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오, 믿음이 없는 세대여!

오, 믿음이 없는 세대여!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셨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명의 제자들은 산 아래에서 “말 못하는 영”에 의해 사로 잡혀 있는 아이를 고치지 못해서 서기관들과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네 번의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 회당 안에 있는 더러운 귀신들린 유대인을 고쳐 주셨고(막 1:21-28), 거라사 지역의 군대 귀신 들린 이방인과(막 5:1-20), 그리고 시리아-페니키아 출신의 여인의 이방인 딸도 고쳐 주셨습니다(막 7:24-30). 또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두 명씩 나누어 전도 여행을 보내실 때에도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능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막 6:7). 그러나 제자들은 지금 “말 못하는 영”에 의해 사로 잡혀 있는 아이를 고치지 못해서 서기관들과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는 베세다를 출발하여서 여리고로 가는 길 위에서 이 사건을 다른 복음서(마 17:14-20; 눅 9:37-43a)보다 구체적으로 기록하면서 제자들의 실패를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예수님은 제자들이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혀 있는 어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문제의 중심을 믿음으로 다루면서 믿음과 기도의 상관 관계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마가복음 9장 14-29절의 말씀은 크게 세 장면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예수님과 군중들과의 대화이고(9:14-19), 두 번째 장면은 예수님과 귀신들린 소년의 아버지와의 대화입니다 (9:20-27).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장면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적인 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9:28-29).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산 아래로 내려오셨을 때 나머지 아홉 명의 제자들은 서기관들과 논쟁 중에 있었습니다(막 9:14). 아홉 명의 제자들이 서기관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의 부재 가운데에서 자신들의 무력함을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는 높은 산에서 내려오셨고, 많은 무리는 예수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마치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놀랐던 것처럼(출 34:29-35), 많은 무리는 예수님을 보고 놀라 달려와 환영했습니다.

(막 9:14) 그리고 그들이 그 제자들에게 왔을 때 그들을(제자들) 둘러싼 많은 무리와 그리고 그들과 논쟁중인 서기관들을 보았습니다. (15) 그리고 즉시 모든 무리가 그(예수)를 보고 놀랐으며 그리고 달려와 그(예수)를 환영했습니다. (16) 그리고 그(예수)가 그들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들과 무엇을 논쟁하고 있느냐?” (17) 그러자 무리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그(예수)에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힌 저의 아들을 당신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18) 그리고 어디서든지 그것(말 못하는 영)이 그를 붙잡으면 그를 넘어뜨립니다. 그러면 그는 입에서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고,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것을 쫓아 내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할 수 없었습니다.” (19) 그러자 그(예수)가 그들에게 대답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 믿음이 없는 세대여, 언제까지 내가 그대들과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언제까지 그대들을 참아야 하겠느냐? 그를 나에게 데리고 오라”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 “말 못하는 영”에 사로 잡힌 어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자신의 제자들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서기관들과 제자들에게 대화로 접근하십니다(막 9:16). 그러자 무리 중에 한 사람으로서 “말 못하는 영”에 사로 잡힌 어린 아이의 아버지가 무리의 대표로 대답합니다. 어린 아이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의 상태는 단순히 말을 못하는 신체적 장애가 아니라, “말 못하는 영”, 즉 귀신에 의한 영적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귀신의 파괴력은 그가 입에서 거품을 흘리게 하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하게 만드는 것(막 9:18)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를 죽이기 위해서 불과 물 속으로도 던졌습니다(막 9:22a). 따라서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왔지만 그들은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힌 어린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막 9:18c-d).

어린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이 자신의 아이를 고치지 못한 이유를 능력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헬라어에서 ‘이스큐오’(ischyo)는 능력과 연결되어진 동사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그러나 그들은 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제자들이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힌 어린 아이를 고칠 힘(strength)과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authority)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의 아버지와의 대답을 듣고 나서 제자들의 무능력함을 책망하십니다(막 9:19). 예수님의 책망은 단지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힌 어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아홉 명의 제자들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리와 서기관들 그리고 무리의 대표로서 어린 아이의 아버지를 향한 책망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이 ‘세대’(genea: generation)로 표현해서 책망하십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믿음이 없는 세대여”(faithless generation)는 신명기 32장 5절과 20절의 말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32장 5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뚤어지고 어그러진 세대”(a crooked and twisted generation)로 표현하고 있고, 20절에서는 “비뚤어진 세대요, 믿음이 없는 자녀들”(a perverse generation, children in whom is no faithfulness)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고 계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신 32:5). 이러한 악한 성품은 신명기 32장 4절에 기록되어 있는 완전하고, 공의로우시며,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성품과 대조를 이룹니다. 또한 신명기 32장 20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숨기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없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신명기 32장 20절에서 “믿음이 없는 자녀들”은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LXX)에서 “믿음이 없는 아들들”로 번역하고 있고, 마가복음의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없는 세대들”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동시대 사람들의 실패를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불신앙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계시고, 마치 구약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탄식을 하고 계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믿음의 없는 세대들”들 향해 탄식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두 가지 탄식은 ‘언제까지’(heos pote: How long)라는 수사학적 질문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째, 언제까지 내가 그대들과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둘째, 언제까지 그대들을 참아야 하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질문을 통해 성육신(incarnation)하신 자신의 사역이 이 땅에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마가복음 8장 31절의 첫 번째 수난 예고를 통하여 자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하여 제자들에게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수난 예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부재 중에 계실 때 참된 믿음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첫 번째 수사학적 질문은 단순히 현재의 상황에 관한 불만을 제자들과 무리에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무리와 함께 동행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질문은 제자들에게 전환점이 되고 있습니다. 벳세다에서 여리고로 출발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은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앞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제자들은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성령과 함께 동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참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들이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깊은 좌절감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질문은 자신의 감정을 더욱 솔직히 드러내며, “믿음이 없는 세대”들을 향한 인내심과 한계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무리와 무리를 대표하는 어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언제까지 그대들을 참아야 하겠느냐?”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이러한 질문은 구약 성경에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과 고뇌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신 5:29).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렸습니다(사 1:2-4; 렘 2:13).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수사학적인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신적인 슬픔과 고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수사학적인 두 가지 질문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예수님의 복합적인 심경을 드러냅니다. 첫 번째 질문이 예수님 자신의 사명이 곧 끝날 것임을 암시하며 시간의 제약을 강조하고 있다면, 두 번째 질문은 그 제한된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과 세대에 대한 깊은 좌절감을 표현합니다. 이 질문들은 단순한 예수님의 감정의 표현을 뛰어 넘어, 앞으로 전개될 예수님의 수난 사건의 필연성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신실한 믿음 없이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할 수도 없고, 그 사역을 이어갈 수도 없다는 마가복음의 핵심 주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함께 나누기>

  1.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장면을 설명해 보십시오.
  1.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힌 어린 아이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1.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힌 어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제자들의 모습을 어린 아이의 아버지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습니까?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이 없는 세대여”의 신명기 32장 5절과 20절을 배경으로 설명해 보십시오.
  1. 신명기 32장 20절의 “믿음이 없는 자녀들”은 칠십인역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어떻게 바뀌고 있습니까?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첫 번째 질문 “언제까지 내가 그대들과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라는 의미를 설명해 보십시오.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첫 번째 질문 “언제까지 그대들을 참아야 하겠느냐?”라는 의미를 설명해 보십시오.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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