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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세지] 열매를 찾으시는 예수님, 카이로스의 시간

열매를 찾으시는 예수님, 카이로스의 시간

마가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 입성 후 가장 첫 번째 중요한 사건으로 성전 정화 사건(막 11:15-19)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성전 정화 사건을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은 사건을 처음(A: 막 11:12-14)과 끝(A´: 막 11:20-26)에 배치하고, 그 중앙에 성전 정화 사건(B: 막 11:15-19)을 배치하는 ‘A-B- A´’의 샌드위치 구조(Sandwich Structure)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네러티브 기법을 통해 마가는 잎사귀는 무성하나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외형적으로는 화려한 건물과 의식을 갖추었으나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는 예루살렘 성전과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실상에 비유하여서 예루살렘 성전이 ‘모든 민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집’(막 11:17)이라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강도들의 소굴’(막 11:17)로 만든 것에 관한 하나님의 예언적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의 환호 가운데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성전을 둘러보시고 다시 베다니로 돌아오셨습니다(막 11:11). 예수님과 제자들이 베다니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 출발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배가 고프셔서 잎이 무성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곳에 가셨지만, 그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막 11:12) 그리고 다음 날 그들이 베다니로부터 나왔을 때, 그(예수)가 시장하셨습니다. (13) 그리고 멀리서 잎들을 가진 한 무화과나무를 보신 후에 혹시 그것 안에서 무엇인가를 찾고자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가셨을 때 잎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무화과의 계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14) 그리고 그(예수)가 그것(무화과나무)에게 반응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로부터 영원히 아무도 더 이상 열매를 먹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듣고 있었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마가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시고(막 6:35-44), 빵 일곱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막 8:1-9) 예수님께서 홀로 배가 고프셔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배가 고프신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배고프다’라는 헬라어 동사 ‘페이나오’(peinao: to hunger)는 마가복음에서 두 번 사용이 됩니다. 첫 번째 용례는 다윗과 그 일행의 육체적 배고픔을 설명하기 위합입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밭 사이에서 길을 내면서 이삭을 훑기 시작하여 바리새인들과 논쟁이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다윗과 그 일행이 사울을 피해 놉이라는 지역에서 배가 고파(epeinasen) 제사장 아히멜렉이 건네준 진설병을 먹은 사건을 언급하시는 내용입니다(막 2:25-26). 두 번째 용례는 예수님께서 배가 고프셔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찾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마가의 서술에 주목해야 하는데, 마가는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 홀로 배가 고파(epeinasen)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찾고 계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배가 고프신 상태가 육체적 배고픔을 의미하기 보다 무화과나무의 상징적인 의미로 이스라엘이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 간절한 열망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기 이전에 영적으로 배가 고프셔서 먹을 것을 찾은 대상은 무화과나무(fig tree)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모습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부끄러워서 치마를 만들었을 때에 무화과 잎(fig leaves)을 사용하는 모습입니다(창 3:7). 또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할 비옥한 가나안 땅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데 바로 이스라엘의 7가지 대표적인 열매 중에 하나가 무화과 열매입니다(신 8:8).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와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언약 관계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왕상 4:25). 이러한 배경에서 선지자들은 무화과나무의 열매 없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심판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렘 8:13; 24:1-10; 호 9:10, 16-17; 미 7:1).

(렘 8:13) 내가 그들을 멸할 것이다. 여호와의 말이다.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고 잎도 말라 버릴 것이니, 내가 그들에게 주었던 것들이 없어질 것이다. (바른 성경)

그런데 우리들에게 궁금증으로 다가오는 내용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찾으셨을 때 무화과의 계절(kairos: season)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막 11:13).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무화과나무는 연 2회 열매를 맺는 생물학적 주기를 가지고 있는데, 무화과나무는 유월절 중인 늦은 3월에서 이른 4월에(닛산월) 잎이 무성해지고, 5-6월이 지나야 첫 번째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8-10월에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본격적으로 수확할 수 있습니다(Joachim Jeremias, Jerusalem in the Time of Jesus (trans. F. H. and C. H. Cave; Philadelphia: Fortress, 1969), 60–61).

