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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마음 속에 있는 악독을 다스리고 사랑을 실천하라

마음 속에 있는 악독을 다스리고 사랑을 실천하라

사도 바울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은 성도들의 네가지 삶의 원칙을 언급하고 나서, 성도들의 삶 속에서 버려야 하는 여섯 가지 악한 모습과 더불어 꼭 가져야 하는 세 가지 특징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악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이러한 여섯 가지 악한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엡 4:31)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소리지르는 것과 비방을 모든 악의와 함께 여러분들에게서 버리십시오. (32) 오히려 서로에게 친절하고,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들을 용서해 주신 것 같이 서로가 용서하십시오. (Translated by YG Kim)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은 성도들이 버려야 하는 첫 번째 항목은 ‘악독’(pikria: bitterness)입니다. 우리가 ‘악독’이라는 명사의 형용사인 ‘pikros’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악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pikros’라는 형용사의 본래적인 의미는 화살(arrow)의 날카로운(sharp) 부분을 의미했지만, 이 단어는 사람의 후각과 관련된 부분에서 날카롭고(sharp) 쓴(bitter) 맛을 표현하는 단어로 굳어져 갔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LXX) 성경에서 마라의 쓴 물을 표현할 때에 맛이 ‘쓴’(mar: bitter)이라는 히브리어 형용사를 ‘pikros’라는 헬라어 형용사로 번역한 것을 그 예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음식의 맛이 쓴 것과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악독과는 어떠한 연결 고리가 있습니까? 헬라 시대의 사람들은 음식의 맛이 쓴 것을 은유적인 표현으로 사람의 마음에 적용시켰습니다. 그래서 ‘pikros’라는 형용사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고 나서 느끼는 극심한 고통을 표현하는 부사(심히 통곡하니라; 마 26:75)로 사용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거절당했을 때에 느끼는 좌절의 감정을 표현할 때에 그 마음 속에서 조절할 수 없는 악을 표현하는 형용사(독한 시기; 약 3:14)로 사용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죄 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특징들 중에 하나로 ‘악독’을 언급합니다(롬 3:14; 엡 4:31). 결과적으로 악독이란 사람의 마음 속에서 상대를 향한 화를 조절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새 사람을 입은 성도가 ‘악독’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악독’이 혀를 통하여 나타나는 죄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악독’이 혀를 통하여 나타나는 특징들을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바로 ‘노함’과 ‘분냄’과 ‘소리지는 것’과 ‘비방’입니다.

먼저 ‘노함’(thymos: wrath)이라고 번역이 되어진 ‘thymos’라는 명사는 행동의 주체의 마음 속에 있는 욕구(desire)나 충동(impulse), 또는 성향(inclination)이 언어를 통하여 열정적으로 표현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의 주체가 하나님인 경우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진노’의 개념으로 사용이 되지만(롬 2:8),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악독과 잘못된 열정이 결합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은 ‘노함’입니다.

또한 ‘분냄’(orge: anger)이라고 번역이 되어진 명사 ‘orge’도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의 성품에서 모두 사용이 가능한 단어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orge’라는 단어는 인간의 잘못된 성품과 관련해서 사용이 된 다섯 번(엡 4:31; 골 3:8; 딤전 2:8; 약 1:19, 20)의 용례를 제외하고 모두 죄악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때에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마음 속에 악과 결합된 ‘분냄’은 어떠한 행동의 결과를 가져옵니까? 마치 가인이 아벨을 향한 분노가 살인을 불러온 것처럼(창 4:5, 8) ‘분냄’은 잘못된 응징(retribution)을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노함’이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악독이 강하게 표현되는 것이라면, ‘분냄’이란 상대를 향한 보복(revenge)의 표현입니다.

