 죄의 개념을 설명해 보아야 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연구지인 ‘Harvard Studies in Classical Philosophy’에 기고한 김호 목사님의 의견을 근거해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하마르티아’의 개념은 ‘결점’ 또는 ‘과실’의 의미보다 ‘정체성의 무지’(Ignorance of identity)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Ho Kim, “ARISTOTLE’S HAMARTIA RECONSIDERED,” HSCP 105 (2010): 33-52).

따라서 ‘하마르티아’의 개념을 ‘정체성의 무지’로 해석할 때에 우리들은 신약 성경에서 언급되어지는 ‘죄’의 개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언약의 백성들이 자신들이 누구이고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정체성을 깨닫지 못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holiness)과 의로움(righteousness)에서 벗어나서 의도적으로 또는 실수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마르테마’ (hamartema)는 각 개인의 행동의 죄(individual act sin)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언급하시는 모독의 죄는 상대를 향한 언어의 죄를 의미합니다. ‘모독’(blasphemia: blasphemy)이라는 헬라어 명사는 ‘말하다’라는 헬라어 동사 ‘페미’(phemi: to say)에 ‘손해’를 의미하는 헬라어 명사 ‘브라메’(blame: harm)가 결합되어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따라서 ‘모독’이란 상대를 향하여 악한 의도로 말해서 그 존재를 부정하거나 상대의 인격을 더럽히는 행동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피조물인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행동의 죄와 언어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두 가지 죄의 목록들과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막 3:2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령을 모독하는 자’(blasphemes against the Holy Spirit)는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언급하실 때 그 대상이 되었던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대적자가 되어서 예수님의 사역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모독하는 죄란 예수님의 사역을 사탄의 사역으로 생각하고, 예수님의 사역에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죄입니다. 이러한 죄는 하나님께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죄(unpardonable sin)라고 예수님께서는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메시지를 통하여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인간이 서로를 향하여 행동과 언어로 죄를 지었을 때 용서해 주시지만, 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은 영원히 용서해 주시지 않습니까?

그 이유를 우리가 생각해 보면,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룩한 영으로서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인정하지 않고 성령의 사역을 거부하는 자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시는 성령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대적하는 자들로 성령을 모독하는 영원한 죄를 짓고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우리들의 삶에 적용해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의 심각성에 관하여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미국의 칼빈 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셨던(1958-1979) 안토니 후크마(Anthony A. Hoekema) 교수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와 관련해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의 특징들을 다섯 가지로 설명합니다. (Anthony A. Hoekema, 류호준 역, 개혁주의 인간론, CLC, 1999, 309-310)

첫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알려진 진리를 의도적으로 배척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와 성령의 사역과 구원의 진리를 알면서도 배척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의도적으로 배척합니다.

넷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기도를 의도적으로 배척합니다.

다섯째, 자신이 이러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모독하는 죄에 관하여 말씀하셨을 때 집 밖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자매들이 와서 예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막 3:31-32).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데려가려는 모습과 대칭을 이룹니다(막 3:20-21).

(막 3:31) 그(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와서 밖에 서서 그(예수)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예수)를 불렀습니다. (32) 무리가 그(예수)의 주변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이 그(예수)에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어머니와 당신의 형제들과 [당신의 누이들이] 밖에서 [당신(예수)]을 찾고 있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는 이유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 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막 3:21b, 30). 마가는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원근법을 이용해서 예수님의 주변에(around) 있는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집 밖에(outside) 있는 예수님의 가족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대칭 구조를 통하여 마가는 자연스럽게 누가 예수님의 참된 형제이고 자매인가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신데(막 3:33-35), 이 내용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과 대칭을 이룹니다(막 3:13-19).

(막 3:33) 그(예수)가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누가 나의 어머니이고, 나의 형제들이냐?” (34)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앉아 있는 자들을 둘러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나의 어머니이고 나의 형제들이다.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나의 형제이고, 누이이고, 어머니이다.” (Translated by YG Kim)

자신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가족 공동체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십니다. 이러한 개념은 예수님께서 부르신 열두 제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과 동시에 참된 교회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가족은 ‘하나님의 뜻’(the will of God)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언급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가복음을 읽어 가면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과(막 1:15),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막 1:18, 20).

<함께 나누기>

  1. 예수님께서는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행동으로 짓는 죄와 언어로 짓는 죄는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행동으로 짓는 죄의 개념으로 ‘하마르테마’(hamartema)의 개념은 무엇이고, 언어로 짓는 죄의 개념으로 ‘브레스페미아’(blasphemia)의 개념은 무엇입니까?
  1. 우리들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1.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왜 용서함을 받을 수 없습니까?
  1. 안토니 후크마 교수의 용서받을 수 없는 다섯 가지 죄의 특징들을 생각해 보고, 우리들의 삶에 적용해 보십시오.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참된 가족은 누구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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