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잘못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성경적 입장
한국 교회의 기독교 세계관 가운데에서 잘못된 신앙관 하나를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독교 신앙관은 잘못된 종말론과 연결되어서 많은 성도들이 성경의 진리로부터 벗어나도록 미혹합니다.
이러한 신앙관은 한국 기독교의 문화를 대변하는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에서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라는 곡으로도 잘 나타납니다. 이 노래는 엘버트 에드워드 브럼리(Albert E. Brumley)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원제목은 “This World is not my Home”입니다. 이 노래 또한 미국 사회에서 컨트리 스타일 찬송으로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1980년대 어려운 한국 사회에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니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서 현대에도 CCM 가수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리메이크 되어서 많은 기독교인들의 애창곡 중에 하나입니다.
이 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이 곡에서 하나님의 선한 창조 질서 안에서 창조된 세계는 ‘죄 많은 이 세상’으로 표현되고 있고, 오직 앞으로 오실 하나님의 나라만을 강조하면서 이 땅에서 소유하지 못했던 금은 보화가 천국에는 많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회복 된 땅이지, 하나님에 의해서 버려진 땅이 아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자신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대변하기 위해서 천국에는 금은 보화가 많다는 것 만을 강조하는 것은 성경적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축복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사라진 상태에서 죄 아래 갇힌 불행의 삶으로 생각한다면 이러한 삶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개혁주의 신학(Reformed Theology) 안에서 주어진 올바른 삶이 아닙니다.
바른 개혁주의 신학은 무엇입니까?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창조된 이 세상의 어느 한 곳이라도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다는 왕국 신학(Kingdom Theology)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신학적 관점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언급하는 창조(Creation)-타락(Fall)–구속(redemption)-완성(Consummation)을 통하여 개혁주의 신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본래 선하고, 아름답고, 조화로운 질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세계 안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온 땅에 드러내고 다스리는 청지기의 역할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탐심에서 시작된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고, 그 결과 죄와 죽음이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롬 5:12). 창조 질서 안에서 죄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covenant)을 통해 구속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예수님을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셔서 이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 의로움을 허락해 주셨습니다(롬 4:25).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았고(갈 3:2, 5, 14), 성령 안에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드러나는 개혁주의 신학의 완성의 역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혁주의 신학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때 성도가 처음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각은 구속의 시각입니다. 성도가 구속의 시각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죄 용서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는 인식론적 시각(epistemological perspective)을 의미합니다.
인식론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능력, 그리고 성령의 역사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창조의 시각(creational perspective)을 가지게 됩니다. 성도는 구속의 시각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해서 창조의 시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신 세계가 죄악으로 인하여 더럽혀진 세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재 창조(re-creation)된 세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성도는 구속의 시각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깨닫기 시작해서, 창조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창조-타락-구속-완성으로 이어지는 개혁주의 신학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개혁주의 신학 가운데에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재창조된 세상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까?
먼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재창조된 세상이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던 창조세계를 폐지하시고 그리스도안에서 다시 새로운 것을 지으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래의 타락한 창조세계를 계속 붙들고 계시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회복시키셨다는 의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구속의 사건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미 이루어졌고,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으뜸이요, 교회의 머리이실 뿐 아니라, 성도들의 삶을 인도하는 구원자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혁주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개혁주의 신학은 이에 대한 답으로 ‘문화 소명’(cultural mandate)을 이야기 합니다. 문화 소명이 요구하는 것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 세계로 깨닫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청지기로 수행하는 삶입니다.
창조된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에서 성경의 창조적인 원리가 실천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창조된 세계 안에서 성도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와 질서 안에서의 삶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창조-타락-구속-완성으로 이어지는 개혁주의 신학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서 성도들은 ‘세상의 빛’(마 5:14)이 되어 살아가야 하고, 이 땅에서 ‘소금’(마 5:13)의 역할을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다시 태어난 성도는 자신이 처해 있는 삶의 모든 현장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건강한 백성으로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삼위 하나님의 창조의 관계와 질서 안에서의 삶이요, 다시 오실 ‘왕의 귀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실질적인 청지기의 삶입니다.
<함께 나누기>
- 우리는 이 땅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또는 죄악 된 세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 개혁주의 신학이란 무엇입니까? 창조-타락-구속-완성의 입장에서 설명해 보십시오.
- 구속의 신학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본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재창조된 세상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재창조된 세상에서 만물의 으뜸이요, 교회의 머리이시며, 성도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은 누구이십니까?
- 개혁주의 신학 안에서 ‘문화 소명’을 설명해 보십시오.
- 우리는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