예수님께서 유월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셨으므로, 이 계절에 가을철에 열리는 무화과 열매를 찾는 예수님의 모습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더 무화과나무의 생체 주기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찾고 계신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가을철에 열리는 열매가 아니라, 봄철에 열리는 익지 않은 작은 열매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봄철에 열리는 익지 않은 작은 푸른 열매를 ‘파게’(pagge: the unripe fruit of the fig tree)라고 부르고(아 2:13), 무화과의 계절에 열리는 열매를 ‘테에나’(teena: the fruit of fig tree)라고 부릅니다(잠 27:18).

(아 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들이(paggeha) 익어가고, 포도나무에는 꽃이 피어 향기를 내뿜고 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바른 성경)

(잠 27:18) 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자가 그 열매를(teenah) 먹는 것과 같이 자기 주인을 잘 섬기는 자가 영광을 얻는다. (바른 성경)

예수님께서 찾고 계신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가을철에 열리는 ‘테에나’가 아니라, 봄철에 열리는 익지 않은 무화과 열매 ‘파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발견하신 무화과나무는 잎은 무성하였지만 처음 맺는 푸른 열매 ‘파게’를 맺지 못했습니다. ‘파게’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결과적으로 가을철에 ‘테에나’를 맺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앞두고 계신 시점에서 예루살렘에서 반경 3.2km(around 2 miles) 안에 위치하고 있는 ‘벳바게’ 근처인 ‘베다니’에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벳바게’(Bethphage)는 아람어 ‘베트 파게’(bet pagge)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집’을 의미하는 ‘바이트’(bayit: house)와 ‘파게’가 결합된 이름입니다. 따라서 ‘벳바게’는 ‘익지 않은 무화과의 집’(House of unripe figs)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익지 않은 무화과 열매인 ‘파게’를 찾으셨을 때 그 나무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했습니다(막 11:13).

이에 예수님께서 잎은 무성하지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게 반응하여 내리신 결정은 심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너로부터 영원히 아무도 더 이상 열매를 먹지 못할 것이다”(막 11:14b)라고 말씀하십니다. 헬라어 문법상 이 문장은 부정적인 소원을 나타내는 희구법(optative)으로 쓰여, 이 나무가 다시는 결실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정된 심판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판의 대상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무화과나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선언은 단순한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를 뛰어 넘어, 이스라엘의 종교적 부패와 예루살렘 성전 체제에 대한 메시아적 심판을 의미하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우리가 이미 생각해 본 바와 같이, 마가는 샌드위치 구조(A-B-A´)를 통해 무화과나무가 저주 받는 사건 중앙에 성전 정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의 운명은 이스라엘의 운명과 동일시 되어서 화려한 성전 예배와 종교적 활동은 가득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과 기도와 용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막 11:22-25), 공의와 자비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가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찾으셨을 때 무화과의 계절(kairos: season)이 아니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막 11:13), 역설적으로 무화과의 계절을 의미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단순한 생물학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심판을 의미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모습을 통해 만물의 주인이자, 열매 없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셨습니다.

마가는 제자들이 무화과나무를 향한 예수님의 저주를 직접 듣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막 11:14c). 이 기록은 가장 먼저 11장 21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장치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믿음과 기도와 용서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의 기초가 되어집니다.

결과적으로, 마가복음 11장의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은 샌드위치 구조를 통해 성전 정화 사건과 연결되어, 외형적 화려함 뒤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열매가 없는 이스라엘 성전 체제의 종말을 선포하고 예수님의 메시아적 권위를 입증하는 상징적 심판 행위입니다.

<함께 나누기>

  1. 마가복음 11장 11-26절에서 마가가 무화과나무가 저주 받는 사건과 성전 정화 사건을 연결해서 샌드위치 구조(Sandwich Structure)로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배고프다’라는 헬라어 동사 ‘페이나오’(peinao: to hunger)의 용례를 마가복음에서 설명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배고프신 모습은 육체적 배고픔을 의미합니까? 또는 영적 열망을 위한 표현입니까?
  1. 무화과나무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무화과나무를 찾으셨을 때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파게’와 ‘테에나’를 구분해서 설명해 보십시오. ‘벳바게’의 지명 이름은 ‘파게’와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
  1.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너로부터 영원히 아무도 더 이상 열매를 먹지 못할 것이다”(막 11:14)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문장은 희구법(optative)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어떠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까?
  1. 마가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찾으셨을 때 무화과 열매가 없는 이유를 “무화과의 계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마가는 생물학적 시간의 개념인 ‘크로노스’를 사용하고 있지 않고,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