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기억 상실증을 회복하라

기억 상실증을 회복하라

요한 마가는 ‘배’(ploion: boat)라고 하는 이동 수단을 통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의 여행 경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첫 번째 배 여행(막 4:35-6:44)은 유대인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건이라고 하면, 두 번째 배 여행(막 6:45-8:10)은 이방인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첫 번째 배 여행과 두 번째 배 여행의 공통점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유 사건(막 5:1-43; 6:53-56, 7:24-37)과 빵 다섯개와 빵 일곱개로 오천 명과 칠천 명을 먹이신 사건(막 6:30-44; 8:1-10)이 공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마가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세 번째 배 여행(막 8:14-26)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행하신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빵 일곱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빵’(artos: loaf)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연결시키면서 제자들의 무능함을 언급합니다. 또한 벳세다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의 모습은(막 8:22-26)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과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 이후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바라보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복선(伏線: foreshadowing)의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과 관련된 논쟁을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이동하셨습니다(막 8:13).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짧은 배 여행에서 여러 개의 빵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들의 영적 무지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막 8:14) 그리고 그들(제자들)이 여러 개의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서, 하나의 빵을 제외하고는 그들과 함께 배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15) 그리고 그(예수)는 그들에게 경고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주의하라!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 (16) 그리고 그들은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우리는 여러 개의 빵을 가지고 있지 않다.” (17) 그리고 그(예수)가 아신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왜 여러 개의 빵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수군거리느냐?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느냐? 너희는 굳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Translated by YG Kim)

첫 번째 두 번째 배 여행에서의 배는 자연을 향한 예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장소(막 4:35-41; 6:45-52)였다고 하면, 세 번째 배 여행에서의 배는 제자들의 무능함을 인식하는 장소이며 동시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시는 장소입니다.

제자들은 배 안에서 하나의 빵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했습니다(막 8:14). 빵과 관련된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한 제자들이지만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세 번의 배 여행에서 빵과 관련된 제자들의 어리석음(막 6:37; 8:4)은 세 번째 배 여행에서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빵 일곱 개로 오천 명과 칠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단 하나의 빵으로도 그들을 먹이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경고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합니다(막 8:15). 공관 복음서에서 누룩(zyme: leaven)은 천국을 비유로 설명하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사용이 되기도 하지만(마 13:33; 눅 13:20-21), 마가복음 8장 15절에서 누룩은 부정적인 측면이 강조되었습니다.

누가는 누룩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이 되어질 때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12:1) …그(예수)가 먼저 자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너희는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위선으로부터 너희 자신을 조심하라” (Translated by YG Kim)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해 보면, 누룩은 위선(hypokrisis: hypocrisy)을 의미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16장 12절의 말씀에서, 누룩이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잘못된 교훈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누룩’의 의미를 누룩의 특성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는 발효제의 역할을 하므로,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은 그들의 위선과 잘못된 가르침이 퍼져서 많은 사람을 부패 시킬 수 있다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누룩의 상징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제자들은 배 안에서 자신들의 현실만을 바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서로가 수군거리면서 자신들이 빵 한 조각만 가지고 있어서 예수님께서 책망하신다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막 8:16).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잊어버렸을 때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동사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noeo: to perceive) 못하고 있었고, 이해하지(syniemi: to understand)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제자들의 마음은 굳어졌습니다(poroo: to harden). 제자들의 마음이 굳어진 상태에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인식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떨어졌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의 ‘완악함’(porosis: hardness) (막 3:5; 6:52)입니다. 그 결과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눈과 귀의 기능이 마비되었고, 기억력도 상실 되었습니다.

(막 8:18) 너희가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고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듣지 못하느냐? 그리고 기억하지도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을 위해서 떼어 주었을 때 너희는 몇 바구니의 조각을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그(예수)에게 대답했습니다. “열둘[입니다.]” (20) [내가]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을 위해서 [떼어 주었을 때] 너희는 몇 광주리의 조각을 가득 거두었느냐?” 그러자 그들이 그(예수)에게 대답했습니다. “일곱 [입니다.]” (21) 그러자 그(예수)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느냐?” (Translated by YG Kim)

마가복음에서 보는 것(blepo: to see)의 중요성과(막 8:15, 18; cf. 4:12; 8:22-26; 10:46-52; 13:2), 듣는 것(akouo: to hear)의 중요성(막 8:18; cf. 4:3, 9, 10-13, 14-20, 23, 24, 33; 7:14; 9:7)은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였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막 8:18).

예수님의 책망은 구약 성경에서 선지자들의 책망과도 유사합니다(렘 5:21; 겔 12:2). 선지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를 어리석고(foolish), 지각이 없으며(senseless), 반역한(rebellious) 족속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렘 5: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는 백성들아, 너희는 이 말을 들어라. (바른 성경)

(겔 12:2) 인자야, 너는 반역하는 족속 가운데 살고 있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으니, 이는 그들이 반역의 족속이기 때문이다. (바른 성경)

선지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언약의 백성들을 책망하여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책망하셔서, 그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기억함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첫 번째, 두 번째 짧은 배 여행을 통하여 경험한 급식 기적 가운데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빵 다섯개와 빵 일곱개를 가지고 먹었는지를 질문하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양이 급식 이후에 남았는지를 질문하고 계십니다(막 8:19-20).

이 질문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동일한 기적이 아니라 별개의 지역에서 일어난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급식의 기적 이후에 남은 바구니(kopinos: basket)와 광주리(spyris: hamper)라는 표현을 통하여서도 이 두 번의 급식 사건이 각각 유대인 땅과 이방인 땅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두 번의 급식 기적에서 남은 바구니 또는 광주리 양을 질문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행하신 기적의 풍성함을 통하여 제자들이 비록 배 안에서 빵 한 개만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공급하심의 능력을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두 사건이 동일한 사건이 아니라 유대인 지역과 이방인 지역에서 일어난 별개의 기적으로 예수님 안에서 종말론적인 성취(eschatological fulfillment)가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느냐?”(막 8:21)라는 질문을 통하여 다시 한번 제자들이 두번의 급식 기적을 기억함으로 지속적으로 참된 제자의 길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함께 나누기>

  1. 예수님과 제자들의 세 번째 짧은 배 여행에서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1. 예수님과 제자들의 세 번의 짧은 배 여행에서 ‘빵’은 어떠한 연결 고리가 있습니까?
  1. 공관복음서에서 누룩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부정적인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누룩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이 될 때 그 상징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또한 누룩의 위험성은 무엇입니까?
  1.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었을 때 나타나는 세 가지 현상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 동사로 설명해 보십시오.
  1. 제자들의 마음의 완악함은 그들의 눈과 귀의 기능과 기억력을 상실 시킵니다. 마가복음에서 보는 것과 듣는 것의 중요성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책망과 구약 성경에서 예레미야와 엘리야 선지자의 책망은 어떠한 연결 고리가 있습니까?
  1. 예수님께서 두 번의 급식 기적을 통하여 남은 바구니 또는 광주리의 양을 질문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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