바울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악이 노함과 분냄을 통하여 상대에게 보복하는 모습을 ‘소리 지르는 것’과 ‘비방’으로 표현합니다. 악을 마음에 품고 상대를 향하여 ‘소리지르는 것’(krauge: wailing)은 다툼 가운데에서 행동하는 표현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엘리사벳이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는 마리아에게 큰 소리를 외치며 인사하고 복을 비는 모습(눅 1:42)과는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새 사람을 입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버려야 하는 네 번째 특징으로 ‘소리지르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비방’(blasphemia: blasphemy)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신약 성경에서 ‘비방’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사탄의 비방이나(계 13:5; 16:11, 21),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사람들의 비방(딛 2:5)이나, 하나님과 모세를 향한 선동된 사람들의 비방의 모습(행 6:11)으로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용이 되어질 때에는 상대를 폄하하거나, 헐뜯는 언어이며 동시에 비방의 상대가 부재중인 상황 가운데에서 다른 사람에게 상대를 비방하는 언어입니다(막 7:22; 엡 4:21; 골 3:8). 그러므로 바울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악독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언급하면서 동시에 이러한 악한 모습을 버려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결과적으로 바울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악독의 결과로서 모든 ‘악의’(kakia: ill-will, malice)을 버려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악의’란 구성원들을 향한 노함과 분냄과 소리지는 것과 비방을 포함한 모든 악의적 태도나 행동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이러한 여섯 가지 악한 모습을 버렸을 때에 성도가 어떠한 삶의 태도로 교회 공동체를 섬겨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까?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세 가지 삶의 태도는 서로에게 친절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서 서로를 용서하는 삶입니다(엡 4:32).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새 사람을 입은 성도들의 첫 번째 행동은 서로에게 친절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친절한’(chrestos: kind)이라는 헬라어 형용사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좋은’(good)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친절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용서함을 받은 성도들의 삶 속에서 ‘좋은’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은혜를 모르는 자들을 향해서도 친절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눅 6:35).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본 받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새 사람을 입은 성도들의 특징은 서로가 ‘불쌍히 여기는’(eusplanchnos: compassionate) 모습입니다. ‘불쌍히 여기는’이란 형용사는 ‘eu’(good, well)와 ‘splanchnizomai’(to have pity, to feel sympathy)라는 동사가 결합되어서 만들어진 형용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서로를 향하여 ‘불쌍히 여기는’ 행동은 서로가 좋은 관계에서 상대를 향한 동정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새 사람을 입은 성도의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을 용서해 주신 것같이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는 모습입니다. ‘용서하다’(charizomai: to forgive)라는 동사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아무런 대가 없이 은혜를 베푸는 행동입니다(롬 8:32).

둘째, 서로가 용서함으로 서로에게 자비를 베푸는 행동입니다(엡 4:32b).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은 성도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악독을 제거해서 노함과 분냄과 소리지르는 것과 비방과 모든 악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로 서로에게 친절히 대하고,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는 모습은 새 사람을 입은 믿음의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함께 나누기>

  1. 우리들은 쓴 맛을 나타내는 ‘pikros’가 사람의 내면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화를 조절하지 못한 악독의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은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쓴 뿌리”(히 12:15)가 있지 않습니까?
  1. 가정과 교회 공동체와 사회에서 잘못된 열정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악독과 잘못된 열정의 만남으로 ‘노함’이 있지는 않습니까? 또한 ‘노함’에서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향한 응징으로서 ‘분냄’의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1. 다툼의 시작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악독입니다. 그래서 다투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악독을 큰 소리로 표현합니다. 또한 상대를 폄하하거나, 헐뜯는 비방을 합니다. 그러나 싸움의 과정에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나 비방의 목소리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가를 우리가 깨달은 우리들은 어떻게 이러한 모습을 버릴 수 있습니까?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믿음의 공동체가 된 성도들은 서로에게 친절하고, 좋은 관계에서 상대를 향한 동정의 마음을 갖고, 서로를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들의 공동체는 이러한 모습을 실천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까? 서로를 향한 사랑의 실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입니까?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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